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리스티클] ③ 젊은층의 좌절과 불안 해부한 문제작

‘헬조선’과 ‘이생망’. '지옥 같은 한국'에서 '이번 생은 망했다'고 자조하는 청년이 적지 않다. 국내총생산(GDP), 대학 진학률, 기대수명 따위로 본 나라의 위상은 역사상 그 어떤 시기보다 눈부신 게 오늘의 한국인데, 청년들은 왜 절망하면서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일까. ‘약해 빠진 요즘 젊은 애들’이란 질책에 앞서, ‘더 노력하라’는 충고에 앞서 청년의 현실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노력이 있어야 기성세대도 ‘꼰대’라는 비아냥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청년 세대는 왜 특별히 더 불안한 것인지, 어떻게 해야 갑갑한 현실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는지,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한 여섯 작가의 문제작을 <단비뉴스>가 엄선했다.

1. 장강명, <표백>, 한겨레출판

현실의 곤궁함과 청년들의 고민을 환상 속에 가져다 놓은 것 같은 이야기는 공대를 나온 일간지 정치부 기자에게서 나왔다. <표백>으로 2011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할 당시 동아일보 기자였던 장강명(41)은 이제 장편 소설만 여섯 권을 출간한 전업 작가다.

그는 소설 초반부에 ‘2000년대 초중반 청년세대를 정의한 말’을 다음과 같이 간추렸다. 창조(Create)와 열정(Passion)을 가진 디지털(Digital) 시대의 소비자(Customer). 그때의 청년이 지금 30대가 되었고, 세상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7급 공무원, 언론사 취업 등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이 등장하는 이 소설에서 청년은 ‘표백세대’로 정의된다. 저항과 개성을 용납하지 않는 세계에서 순응과 몰개성을 강요받으며 청년들은 희멀겋게 표백된다. 혁명과 변혁을 꿈꾸기는커녕, 사회를 비판할 권리조차 박탈당한다. 개인의 실패는 각자의 무능력 탓으로 귀결된다. 이미 완성된 사회에서 표백세대는 순응•타협•소극적 저항•적극적 저항의 네 가지 방법으로 살아가지만 어떤 것도 사회를 움직이지는 못한다.

<표백>의 주인공이 네 가지 방법을 넘어 선택한 마지막 한 가지는 무엇일까? 매력적이지만 실천할 엄두는 나지 않는 방법이다.

▲ ⓒ 한겨레출판

2. 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개마고원

사회학자 오찬호는 대학 강사를 하며 4~5개 대학에서 이십대 대학생들을 만났다. 그가 본 대학생들은 기존의 정의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자기계발’에서 만족을 구하는 이십대들은 파업 노동자 등이 살기 위해 하는 투쟁을 이해하지 못한다. 차별과 해고를 ‘치열하게 살지 못한 결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칼날 같은 자기 통제와 시간 관리를 해가며 살아가는 자신에 비해 덜 좋은 학교에서 낮은 성적을 얻은 이들이 ‘떼써서 정규직 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밀어내고 버텨야 살아남는 사회 구조에서 조롱과 냉소가 마약처럼 팔린다. 자기계발은 상비약이다.

오찬호는 그들을 ‘괴물이 된 이십대’라 부른다. 지역균형선발자를 ‘지균충’, 기회균등선발특별전형자(저소득층, 농어촌학생, 장애인 등)을 ‘기균충’이라 부르는 일부 20대들. 밀려나지 않기 위해 밀어내야만 하는 ‘암울한 사회’에서 지금도 ‘충’들은 만들어진다. 우리는 20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차별에 찬성하는 청년’과 ‘위로와 질책으로 일관하는 기성세대’ 모두가 생각해 봐야 할 질문이다.

▲ ⓒ 개마고원

3. 강준만, <청년이여, 정당으로 처들어가라>, 인물과사상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 

만으로 올해 60세가 된 진보 논객 강준만은 이 같은 슬로건을 내걸었던 ‘88만원 세대 담론’의 한계를 지적한다. 조금 더 ‘실질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피부에 와 닿는 실익’이 그들을 움직인다. 짱돌이 아니라 토플책을 계속 들어도 좋다. 그러면서 조금만, 아주 조금만 공동 대응에 관심을 보여주면 된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존 진보진영의 거창한 이념이나 끈끈한 연대를 바탕으로 한 운동이 아니다. 아르바이트 처우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졌던 ‘청년유니온’은 한 번도 ‘알바’에게 주휴수당을 준 적이 없던 대형 커피전문점들의 변화를 이끌어냈고, 학생들 기숙사를 짓자며 시작했던 ‘민달팽이유니온’은 청년 세입자들을 위한 주택 공급과 주거권 보장, 주거상담 등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저자는 이들이 성취한 것처럼 전국 방방곡곡 각자의 자리에서 청년들이 결집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시민적 고충을 주변의 친구에게 털어놓는 것이 혁명의 시작이 될 수 있다.

그렇게 각자가 선 자리에서 작은 일들로 승리의 경험을 쌓은 다음에는 정당으로 쳐들어가라고 강준만은 말한다. 웅크렸던 개개인이 정치에 뛰어들어 어떤 부분이 고달프고 어떤 부분이 우리를 침묵하게 만드는지에 대해서 직접 목소리를 내야 한다. 어떤 당이든 좋다. “청년 정치는 박근혜 대통령과 싸우는 정치가 아니며, 철저히 이슈 중심으로 미래와 싸우는 정치여야 한다.” 저자는 조성주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미약하지만 제법 현실적인 대안이 아닐까.

▲ ⓒ 인물과사상사

4. 박종훈, <지상 최대의 경제 사기극, 세대 전쟁>, 21세기북스

과거 고성장 시대에는 국가부채가 어지간히 늘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인구도 늘고, 경제규모도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성장과 함께 찾아온 고령화 사회에서는 국가적으로 노인부양 비용이 점점 늘고 늘어난 비용은 청년들에게 빚 폭탄으로 떨어진다. 청년들의 낮아진 구매력은 부동산으로 쌓아 올린 경제를 휘청거리게 한다. 청년은 기성세대를 원망하고, 기성세대는 자신이 쌓아온 것을 잃을까 두려워한다. 곧 벌어질 ‘세대전쟁’ 시나리오다.

이미 그 전조가 전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미국은 17조 달러가 넘는 국가채무를 청년세대에게 고스란히 떠넘기게 되는데도 고령자 복지비용을 줄이지 못한다. 일본의 60대가 사회보장제도로 얻을 수 있는 ‘생애 순이익’이 평균 4,875만 엔(약 5억5000만 원)인데 비해, 30대는 1,202만 엔(약 1억3000만 원), 20대는 1,660만 엔(약 1억9000만 원)의 ‘생애 순손해’를 보게 된다. 유럽 곳곳에선 청년들의 대탈출이 시작됐다. 지금 여기에서 대한민국은 어떻게 세대 전쟁을 극복할 것인가?

저자 박종훈(46)은 세대 간 공멸을 피하기 위한 대안으로 유럽 각국의 사례를 제시한다. 독일 대학생들은 등록금이 무료이고 생활비로 한 달에 최고 643유로(약 100만 원)를 25년 무이자로 대출받을 수 있다. 핀란드는 한술 더 떠 무료 등록금은 물론, 대다수 대학생에게 한 달에 최고 500유로(약 75만 원)의 생활비를 무상 지원하고 있다. 임대주택 등 청년 주거지원도 있다. 이 나라들은 젊은 세대에 대한 지원이야말로 국가의 미래를 지키는 가장 효과인 투자라고 생각한다. 반면 청년에게 투자할 수 있었던 돈을 부동산에 몰아 준 일본이라는 길도 있다. 우리는 어느 길을 따라가야 할까. 한 일본인은 자신들이 결코 가지지 못한 우리나라의 가장 큰 장점으로 옆에 ‘일본이라는 반면교사’가 있다는 점을 꼽았다.

▲ ⓒ 21세기북스

5. 가이 스탠딩, <프레카리아트>, 박종철출판사

“프레카리아트는 희생자, 악당 혹은 영웅도 아니다. 그저 우리들 가운데 다수다.”

국내 한 호텔의 식당에서 일하던 청년은 84일간 84번의 근로계약서를 썼다. 한국은 고용이 매우 불안정한 ‘초단기근속’의 나라다. 근속연수가 1년 미만인 단기 근속자가 전체 노동자의 3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많다. 한편, 2016년 9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역대 최고치인 54 대 1을 기록했다. 일정 소득과 고용 안정성이 보장되는 ‘괜찮은 일자리’는 대기업과 전문직, 공공부문 일부로 국한된다. 안정된 일자리를 겨냥한 경쟁은 과열되고 구직 포기자가 늘어간다. 파편화된 청년들이 내는 목소리는 점점 작아진다.

‘새로운 위험한 계급’ 프레카리아트는 ‘불안정한(precarious)’과 ‘무산계급(proletariat)’을 합성한 조어로 비정규직, 파견노동자, 실업자 등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프레카리아트가 급증하는 사회에서는 언제든 프레카리아트가 될 수 있는 다수의 사람이 걱정하고 소외당하고 분노하며 사회병리적 현상을 보인다. 여성, 이민자, 고령자 등 프레카리아트를 구성하는 다양한 하위집단 가운데 핵심을 이루는 집단이 바로 청년이다.

청년이 항로를 잃은 세계는 어떤 어려움에 직면할까? 가이 스탠딩(68)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기본소득에 관한 담론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 ⓒ 박종철출판사

6. 손아람•이창현•유희•조성주•임승수•하종강, <너는 나다>, 레디앙•후마니타스•삶이보이는창•철수와영희

“전태일씨, 지금 잘 살고 있습니까?”

소설가 손아람(36)의 질문으로 시작하는 <너는 나다>는 열사 전태일의 40주년을 기념하는 책이다. 6명의 작가와 4개의 출판사가 힘을 합쳐 2010년에 한 권의 책을 펴냈다. 우리가 아는 전태일은 1970년 11월 13일 죽었다.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몸에 불을 지르고 ‘열사’가 되었다. 그러나 전태일의 어머니에게 전태일은 사람을 너무나 사랑했던 아들이었을 뿐이다. 사람을 사랑했던 청년 전태일의 죽음 뒤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이 책은 ‘열사 전태일’과 이름이 같은 현재의 ‘전태일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평택, 인천, 부산, 전주, 거제에서 다섯 명의 전태일을 만났다. 극장 안내원, 선박 배선공 등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열사 전태일’과 묶어 우리 시대 ‘전태일 열전’을 만들었다. 또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활고와 삶의 고민들, 사회운동에 대한 열정은 네 명을 주인공으로 하는 ‘청춘일기’에, 청년들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는 음악과 문학을 하는 청년 세 명과의 ‘청춘수다’에 담았다. ‘열사 전태일’이 지키고 싶었던 노동의 가치에 대해 설명하는 ‘노동백과’도 귀하다. 노동백과는 노동, 근로기준법, 노동자, 파업, 즐거운 노동으로 나뉘어 문답식으로 이어진다.

2016년, <너는 나다>가 나온 지 6년이 지났다. 책에 나온 ‘전태일들’과 ‘청춘들’, 그리고 오늘 이 순간 젊은 층의 삶이 46년 전 ‘열사 전태일’의 삶과 겹쳐진다. 지금 다시 손아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지금 잘 살고 있습니까?”

▲ ⓒ 레디앙•후마니타스•삶이보이는창•철수와영희

편집 : 이명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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