[단비 리스티클] ④ 인권 현실 이해 영화

1. 토니 케이, <디태치먼트>

‘교육은 백년지대계’라지만 교육 정책은 5년이 멀다 하고 바뀐다. 정책의 여파는 곧바로 학생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참정권이 없는 그들은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에 대해서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한다.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없다는 점에서 학생들은 가장 소외된 사회적 약자일지도 모른다. 교육이란 명분으로 정치적 발언을 자유롭게 못하는 교사 또한 마찬가지다.

<디태치먼트>에서 학생과 교사의 관계는 절망적이다. 학생은 선생에게 친구들을 시켜 강간할 거라 협박하고, 선생은 학생에게 역겨운 생명체라 욕한다. <디태치먼트>의 세계는 암흑에 가깝다. 서로 구원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다만, 영화는 절망의 끝자락에서 희망을 지핀다. 우리는 서로를 구원할 수도, 완전히 이해할 수도 없지만 ‘함께’ 한다면 뭔가 달라지게 할 수 있다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 아닐까?

▲ ⓒ 다음 영화

2. 윤종빈, <용서받지 못한 자>

“군인이 전투나 훈련 때 받은 손해에 대해서는 국가나 공공단체에 대해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은 청구할 수 없다.” 

헌법 29조 2항을 요약하면 이렇다. 군인은 국가에게 배상을 받지 못한다. 국가가 군인의 권리를 침해해 손해를 끼치더라도 배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국민은 국가의 주인이기에, 국가가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면 손해를 물어줘야 한다’가 근대헌법의 요지다. 헌법 29조 2항은 근대헌법의 원칙에 군인은 포함돼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군인은 온전한 국민이 아니다. 군인은 사회적 약자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군인을 보여준다. 그는 자주 횡설수설하고 머뭇거리며 떠나려다 돌아오고 돌아오려다 떠난다. 그의 방황은 책임 물을 곳을 모르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군생활을 하려던 자신에게 물어야 할지, 자신의 최선에도 불구하고 엇나가던 후임에게 물어야 할지, 툭하면 자신을 건드리던 선임에게 물어야 할지, 자신을 입대시킨 국가에 물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그의 말에는 핵심이 없다. 하지만 영화는 ‘핵심 없음’을 통해 군인의 지위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사회에 있지만 민간인은 아니고, 국민이긴 하지만 기본권은 제약 받는 그 모호한 경계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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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승준, <달팽이의 별>

보지도 듣지도 못해 달팽이처럼 촉각에만 의존해 사는 영철씨. 그런 그를 세상과 이어주는 척추장애인 순호씨. 휴먼 다큐멘터리 <달팽이의 별>은 장애인 부부의 이야기다. 서로에게 의지하고 함께 꿈을 향해 도전하는 그들의 일상을 편견 없이 카메라에 담았다. 영화는 제12회 장애인영화제 작품상과 제24회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 장편부문 아시아 최초 대상을 수상했다.

몸이 불편하다 해서 불행할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영철씨의 나레이션처럼 그들은 ‘가장 값진 것을 보기 위하여 잠시 눈을 감고, 가장 참된 것을 듣기 위하여 잠시 귀를 닫고, 가장 진실한 말을 하기 위하여 잠시 침묵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일 뿐.

▲ ⓒ 네이버 영화

4. 박배일, <밀양, 아리랑>

고추나무 꽃만 보아도 웃음꽃이 피던 김영자씨는 밭일도 팽개치고 농성장을 찾는다. 귀농한 박은숙씨는 아들 둘을 데리고 남편과 광화문에서 단식투쟁을 벌인다. 765kV 송전탑이 마을에 들어선 이후 주민들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박배일 감독은 투쟁이 가장 격렬하게 치닫던 2012년부터 3년 동안 밀양의 시간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주류 언론들이 물리적인 충돌만 강조하며 외면했던 밀양 주민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았다. 이젠 보상도 필요 없다는 할매들, 그들이 지키고 싶은 밀양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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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자비에 돌란, <로렌스 애니웨이> 

남은 일생을 여자로 살고 싶은 청년 로렌스와 그의 연인 프레드. 얼핏 퀴어영화처럼 보이지만 <로렌스 애니웨이>는 사회적 약자로 바라봤던 이들이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을 그린 성장영화에 가깝다. 영화를 보는 내내 로렌스는 관객에게 자기 자신으로 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평론가 신형철은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서 제목 ‘로렌스 애니웨이’를 두고 “우리가 자기 자신으로 사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럴 수만 있다면 ‘어떤 길(any way)’을 택해서라도 그래야 한다고 말해준다”며 영화의 참뜻을 읽어냈다. 감독은 프레드의 입을 빌려 우리에게 다음처럼 말하는 듯하다.

“우리 세대는 이걸 견뎌낼 수 있어.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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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김태용, <거인>

어른들은 종종 무책임하다.

“그럼 나는 누가 책임져?”
“왜 아무도 책임지려하지 않는 건데?”

보호시설에서 자란 열일곱 영재는 보호받아야 할 울타리가 없다. 무책임한 아버지는 영재에게 동생마저 떠맡기고, 원장모는 “저 새끼들은 은혜를 받을 줄만 알고 베풀 줄을 몰라”라며 눈치를 준다.

영재는 모범생처럼 굴다가도, 후원물품을 훔쳐 팔기도 하고 거짓말로 친구를 배신하며 하루하루 버틴다. 영재에게 어른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절망’이다. 절망을 먹고 자란 ‘거인’ 영재의 모습은 마땅히 ‘청소년’을 책임지라고 기성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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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 그들이 차별과 소외를 받지 않도록 감시하고 제도적 권리 보장을 촉구한다."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에 명시된 언론인들의 책무다. 한국 언론은 과연 이런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을까. 흔쾌히 동의하는 사람이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단비뉴스>는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언론'을 꿈꾸며 공부하는 예비언론인들이 인권 현실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사명감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될 영화 6편을 엄선했다.(편집자)

 편집 김평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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