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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이 암 발병, 무관심하면 안 되죠”
[원전재앙은 막자] ⑪ 지역주민 역학조사가 드러낸 위험
2016년 01월 28일 (목) 19:53:23 이문예 기자 moonye23@naver.com

지난 해 8월 21일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에서 열린 갑상선암 공동소송 2차 재판에 희끗희끗한 눈썹의 외국인이 원고 측 증인으로 나왔다. 유럽방사선위험위원회(ECRR) 과학위원장인 크리스토퍼 버스비(71) 박사였다. 유럽방사선위험위원회는 1997년 유럽의회 내 환경보호그룹의 주도로 설치된 단체다. 각국 원자력업계의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와 달리 독립적인 활동을 펼친다. 지난 2003년에는 ‘저선량 전리방사선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낮은 수준의 방사선도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했고 2010년에는 학계가 소홀히 다뤘던 인체 내부피폭 문제에 주목하는 등 ICRP와는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유럽 방사선 권위자, 한국 법정에 서다

“한국수력원자력의 피폭량 계산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준치 이하의 피폭도 암 발생의 원인이 됩니다.”

버스비 박사는 이날 5시간여에 걸친 증언을 통해 ‘원전과 인근 주민의 암 발생은 관련이 없다’는 한수원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ECRR의 최고 권위자 중 한 사람으로 세계 곳곳의 원전 건강피해 관련 소송에서 30여 차례 증언한 경험이 있는 그는 먼저 ICRP가 정한 피폭량 계산 기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설명했다. ‘방사능 에너지의 크기’를 ‘인체의 질량’으로 나누어 평균값을 구하는 ICRP의 단순 대입방식은 외부 피폭에만 적용 가능하며, 방사성 물질이 몸속에 들어가 세포 수준에서 피폭을 일으키는 경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원전 주변에서 발생하는 피폭의 대부분은 물이나 음식 등을 통해 인체 내에 흡입돼 일으키는 내부 피폭인데, 특정 방사성물질이 세포에 흡착되면 본래 에너지의 1만 배 이상으로 피폭을 일으킨다. 이 경우 한수원이 측정한 피폭량에 1만 배 이상을 곱해야 실제 피폭량을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이 버스비 박사의 주장이다. ICRP의 계산법으로 국내 원전 주변 지역의 암 발병률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피폭량 측정값이 지나치게 낮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 '해외 연구결과 원전과 갑상선암은 관련이 없다'며 홍보하고 있는 한수원. 그러나 우리나라는 원전이 주민들의 거주지역과 아주 가깝게 자리하고 있다는 특수성이 있다. ⓒ 한수원 블로그

버스비 박사는 기준치 이하의 피폭, 즉 저선량 방사능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상황이 암 발병에 더 치명적이라는 주장도 했다. 고선량 방사능은 세포 자체나 유전자를 파괴하지만, 저선량 방사능은 세포 유전자를 암세포로 변형시킨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한 반론도 있다. 약리학에서는 높은 독성이 있는 물질이라도 소량을 사용하면 오히려 좋은 효과를 내는 것을 ‘호메시스(Hormesis)’라고 한다. 여기서 유래한 말로 ‘방사선 호메시스(Radiation hormesis)'라는 용어가 있는데, 소량의 방사선은 오히려 생명체의 생리 활동을 촉진해서 암 발생률을 낮추거나 수명 연장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가톨릭의대 방사선과의 김종순(64) 초빙교수는 “저선량 방사능의 경우 암과 관계가 없다고 본다”며 “우리가 독을 소량 먹으면 몸에 좋은 경우가 있듯이 저선량 방사선의 경우 오히려 암 발생을 줄이는 경향성을 갖는다고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도 “일부에서 실험을 해보니 저선량에서도 암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다. 개인차라고 생각한다”며 아직 확실한 과학적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단언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미국 미주리대 티 디 러키 교수가 주장한 이 이론은 국내 원전찬성론자들이 자주 인용하지만, 일관된 결과가 없어 근거가 모호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원전 주변 지역 남녀 갑상선암 발병률 높아

한수원은 원전 때문에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문제 제기에 “기준치 이하의 방사능을 배출하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의 암 발병에 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국내 원전 지역 주민 545명의 갑상선암 공동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민심의 변영철 변호사는 버스비 박사의 증언과 함께 서울대 안윤옥 연구팀의 보고서 및 후속보고서를 중요한 증거로 내세워 이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서울대 의학연구원이 진행하고 안윤옥 서울의대 명예교수가 연구책임을 맡았던 ‘원전 종사자 및 주변지역 주민 역학조사 연구’는 원전과 암 발생의 인과관계를 밝히기 위해 1991년부터 2011년까지 20년간 진행된,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코호트 연구(전향적 추적조사)다. 1989년 전남 영광원전에서 근무하던 경비원의 아내가 뇌 없는 아기(무뇌아)를 두 번이나 유산한 후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자, 정부는 서울대 원자력영향·역학연구소에 조사를 의뢰했다. 영광, 고리, 월성, 울진 등 전국 4개 원전지역 주민과 대조지역 주민 등 총 3만6176명을 대상으로 했다.

   
▲ 한수원 월성본부 앞에 원전 수명 연장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월성 원전 1호기는 지난해 6월 수명 연장이 결정돼 현재 재가동되고 있다. ⓒ 이문예

보고서는 원전 5킬로미터(km) 이내에 거주하는 여성들의 갑상선암 발병률이 원전에서 30km 이상 떨어진 대조지역에 거주하는 여성들에 비해 2.5배 높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러나 정작 결론부에서는 “원전 종사자 및 주변지역 주민의 암 발병 위험성과 원전 사이에 인과적 관련이 있음을 시사하는 과학적 증거는 찾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려 논란을 일으켰다. 연구팀은 남성의 경우 동일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고, 갑상선암 외에 다른 암의 증가 경향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이 보고서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자 서울대 보건대학원 백도명 교수를 비롯한 15명의 전문가들이 보고서 재검토 및 재조사에 들어갔다. 백 교수팀은 지난해 9월 ‘원전 주변주민 역학조사 관련 후속 연구’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원 보고서의 자료를 다시 분석한 후속 보고서에서는 이 지역 주민들의 여성 갑상선암 발생률이 대조지역에 비해 3.1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기존 보고서와 달리 남성 갑상선암도 대조 지역에 비해 3.3배 높은 발생률을 보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남성 갑상선암은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라고 말하기보다 ‘경계성 수준의 유의성이 있다’고 표현합니다. 표본 수(암 환자 수)가 적은 것을 원인으로 보는데, 앞으로 관찰기간이 오래되고 암환자가 많이 확보되면 통계적으로도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후속 연구에 참여한 주영수 한림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남성 암 환자의 경우 비교 대상 표본의 수가 적어 통계적으로 의미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가톨릭의대 김종순 초빙교수는 “원전 주변이나 서울이나 방사선량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없으니까 사고가 나지 않는 이상 조사할 가치가 없는 상황”이라며 후속 보고서에 대한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전국 128개 지역에 환경방사선감지기를 설치해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원전 주변 지역과 수도권의 방사선량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결국은 토양이 오염됐을 때 문제가 될 수 있는데 토양이 오염되면 이렇게 암이 산발적이 아니라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남녀차이도 없다”며 “우리나라는 (갑상선암이) 서울과 원전 주변 지역을 포함해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다른 원인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다른 원인으로 ‘초음파 검진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후속보고서는) 원자력에 대해 두려움과 공포심을 조장하는 사람들의 비과학적 주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후속 연구보고서에서도 검진을 통해 환자 발견이 늘었을 가능성에 대해 검토가 이뤄졌고, 주변지역에서 대조지역에 비해 더 많은 검진이 이뤄졌거나 의료이용률이 더 높다는 정황은 나타나지 않았다.

전국 원전 지역 주민대상 세밀한 추적조사 필요

지난 2014년 법원은 '균도소송(<단비뉴스> 1월21일자 '원전 옆 살았더니 온 가족이 암과 장애'참조)'에서 역학조사 결과를 인용, 원전 주변지역 주민의 갑상선암 발병에 대한 책임의 일부가 한국수력원자력에 있다고 판단했다. 원전 근처(원전으로부터 5km 이내)에 거주하는 것이 갑상선암 발병에 영향을 끼쳤다고 본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제시된다. 원전으로부터 직접 누출된 방사선에 주민들이 피폭됐거나, 방사능에 오염된 해조류의 과다 섭취 등과 같이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다.

   
▲ 부산 기장군 고리 원전 앞바다. 해안가를 따라 이어진 미역, 다시마 건조대 뒤로 원전이 보인다. ⓒ 이문예

주영수 교수는 먼저 원전으로부터의 방사능 누출 가설에 대해 “확실한 과학적 근거가 필요하지만 ‘누출이 없다’고 표현할 수는 없다. 아직 근거를 못 찾아냈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근거가 없다고 한다면 이는 너무 많은 것들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가설에 대해서는 “해조류에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는 방사성 물질은 반감기가 짧지만 지역 주민들의 경우 생으로 섭취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주민의 건강 염려가 과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두 번째 가설을 설명하려면 해조류와 다른 오염 물질들은 왜 방사능에 오염이 됐는지부터 증명해야 하는 문제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아직 증거를 찾아내고 오염 과정을 입증할만한 조사는 진행된 것이 없다.

주 교수는 “국가가 암 등록 자료와 같이 국가적 차원에서 구축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매년 전국을 대상으로 주기적으로 관찰하면 원전과 관련한 다양한 문제를 잘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라며 관련 분야에서 꾸준하고 상세한 연구가 진행되기를 바랐다. 안윤옥 교수팀의 역학조사 보고서도 “코호트 규모가 작고 추적기간이 짧아 통계적 검정력의 한계가 존재한다”며 “코호트를 확대해 지속적으로 추적 관찰하는 후속연구가 반드시 수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원전은 다른 나라와 달리 매우 가까운 거리에 마을이 형성돼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주민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좀 더 세심하게 관찰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국내 첫 상업용 원자로인 고리원전 1호기가 1977년 가동을 시작한지 40여년이 되도록 건강권 관련 연구가 이뤄진 사례는 매우 드물다.

   
▲ 대만의 반핵운동가들이 고리원전이 보이는 해안가 곳곳에 붙인 반핵 스티커. ⓒ 이문예

갑상선암 공동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변영철 변호사는 암에 걸려 목소리까지 잃어버린 사람들을 만나면서 원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균도소송과 주민공동소송을 계기로 우리 국민들이 원전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주길 희망했다.

"원전은 더 이상 지으면 안 되고, 있는 원전도 폐기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암 걸려 다 죽는다니까요. 우리 모두가 전기를 쓰고 있으면서 원전 주변에 안 산다고 이렇게 (무관심)하면 안 되죠. 한수원은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원전은 꾸준히 방사선을 방출하고 있고, 그것 때문에 주민들은 암에 걸리고 있습니다."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대참사 후 독일, 벨기에, 스위스, 프랑스 등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들은 원전을 폐기하거나 줄여가는 ‘탈원전’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설계수명을 넘긴 월성 1호기를 연장 가동하고, 새로운 원전을 증설하기로 하는 등 거꾸로 가는 모습이다. 노후 원전의 사고 가능성과 지역주민의 건강 피해, 대책 없는 핵폐기물 등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를 외면한 채 이처럼 ‘원전대국’으로 직진해도 되는 것일까. <단비뉴스>는 우리나라 원전 정책의 문제점과 원자력발전의 근본적 위험성을 짚어보고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에너지 체제’를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편집자) 

편집 : 유수빈 기자

[이문예 기자]
단비뉴스 환경팀장.
당신과 걷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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