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타임루프물 '사랑의 블랙홀'과 '다다미 넉 장 반' 분석

과거로 돌아가고자 한 인간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나 인간은 길을 되돌아가는 것처럼 시간을 되돌아갈 수 없었다. 가지지 못 한 것에 대한 열망이 사그라지지 않음은 당연했다. 열망은 불만족스러운 현실의 다른 표현이다. 결국 인간은 상상 속에서라도 시간여행을 꿈꾸게 되었다. 1895년 허버트 웰스가 소설 <타임머신>을 발표한 이후 무수한 아류작들이 양산돼 널리 사랑받은 이유다. SF소설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시간여행이라는 요소를 할리우드가 전격적으로 차용하면서 시간여행은 영화의 매력적인 장르로까지 등극하게 되었다.   

간간이 등장하던 시간여행 영화들이 급증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였다. 서곡숙(2010)은 이 이유를 N세대가 열광했던 사이버 문화에서 찾는다. 사이버 문화, 가상세계, 가상현실 등이 제공하는 시간, 죽음,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은 시간여행 영화가 제공하는 쾌락의 주요한 요소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쾌락을 맛보기 위해 시간여행 영화를 소비한다. 

영화에 의해 시간으로부터 해방된 주인공들은 과거 혹은 미래로의 여행을 떠난다. 과거와 현재, 미래는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영향을 미친다. 주인공은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바로잡아 현재를 바꾸려 한다. ‘현실 바꾸기’ 판타지는 적잖은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과거에서 미래로 일방 통행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누구나 과거에 대한 깊은 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가 완벽하게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지는 않지만, 시간여행 장르물에서 주인공은 의지를 가지고 욕망에 따라 과거를 수정하여 현재를 바꾸려 한다.  

그러나 시간여행장르의 하위장르, 타임루프물에서 주인공의 시간은 유기적으로 이어져 일자로 쭉 뻗어있지 않다. 그보다는 고리(loop, 루프)처럼 둥글게 말려 주인공이 특정 시간대를 무한 반복하게 만든다. 특정 시간대의 어떤 일들은 고정되어 주인공이 아무리 애를 써도 절대 바뀌지 않는다. 다른 시간대인 과거로 가서 시도하는 현실 바꾸기의 판타지는 실현되지 않는다. 주인공은 그 고리를 탈출하고자 한다. 그러나 타임루프를 탈출하여 운명을 바꾸려는 주인공의 시도는 번번이 좌절되며 일어날 일은 어떻게든 일어난다.  

과거로 돌아가는 남자들

미국 영화 <사랑의 블랙홀>(1993, H. 래미스 감독)은 타임루프물의 장르적 요소를 잘 보여준다. 주인공인 기상 캐스터 필 코너스(빌 머레이)는 성촉절을 취재하기 위해 시골마을에 갔다가 폭설로 고립되고, 설상가상 자고 일어나면 어제와 똑같은 날이 반복되는 상황에 갇히고 만다. 성촉절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혼자만 알고 있는 필은 처음엔 이를 이용해 돈을 훔치거나 동네 아가씨에게 쉽게 접근하는 등 미래가 없는 삶을 즐긴다. 그러다 동료 PD인 리타(앤디 맥도웰)를 유혹하려고 똑같은 날이 반복된다는 사실에 착안해 그녀의 이상형을 알아내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지만 실패한다. 사랑도 실패한데다 똑같은 날에 갇힌 상황을 비관한 필은 결국 자살을 시도하지만 깨어나 다시 같은 날 아침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제야 필은 삶을 다시 돌아본다.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돕고 피아노를 배우고 시를 읽는다. 냉소적이던 필의 새로운 면을 발견한 리타는 그와 사랑에 빠지고 다음날 필은 무한히 반복되던 성촉절에서 빠져나온다.  

▲ 영화 <사랑의 블랙홀>의 주인공 필 코너스는 성촉절을 취재하기 위해 시골마을에 갔다가 자고 일어나면 어제와 똑같은 날이 반복되는 상황에 갇히고 만다. ⓒ 영화 <사랑의 블랙홀> 공식 포스터

일본 TV 애니메이션 <다다미 넉 장 반>(2010, 유아사 마사아키 연출)도 타임루프 요소를 신선한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학교 3학년인 주인공, ‘나’는 장밋빛 캠퍼스 라이프를 즐길 꿈에 부풀어 동아리에 들어가지만 짝사랑하던 소녀 코히나타에게 차인다. 상처받은 ‘나’는 친구 오즈와 함께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방해하며 2년을 보낸다. 저 동아리에 들어갔으면 바뀌었을 텐데,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을 텐데 하는 식으로 항상 불평을 늘어놓는 ‘나’의 바람대로 매회 마지막에서 시간이 정말 거꾸로 돌아간다. 다음 에피소드는 다시 ‘나’가 대학에 입학하는 시점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자신이 타임루프에 갇혔다는 사실을 모르는 ‘나’는 다른 동아리에 들어가도 똑같은 2년을 보내고 다시 후회한다. 그렇게 비슷한 스토리가 9번 반복된다. 

결핍이 만들어낸 시간여행, 시간여행이 만들어낸 성장

필과 ‘나’의 공통점은 남들처럼 삶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필은 시종일관 삐딱한 태도로 사람들을 무안하게 한다. 필에게 ‘얼간이’라며, 촌뜨기라며 면박당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삶의 기쁨을 잘 알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뭘 잘 모르는 사람은 오히려 필이다. 모든 것을 비꼬는 그는 행복하지 않다. ‘나’도 마찬가지다. 여자친구도, 제대로 된 친구도 없는 자신의 상황에 불평만 늘어놓는다. 정작 ‘나’가 원하는 장밋빛 캠퍼스 라이프를 쟁취하는 사람은 적극적인 태도로 현실을 사는 친구 오즈다. 필과 ‘나’는 삶이 자신의 입맛대로 변화하기를 바라지만 시청자가 보기에 변해야할 사람은 바로 이 둘이다. 

타임루프라는 요소는 그 변화를 위해 사용된다. 필은 같은 상황을 반복하면서 어쩔 수 없이 삶의 세세한 부분에 주목한다. 자신에게 친절을 베푼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고 시나 피아노 연주를 즐기면서 필은 현실이 얼마든지 재미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일상(日常)이 무한히 반복되는 비일상(非日常)을 겪으면서 필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존재로 성장하고 사랑도 얻는다. 

‘나’의 성장방식은 조금 다르다. 반복되기 전의 기억을 모두 갖고 있는 필과 달리 ‘나’는 어떤 과거도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이 없으니 성장도 없다. <사랑의 블랙홀>에서 시간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고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는 자는 필이었지만 <다다미 넉 장 반>에서는 시청자다. 시청자로 하여금 똑같은 오류를 반복하는 ‘나’에게 답답함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나’가 정말 성장하는 건 마지막 에피소드에 이르러서다. 아예 어떤 동아리에도 들지 않기로 선택한 ‘나’는 다다미 넉 장 반 크기의 자취방에만 머물며 더욱 보잘것없는 삶을 산다. 그러던 어느 날 밖에 나가려고 문을 연 ‘나’는 또 다른 방 안에 들어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창문으로 나가도, 벽을 부수고 옆으로 가도 또 다른 방일 뿐이다. 이상한 점은 똑같은 방인데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이다. 물컵을 놓았던 위치가 달라지고 사지 않았던 책이 꽂혀있기도 한다. 나중에야 ‘나’는 그 모든 방들이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던 길을 간 무수한 또 다른 나의 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장밋빛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다른 ‘나’들을 부러워한다. 방에서 나가기만 하면 현실을 적극적으로 살아가겠다 결심한 순간 ‘나’는 무한한 넉 장 반의 세계에서 빠져나온다.  

▲ 방에서 나가기만 하면 현실을 적극적으로 살아가겠다 결심한 순간 ‘나’는 무한한 넉 장 반의 세계에서 빠져나온다. ⓒ <다다미 넉 장 반> 화면 갈무리

필과 ‘나’를 통해 제작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모든 일은 자기 마음가짐에 달렸다는 것. 제작자는 아무리 반복해도 운명으로 정해진 일은 바뀌지 않는 타임루프 속에 주인공을 위치시킨다. 시행착오를 여러 번 겪으면서 주인공은 깨닫는다. 자신이 유일하게 바꿀 수 있는 것은 외부의 환경이 아니라 그 환경을 받아들이는 자신의 태도란 사실을 말이다. 항상 불평을 쏟아내던 필과 ‘나’는 현실을 긍정적인 태도로 대하면서 그제야 삶의 기쁨을 찾는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의 원제는 Groundhog Day, 성촉절이다. 이날 겨울 내 잠을 자던 마멋이라는 동물이 깨어나 자기 그림자를 보면 겨울 날씨가 6주 더 계속된다는 설이 있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겨울에 갇혀 있던 필과 ‘나’는 타임루프를 통해 메시지를 깨닫고 봄과도 같은 새로운 삶을 맞았다. 부디 필과 ‘나’가 마멋처럼 자신의 그림자를 되돌아보지 말고 값진 이 봄을 오래도록 즐기기를.  


편집 : 박성희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