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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탈핵 합의’를 낳았다
[원전재앙은 막자] ⑭ 독일은 어떻게 결단했나
2016년 02월 11일 (목) 20:16:32 김민지 기자 mgone357@naver.com

“(독일)연립정부는 오랜 협의 끝에 원자력발전을 끝내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번 결정은 일관되고 확고하며 명료합니다. 번복될 수 없습니다.”

2011년 5월 30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모든 원전을 2022년까지 폐기한다”고 선언한 후, 노르베르트 뢰트겐 환경부 장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이렇게 설명했다.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은 이 소식을 전하면서 "30년 전쟁이 끝났다"고 표현했다. 지난 40년간 원전을 지지하는 보수진영과 반핵평화운동진영 간에 벌어졌던 싸움을 17세기 초 30년간 유럽에서 벌어졌던 구교와 신교 간의 처절한 전쟁에 비유한 것이다.

   
▲ 2011년 5월 30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모든 원전을 2022년까지 폐기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 <BBC> 화면 갈무리

환경단체와 대다수 독일 국민은 이 결정에 환호했다. 반면 원전을 지지해 온 산업계 등 보수진영은 반발했다. 독일이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놀라 도박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일간지 <디벨트(DW)>는 "원자력을 포기하는 것은 독일을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 중 하나로 만든 경제모델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5년여가 흐른 지금도 틈만 나면 '전기료가 비싸 독일의 산업경쟁력이 떨어진다'며 탈핵(탈원자력)정책을 흔든다. 그러나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투자로 '탈원전'은 물론 '탈화석연료'까지 100% 달성하겠다는 독일 정부의 전략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 등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며 순항하고 있다.

선거에서 ‘표’로 말한 국민들

독일 정부가 ‘탈핵’을 결정한 게 2011년이 처음은 아니다. 1986년 옛 소비에트연방, 현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전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난 뒤 1998년 ‘핵발전 중단’ 공약으로 집권한 사회민주당(SPD)·녹색당(Bündnis 90/Die Grünen) 연립정부는 2000년에 역사적인 '원자력 합의'를 끌어냈다. 오는 2022년까지 핵발전을 전면중단하기로 원전운영 기업들과 합의한 것이다. 당시 전력생산의 27%를 원전에 기대고 있던 독일 상황에서 획기적인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보수적 색채의 기독교민주당(CDU)·자유민주당(FDP) 연립정부가 2005년 집권하면서 이 원자력 합의는 위기를 맞았다. 독일 제조업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전력요금이 싼 원전을 계속 돌려야 한다는 재계 등의 압력 탓에 메르켈 총리는 2010년 원전 수명을 연장하기로 했다. 반핵단체들을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일었지만 정부의 입장은 이미 기울었다.

이듬해인 2011년 터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원전 안전에 대한 독일 국민의 우려에 다시 불을 붙였다. 사고 직후인 3월 27일 치러진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선거에서 탈핵을 외친 녹색당 소속의 빈프리트 크레치만 후보가 주지사로 선출됐다. 1953년 이후 기독교민주당이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던 지역이었다.

   
▲ 독일 녹색당의 반핵시위 모습. 2011년 터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원전 안전에 대한 독일 국민의 우려에 다시 불을 붙였다. ⓒ Flickr

후쿠시마 사고로 탈핵 여론이 높아지자 일단 노후 원전 7기와 고장으로 멈춘 1기의 가동을 3개월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던 메르켈 총리는 고민에 빠졌다. 원전 사고의 위험을 눈으로 다시 한 번 확인한 국민의 탈핵 압력도 무시할 수 없고, '원전을 멈추면 그 전력 공백을 어쩔 것이냐'는 현실론도 외면하기 어려웠다. 메르켈 총리는 사회적 논의를 거쳐 결정하기로 하고 '안전한 에너지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구성했다. 종교 지도자, 대학교수, 원로 정치인은 물론 시민단체와 노조, 재계 대표가 고루 포함됐다. 마티아스 클라이너 독일연구재단(DFG) 이사장과 클라우스 퇴퍼 전 환경부 장관이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전문가 17명 ‘윤리위원회’의 11시간 토론 생중계

각기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참여한 윤리위원회인 만큼 탈핵에 대한 찬반양론도 팽팽했다. 쉽게 결론이 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윤리위는 결과뿐 아니라 토론 과정을 공개함으로써 시민들에게 원전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2011년 4월 18일, 윤리위원회 위원 17명이 ‘원전 유지’와 ‘탈원전’으로 나뉘어 11시간 동안 토론을 벌였다. 이 토론은 공영방송 <피닉스>를 통해 독일 전역에 생중계됐다. 시민들은 생방송을 보면서 이메일과 전화,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질문을 보내고 다채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런 시민 의견까지 모두 고려해서 윤리위는 하나의 합의에 도달했다. 메르켈 총리가 발표한 대로, 독일의 모든 원전을 2022년까지 폐쇄한다는 것이었다. 싼 전기료가 뒷받침하는 경제적 효율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핵발전을 지속해선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신재생에너지가 충분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게 판단의 이유였다.

일본 마쓰야마대 경제학부 장정욱 교수는 지난해 2월 4일 <주간경향> 기고에서 독일의 탈핵 합의에 대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가하여 투명하게 토론하는 제도가 형성되어 있기에 가능했다”고 평했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국가적 차원의 윤리위원회가 활동하기에 앞서 지역사회 등 다양한 수준에서 시민들이 에너지 정책에 대해 발언해 왔고, 녹색당 등 탈핵과 환경보호를 전면에 내세우는 정당이 형성돼 있으며, 다른 정치세력이 연대하는 ‘협의(協議)의 정치문화’가 발달해 있다.

독일 시민사회의 반핵운동은 뿌리가 깊다. 1969년 첫 원자력발전소의 상업운전이 시작된 뒤 시민사회는 핵발전의 안전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1975년 프라이브루크(Freiburg)시 인근의 비일(Wyhl)에서 원전 건설이 추진되자 프라이부르크 시민들은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거쳐 이 계획을 무산시켰다. 이후 1976년 부르크도르프(Burgdorf)의 원전 건설 반대 시위, 고어레벤(Gorleben)의 사용후핵연료 최종처리장 건설 반대 시위 등이 이어지며 반핵운동세력이 성장했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원전 사고,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이들의 우려가 근거 없는 게 아니었음을 보여줬다.

신재생에너지 급성장, '대안 있음'을 입증

독일 시민사회와 중앙 및 지방정부는 다른 한편으로 신재생에너지 연구개발과 투자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에너지 대안을 만들었다. ‘원자력 합의’의 일환으로 독일 환경부는 발전차액보상제(FIT) 등 다양한 제도를 통해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절감설비 등의 개발과 투자를 적극 지원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주민들이 전력생산협동조합 등을 만들어 태양광, 풍력, 지열 등 분산형 전원에 투자하는 것을 밀어줬다.

   
▲ 유럽 최초의 재생에너지협동조합을 만든 독일의 쉐나우 마을. ⓒ Goldman Prize 홈페이지 

2011년 메르켈 정부의 ‘에너지전환(Energiewende)’ 정책이 본격화하면서 독일의 신재생에너지 산업은 더욱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량이 2010년 163테라와트시(TWh)에서 2014년 96.6TWh로 약 40% 줄어든 반면 재생에너지는 같은 기간 104.8TWh에서 157.4TWh로 약 50%나 증가했다. 햇빛, 바람, 물, 지열 등 자연을 이용해 만드는 청정 전기의 생산량이 원전 발전량의 1.5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독일의 신재생에너지 산업은 기술적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내수는 물론 수출도 증가하고 있으며, 새로운 일자리도 많이 만들어내고 있다. 독일 환경부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일자리가 2004년 16만500개에서 2007년 24만9300개, 2012년 약 37만8000개로 늘었다. 독일경제연구소(IFO)는 이 수치가 오는 2020년 40만 개, 2030년에는 71만 개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 환경단체들은 우리도 독일의 경험을 참고해서 ‘탈핵’과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가 원전을 포함한 에너지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민주적 토론을 거쳐 바람직한 에너지 구조를 국민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에너지정의행동 이헌석 대표는 “정부 정책을 바꾸기 위한 시민들의 힘,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대참사 후 독일, 벨기에, 스위스, 프랑스 등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들은 원전을 폐기하거나 줄여가는 ‘탈원전’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설계수명을 넘긴 월성 1호기를 연장 가동하고, 새로운 원전을 증설하기로 하는 등 거꾸로 가는 모습이다. 노후 원전의 사고 가능성과 지역주민의 건강 피해, 대책 없는 핵폐기물 등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를 외면한 채 이처럼 ‘원전대국’으로 직진해도 되는 것일까. <단비뉴스>는 우리나라 원전 정책의 문제점과 원자력발전의 근본적 위험성을 짚어보고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에너지 체제’를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편집자) 

편집 : 서혜미 기자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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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30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모든 원전을 2022년까지 폐기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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