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불패] 봄나물, 그 이름들의 의미

봄비가 온갖 곡식을 윤택하게 한다는 곡우(穀雨)를 지나면서 정말 알맞게 단비가 내리더니 벌써 내일(6일)이면 여름에 들어선다는 입하(入夏). 그러나 이 즈음부터 봄나물은 제철을 맞는다. 냉이 같은 것은 겨울나기 식물이니 이른 봄부터 즐길 수 있지만 어린 순이나 잎을 먹는 나물은 이 때가 제철이다.  

▲제철 맞은 봄나물. 제각기 다른 향내만큼 얽힌 사연도 각별하다.

대개 요리법이나 건강의 효능 정도로만 봄나물들을 알고 있지만 이들에게도 아름다운 꽃말과 이름의 유래가 있다. 제각기 다른 향내만큼이나 의미도 각별하다. 몇몇 봄나물에 얽힌 사연과 이름의 유래를 살펴보았다. 

‘어머니 마음’을 품은 냉이

▲독특한 향이 일품인 냉이. ⓒ서동일

봄나물의 대표격인 냉이는 지방에 따라 '나생이' 또는 '나새'로 불린다. 냉이 제(薺), 나물 채(菜)를 써 '제채'라고도 한다. 독특한 향이 일품인 냉이는 두해살이 식물이다. 추운 겨울에도 냉이가 얼어 죽지 않는 비결은 잎에 있다. 냉이는 뿌리 주변에서 나는 잎과 줄기에서 나는 잎 모양이 서로 다르다. 이 중 뿌리 주변에서 나는 잎은 땅에 바짝 달라붙어 식물체를 추위로부터 보호한다.

냉이의 영문명은 'mother's heart(어머니 마음)’ 또는 ‘shepherd's purse(양치기 주머니)'다. ‘양치기 주머니’는 냉이의 삼각형 모양 꽃잎이 과거 양치기들이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주머니와 비슷하게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머니 마음’이란 이름은 냉이가 겨울을 나는 모습 때문에 붙여졌다. 냉이가 겨울을 날 수 있도록 감싸는 잎의 모습이 자식을 지키는 어머니 마음과 닮았기 때문이다.

이런 냉이의 꽃말은 '나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이다. 겨우내 힘껏 땅에 붙어 찬바람으로부터 냉이를 보호해주는 뿌리 잎과 ‘어머니 마음’이라는 이름, 그리고 모든 걸 바친다는 냉이의 꽃말이 서로 멀지 않다.
 
하룻날의 아름다움, 원추리

▲새싹 모양 때문에 '득남초'로도 불린 원추리.

봄에는 어린 싹을, 여름에는 꽃을 따 나물로 무쳐 먹는 원추리는 '망우초(忘憂草)'라고도 한다. 근심을 떨쳐버릴 만큼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꽃말은 그 아름다움에 걸맞게 '지극한 사랑'이다. 아름다움이 오래가지는 않는다. 활짝 핀 꽃은 저녁이면 금세 시들어 아름다움을 잃는다. 이런 원추리의 영문 이름은 'hemerocallis’ 또는 ‘a day lily', 곧 ‘하룻날의 아름다움’이란 뜻이다.

원추리는 예부터 ‘득남초’로 불리기도 했다. 원추리 꽃잎을 먹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속설이 따라다녀 동양화에도 자주 그려졌다. 이런 속설이 생긴 것은 이른 봄 원추리의 새싹이 사람 인(人)을 거꾸로 한 것과 같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단단히 언 땅 틈새로 사람 모양의 싹을 밀어 올리는 원추리의 모습이 속설의 이유를 짐작케 한다.

마음을 달래는 유채

▲'명랑과 쾌활'이란 꽃말의 유채. ⓒ서동일

해마다 봄이면 온통 노란빛으로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게 유채다. 제주도의 대표 꽃이기도 해서 따듯한 바람에 출렁이는 노란 물결은 제주 바다와 함께 장관을 이룬다.

유채(油菜)는 말 그대로 ‘기름나물’이라는 뜻이다. 지금 제주도에 유채꽃이 많은 이유도 유채가 기름을 내기 때문이다. 바닷바람이 심하게 부는 제주도에서는 참깨농사를 짓기 어려웠다. 그러니 참기름이 귀했고, 심할 때는 식용 기름을 구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 때 귀한 역할을 해준 것이 바로 유채다. 태풍이 몰아치기 전 재배가 가능한 유채는 식용 기름을 짜기 위해 많이 심어졌다.

유채꽃은 일본어로 '나다메'라 하며 '위로나 마음을 달래는 무엇'을 뜻하는 단어 '나다메'와 그 음이 같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유채씨를 공양함으로써 무병무사를 기원한다. 유채의 꽃말은 '명랑과 쾌활'이다. 봄바람에 흔들리는 유채의 생동감이 꽃말과 어울린다.

사나운 달래

▲쌉쌀한 맛이 특징인 달래. ⓒ서동일

달래는 사실 마늘의 일종이다. 봄나물 중에서 달래가 유독 쌉쌀한 맛으로 유명한 이유다. 달래는 소산(小蒜), 야산(野蒜), 산산(山蒜)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각각 작은 마늘, 들마늘, 산마늘이란 의미다.

달래의 영문명은 'Wild Rocambole'로 ‘사나운 마늘’이란 뜻이다. 달래는 속담이나 그 쓰임에도 그 맛만큼이나 사나운 성질을 많이 품었다. 이를테면 일을 함부로 거칠게 하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가리켜 '미친년 달래 캐듯 한다'는 속담이 있었다. 달래는 약재로도 쓰였다. 해독 효과가 있어 독벌레에 물리거나 상처를 입었을 때 달래를 빻아 상처부위에 발랐다. 미친년과 달래의 거칠고 사나운 성격이 닮았다.

이 밖에도 잎 모양이 말발굽 모양과 닮아 마제엽(馬蹄葉)이라 불리기도 하는 곰취는 '보물'이란 꽃말을 가지고 있다. 씀바귀에게도 꽃말이 있다. 그 쓴 맛에 어울리게 고채(苦菜)라는 이름을 가진 씀바귀의 꽃말은 '순박함'이다.

늘 오고 또 가는 봄날이 아쉬운 건 봄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많기 때문일 터이다. 주말쯤에는 산과 들로 나가 봄나물을 관찰해보는 건 어떨까? 시장에서 한 움큼 봄나물을 사서 이름과 꽃말만큼이나 독특한 맛을 즐겨보면 가는 봄도 한동안 혀끝에 머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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