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 인도인의 ‘9/11테러 수난기’ 낯설지만 강한 흡인력
[씨네토크] 카란 조하르 감독의 <내이름은 칸>

“나는 대통령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해야 합니다. 내 이름은 칸이고,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
 

▲ 영화 <내이름은 칸> 포스터.
200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공항. 자폐증과 천재성이 함께 나타나는 아스퍼거증후군을 앓고 있는 리즈반 칸(샤룩 칸 분)은 이슬람교도, 즉 무슬림이라는 이유만으로 검색대에서 붙잡힌다. 테러범이 아닌지 의심하는 공항 직원은 칸에게 워싱턴DC로 가려는 이유를 묻는다. 칸은 대답한다. 자신이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는 것을 대통령에게 말해야 한다고.

이슬람권에서 칸이라는 성은 우리나라의 김 씨처럼 흔하다고 한다. 카란 조하르 감독이 만든 <내 이름은 칸>은 9.11테러 이후 칸이라는 성을 가진 인도출신 이슬람 청년과 그 가족이 겪는 오해와 고통, 비극을 통해 미국 사회의 편견과 폭력성을 고발하고 있다.

이 영화는 <용감한 자가 사랑을 얻는다>(1995) 이후 200여 편의 작품을 통해 ‘인도 영화계의 신’으로 불리는 배우 샤룩 칸이 주인공을 맡았지만 한국 관객에게는 아직 익숙치 않은 ‘발리우드(봄베이+할리우드)’ 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24일 개봉이후 4월 둘째 주말 관객 8만6067명으로 박스오피스 3위를 차지하는 등 심상치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개봉 이후 지난 17일까지의 누적관객 수는 31만 5354명으로 집계됐다. 낯선 인도영화가 한국 관객을 이처럼 강하게 끌어당기는 매력은 무엇일까?

장애가 있는 칸에게 어머니는 세상을 사는 지혜와 용기를 가르쳤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단다. 좋은 행동을 하는 좋은 사람과 나쁜 행동을 하는 나쁜 사람. 그리고 다른 차이는 없어.” 칸은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자폐증으로 ‘바보’라는 오해도 받고 사회성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칸은 기계를 고치는데 아주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동네 주민들이 고장 난 기계를 들고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다. 또 낱말 맞추기 대회에서 1등을 하는 등 처음 보는 것을 외우는 데도 탁월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칸은 동생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한다. 동생이 다니는 회사의 화장품 외판원 일을 맡아 제품의 단점도 솔직하게 말하는 등 순수한 자세로 열심히 일한다. 칸은 화장품 일로 우연히 만난 ‘싱글맘’ 만디라(까졸 분)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만디라는 칸이 노란색과 날카로운 소음을 싫어하는 전형적인 자폐증상을 보이지만 자신과 아들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과 인간성에 감동을 받는다. 만디라와 칸은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의 장벽을 넘어 결혼한다.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어머니의 유언대로, 칸은 행복한 가정을 꾸려간다.

 ▲ 주인공 칸이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난 모습(위), 테러범으로 오인 받아 감옥에 갇힌 칸의 모습(아래). ⓒ 영화 <내이름은 칸>의 한 장면

'9.11테러'가 앗아간 칸의 행복한 가정생활

하지만 그 행복은 2001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에 대한 비행기 자살공격, 즉 ‘9.11테러’가 일어나면서 산산조각이 난다. 칸이 테러범들과 같은 이슬람교도라는 이유 때문에 만디라는 직장을 잃었고, 아들은 학교 친구들로부터 집단 구타를 당해 죽게 된다. 만디라는 모든 원망을 칸에게 돌린다. 그리고 “대통령을 만나 당신이 테러리스트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다시 받아주겠다”고 못을 박는다. 그래서 칸은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배낭 하나만 메고 길을 떠난다.

워싱턴DC로 향하는 긴 여정에서 그는 테러범으로 오해를 받고 고문도 당한다. 하지만 어떤 오해와 편견에도 좌절하지 않고, 타협하지도 않는다. 백인들의 시선에 상관 없이 무슬림 종교의식을 치르고, 무슬림 사원에서는 테러를 계획하는 종교 리더를 신고하기도 한다. 길을 가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면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돕는다. 종교와 피부색, 민족의 구분 없이 세상을 오로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만 구분하는 그의 시선에 관객들도 어느새 서서히 동화되어 간다. 

카란 조하르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문화적, 정치적, 종교적 오해와 편견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영화가 제작된 후 주연배우 샤룩 칸이 실제로 미국 공항 검색대에서 비슷한 이유로 조사 받은 일이 있다고 하니, ‘오해와 편견’은 아직도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는 마지막 부분에서 이야기 진행이 너무 갑작스럽고, 전혀 닮지 않은 오바마 대통령이 등장하는 등 완성도에 다소의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남녀 주연 샤룩 칸과 까졸의 온 몸을 던진 연기는 관객에게 여운이 남는 큰 울림을 전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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