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태의 유혹하는 에디터2] ➁ 토요판, 우려의 결정판

▲ 고경태

“엄청 두들겨 맞았다며?”

편집국장인 박찬수 선배가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구절절 답하기도 뭐해서 말끝을 흐렸다. “아, 네….” 회사내 선배그룹으로 구성된 부서에서 진행했던 토요판 설명회의 싸늘한 풍경을 전해들은 모양이었다. 그날 자리에는 신문콘텐츠를 총괄하고 조율하는 편집인과 토요판 아이디어를 함께 의논해온 편집국 지면개편TFT(특별팀) 위원장이 참석했던 터였다. 설명회 하루 뒤 편집국장은 국장실로 토요판 준비팀장인 나를 불렀다. 이미 그날 발언록은 문서로 작성하여 국장에게 보고한 상태였다. “기죽지 말고 그냥 해.” 편집국장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한마디를 던졌다. 준비한 대로 토요판 계획을 밀고 나가라는 거였다. 세부적인 내용들은 계속 가다듬되, 큰 틀에서는 원안을 유지하라고 했다. 신문사 내 지나친 기우에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나는 11년 전 일을 떠올렸다. 정확히 2000년 6월27일 일어난 사건이다. 출판국 한겨레21부에서 베트남전 기사를 쓸 때였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 보도에 불만을 품은 고엽제후유의증전우회원 2000여명이 회사 앞으로 몰려왔다. 회사에 난입해 차량과 기물을 부수고 폭력을 행사했다. 돌이 날아와 유리창이 깨지고 파편이 날아다녔다. 부상자가 속출했다. 8층짜리 신문사 건물은 폐허가 됐다. 총무부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회사 피해액은 7천만원어치였다. 오후 6시쯤 침입자들이 물러갔을 때, 최학래 당시 사장이 각 층을 돌아다니며 피해상황을 살폈다. 5층 한겨레21부 입구로 들어서는 사장의 얼굴을 힐끔 보자 괜히 찔렸다. 보도 담당자로서 힐난이나 듣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내 자리로 다가온 사장은 어깨를 툭 치며 뜻밖에도 이렇게 말했다. “인마, 너는 훌륭한 일을 한 거야. 잘했어!”

경우가 좀 다르긴 하다. 11년 전엔 외부자들의 침입 사태였다. 이번엔 내부의 의견차이였다. 그럼에도 머리 위에 굵은 동아줄 하나가 사뿐히 내려온 느낌은 같았다. 이 줄을 잡으면 된다. 뇌 속 희뿌연 안개들이 걷혔다. 그냥 가는 거다. 우려를 뚫고.

영감의 실마리, 유에스투데이

사실 토요판에 관한 첫 영감을 준 사람은 편집국장 박찬수 선배였다. 2006년 10월 내가 한겨레21 편집장을 하다 주말판 준비팀장으로 발령난 직후의 일이었다. 당시 나는 회사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타블로이드판이나 잡지 형식의 토요일치 섹션을 준비하고 있었다.(나중에 백지화됐던 이때의 주말판 계획은 5년 뒤 토요판과는 전혀 다른 성격이었다.) 박찬수 선배는 3년간의 워싱턴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국제부 기자로 근무 중이었다. 어느날 식사 자리에서 그가 말했다. “미국에 <유에스투데이>라고 있거든. 그 신문은 독특하게 주말판을 만들어. 다른 외국신문들처럼 별도 섹션을 만들지 않고 1면을 커버스토리로 장식해. 스포츠 기사도 그날만은 긴 호흡의 피쳐기사를 내보내고.” 내가 준비중인 주말판에 참고하라는 거였다. 독특한 모델이라 머리에 새겨넣었지만, 듣고 넘겼다. 당시엔 본지에 부속되는 별도 매체를 만들기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4년여가 지난 2010년 10월 중순, 토요판 준비로 시끄럽던 시기로부터 1년 전 나는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만들었다.

“토요판. 기본개념 1. 당일 스트레이트 뉴스를 포함하면서도 기존의 토요일 신문을 대체하는 신개념 주말페이퍼. 한국언론 시장의 새상품으로서 도발적이면서도 깊이있는 기사로 새롭게 트렌드를 이끌어가야 함. 2. 캐치프레이즈를 ‘스토리가 있는 주말’로 가져가야 한다고 봄. 긴 호흡의 내러티브 기사를 컨셉으로 내세우는 차별화 전략. 과감하게 피처기사를 전면에 내세우고 스트레이트는 브리핑 형태로 압축.(하략)”

‘토요판’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문서다. 이 역시 박찬수 선배와 관련이 깊다. 그는 2010년엔 편집국 부국장이었는데, 그해 11월8일자로 ‘미디어비전연구TFT’ 상근 팀장 발령을 받았다. 미디어비전연구TFT란 “종이신문 독자 감소 등 미디어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오프라인-온라인 콘텐츠 생산시스템 개편전략의 실행방안을 본격적으로 마련하기 위해 기자들은 물론 여러 국실 관계자들을 참여시킨”(발령문서 내용) 특별팀이었다. 나는 당시 오피니언넷 부문(현 여론미디어팀) 소속이었다. 박찬수 선배와 그 ‘미디어 비전연구 특별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누가 먼저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주말판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2006년에 한 차례 화제로 올린 바 있는 유에스투데이 모델처럼 토요일치를 만들어도 좋겠다는 대화를 했고, 내가 간단한 보고서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물론 이 보고서는 보고서로만 끝났다. 한데 네 달 뒤인 2011년 3월 박찬수 선배가 편집국장에 임명되는 일이 벌어졌다. 나도 문화스포츠 에디터로 발령을 받았고, 새로 구성된 지면개편TFT에 참여하게 되었다. 말에 그친 토요판 구상을 현실화시킬 조건이 갖추어진 셈이었다.

나는 2011년 3월 문화스포츠 에디터로 임명된 직후부터 ‘토요판’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지면개편TFT에 함께 참여한 최우성 기자(당시 경제부 차장, 현 논설위원)가 적극 찬동을 해주었다. TFT 위원장인 유강문 선배(당시 국제경제 에디터, 현 디지털미디어사업국장)도 지지와 격려를 해주었다. 편집국장이 된지 얼마 안된 박찬수 선배한테는 “내가 토요판 에디터를 맡겠다”고 자원까지 했다. 국장은 실행계획을 짜보라고 했다. 더불어 제작비용이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사장을 설득해 주었다. 나는 2011년 4월19일 이런 문서를 작성해 TFT 내부에 회람을 시켰다. “토요판(총 24~28면) 기본적인 사항들 - 신문시장에서 새로운 변화와 트렌드의 주역으로 나선다는 의의. - 또 다른 섹션의 추가가 아니라, 토요판이 본지의 외피를 덮어쓰는 형식. (이를 통해 비용 문제 해결하면서 새로운 형식까지 창출. 2006년 일간신문에서 일제히 튀어나왔다가 숨어버린 주말판 논의의 대안이 될 수 있음) -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으로 구획된 기존의 틀을 넘어섬. - ‘지적인 토요일’을 컨셉으로. 사람과 지식의 다큐, 색깔 있는 지성. - 기자 뿐 아니라 전문가 활용을 통한 최고의 질 유지. - 9월 론칭 목표로, 5월부터 준비팀 가동. 팀장 포함 1~2명을 꾸리고 진행상황을 보아 인력 보강.”

▲ 2012년 1월 중순에 디자인팀에서 만들었던 한겨레 토요판 지면 시안. 가상의 기사와 실제 기사들이 뒤섞여 있다. ⓒ 한겨레

구체적인 지면구성안까지 써넣었다. 스트레이트 뉴스(사실 전달 기사)는 경제·사회·문화 등등의 이름 대신 새로운 문패를 달아 압축해 넣자고 제안했다. 뒷 부분 피처 뉴스(이야기 기사)들의 문패도 낯설게 만들었다. 열광, 미래, 코칭, 다운로드, 그/그녀, 설렘, 깨달음.” 가령 ‘열광’이란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트렌드나 콘텐츠에 관한 지면이었다. 미래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연구성과와 논쟁을 다루자는 거였다. 1면은 주인공과 이야기가 있는 커버스토리로 짰다. 아직은 거친 초안이었다.(열광·미래 등의 문패는 첫 호를 내기 직전에 가족·생명·군사 등등으로 모두 바뀐다.)

대선의 해에 한가하다?

사실 이렇게 토요판에 집착하며 보고서를 만든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신문을 혁신하겠다는 열망 때문만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2011년 3월부터 맡은 문화스포츠 에디터로부터 벗어나려는 의도가 적지 않았다. 나중에 자세히 밝히겠지만, 문화스포츠 에디터 업무엔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일의 성격보다는 역할과 책임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탓이었다. 결국 거기에 보람을 느끼지 못했기에, 토요판을 펌프질했는지 모른다.

아무튼 여기까지 왔다. 2011년 12월 초순, 국장은 토요판 일정을 예정대로 추진하라고 했다. 내 마음은 환해졌지만, 그렇다고 내부의 우려가 갑자기 잦아드는 건 아니었다. 파티션에 붙여놓은 ‘憂慮’(우려·지난 편 참조)는 며칠째 펄럭거렸다. 한 팀원은 토요판에 관해 남다른 노파심을 지닌 선배와 저녁식사를 하고 온 뒤 보고서를 올렸다. “OO선배가 지적한 내용은 다음과 같음. 경영진이 내년에 신문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나가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내년에 어떻게 신문콘텐츠 개발을 하겠다는 큰 그림이 그려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토요판을 덜컥 시작하는 건 섣부른 게 아닌가 하는 게 내 판단이다. 토요판을 하면서 esc(생활문화섹션), 한겨레in(탐사보도 지면)은 그대로 유지한다는 거잖아. 우리 역량과 관계없이 너무 자원을 분산해놓은 거다. 내년은 시사에 좀 더 집중할 때다.” 설득력이 없지 않은 논리였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2012년은 대선이 있는 해니, 기획물이나 피처뉴스 지면을 분산시켜 힘을 빼지 말고 스트레이트 지면에 온전히 역량을 투입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 선배는 시사에 집중할 때라고 했다. 나는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았다. ‘토요판은 시사가 아닌가?’ 고개가 끄덕거려지진 않았다.

편집국의 몇몇 부서에서는 팀장들에게 토요판 피피티(PPT) 자료를 돌려보게 하고 평가서를 쓰게 한 뒤 취합해서 보내왔다. 편집국장의 지시에 따른 거였다. 편집국장이 한 부서의 평가서를 프린트해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여기에 따르면, 토요판 하면 큰일 난단다.” 국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평가서의 내용은 대강 이러했다. “읽을거리 위주로 리뉴얼한 이 포맷은 처음엔 신선하겠지만 두세달쯤 되면 금방 식상해지고 지루해질 수 있음. 포맷차림표는 익숙해졌고 거기 든 콘텐츠는 뉴스성에서 떨어지기 때문. 스트레이트 지면이 너무 비좁다는 생각임… 대선의 해임을 감안하면 다른 해보다 토요일치에도 스트레이트 기사가 늘어날 가능성 큼. 현 토요판 구성으론 유연하게 대처하기 불가능. 인터뷰가 없이 글발로 1면에 사람이야기를 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 우선 1면에 심도깊게 다룰 수 있는 인물의 수가 극소수임. 현재 나와있는 예시들은 별지 섹션 정도에서는 머리로 갈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본지 1면 머리로는 지나친 배정임. 가장 중요한 1면을 전략적으로 다르게 만든다 해도 2~3면까지 한가한 내용으로 꾸미기는 불가능. 새 이야기를 다 싣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지난 주의 지나간 이슈를 다시 정리해주는 건 지면낭비.…뒷면에 이어지는 가족, 생명, 의료, 군사 모두 문제가 있어보임. 심층 취재물이 나가도 부족한데 의학과 무기에 대한 호사적인 궁금증을 풀어주는 지면을 이렇게 한 면씩 배치하는 것 이해하기 어려움……….”

어제 안 들어서 불안한 이야기

나는 문제의 평가서를 파일로 받아 컴퓨터에 저장했다. 파일명은 ‘우려의 결정판’으로 적었다. 그중엔 수긍이 가는 의견도 없지 않았다. 피피티 자료엔 추상적인 부분이 많으니 불길한 예단이 나올 만 했다. 더 정교하게 가다듬어야 했다. 문제는 지난번 선배그룹 설명회에서 나온 반응처럼, 뉴스기능 약화가 우려의 핵심이었다는 것이다. 그놈의 스트레이트. 스트레이트라는 말이 스트레스를 줬다. 스트레이트 뉴스를 이렇게 소홀히 대접해선 안된다는 끊임없는 지적. 토요판 준비팀장인 내가 단 한번도 스트레이트 부서에서 일한적이 없다는 점이 우려를 더 심화시켰을까.

신문은 어제와 오늘의 뉴스를 알려주는 매체다. 스트레이트 뉴스전달 기능을 가벼이 여길 순 없다. 독자들은 오늘 신문의 콘텐츠를 종이로, 인터넷으로, 휴대폰으로 본다. 그러곤 점심시간에 화제로 올린다. 기자는 오늘 사람들이 재잘거린 이야기를 매개로 내일 신문의 기사를 쓴다. 독자들에게 익숙한 이야기를 재생산하고, 수준을 높이고, 확장한다. 독자들이 오늘 점심은 물론 지난주에도 몰랐던 이야기를 내일 신문에 꺼내기는 불안하다. 가끔 한번이 아니라 매주 꺼내기는 더더욱 불안하다. 토요판에 대한 비판의 맥락도 바로 이 지점에 있지 않은가 싶었다. 그래서 불안했던 것이다. 이해할 만 했다. 나는 그 불안을 불식시켜야 했다. 어제 몰랐고, 지난주에도 몰랐고, 지난달에도 몰랐지만 내일 독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파될 콘텐츠를 생산하면 안심할지도 몰랐다. 그제와 어제와 오늘의 이야기 역시 디딤돌로 삼되, 다르고 참신한 방식으로 써야 했다. 그렇게 못할까봐 불안했다. 2011년의 크리스마스가 지나갔다. 2012년이 왔다. 토요판 첫 호 발행은 조금 미뤄져 2012년 1월28일로 확정되었다.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고경태. 한겨레 편집국 신문부문장. <유혹하는 에디터>에서 <1968년 2월 12일>까지 4권의 책을 썼다. 2009년에 낸 <유혹하는 에디터>가 편집자를 다뤘다면, 2016년의 이 연재물은 편집장 이야기다. <한겨레21> 편집장, <씨네21> 편집장, esc 팀장, 오피니언넷 부문 기자, 문화스포츠 에디터, 토요판 에디터 시절의 에피소드로 버무릴 예정이다. 격주 연재.  

편집 : 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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