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마이클 무어 '자본주의 러브스토리'의 장르적 특성

‘나는 미국에서 가장 미움받는 남자가 됐다.’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마이클 무어가 저서 <히어 컴스 트러블(Here Comes Trouble)>에서 한 말이다. 글렌 벡은 그가 진행하는 뉴스쇼에서 공개적으로 ‘나는 그를 죽이는 걸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벡은 미국 극우방송 폭스의 대표적 진행자다. 무어에 대한 이런 반응은 미국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그의 다큐멘터리 영화 때문이다.

무어는 세계에서 가장 요란하게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논란이 있는 곳엔 그가 있고, 그가 있는 곳엔 논란이 있다. 무어는 한번 물면 끝까지 놓치지 않았다. 다국적 기업, 이라크전쟁, 건강보험제도 등 물불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권력과 싸웠다. 조지 W. 부시가 그에게 “제발 다른 일 좀 찾아보라”고 말했을 정도다. 미국 역대 최고 흥행 성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6편 가운데 <식코> 등 4편이 그의 작품이다. 2004년에는 <화씨 9/11>로 다큐멘터리 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2005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그를 선정했다.

▲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마이클 무어. ⓒ flickr

무어는 가장 현대적인 ‘시네마 베리테’ 스타일을 구현하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시네마 베리테는 1960년대 프랑스에서 발원한 다큐멘터리의 한 방식으로, 프랑스어로 ‘진실 영화’라는 뜻이다. 시네마 베리테 감독은 촬영 현장에 개입해 화면에 자신을 등장시키고 자기 의견을 전달하면서 이야기를 촉발한다. 시네마 베리테 스타일을 개척한 장 루슈는 카메라의 존재가 등장인물의 입을 열게 하고, 즉흥적이면서 자발적인 말을 하도록 유도한다고 믿었다. 그것이 ‘카메라 개입으로 촉발한 영화 속 진실’이라고 주장했다. 시네마 베리테 감독은 화면 속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위기를 만들어 진실을 포착한다.

자본주의 러브스토리와 시네마 베리테

무어의 최근 작품인 <자본주의 러브스토리>(2009)는 시네마 베리테의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다루면서 자본주의 폐해로 고통받는 당사자가 자본주의를 흠모하는 모순을 보여준다. 월가의 금융 그룹은 높은 이자율로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팔고, 정부는 기업의 부당이득을 봐주면서 한편으로는 주택담보대출로 피해를 본 서민들을 자택에서 몰아낸다. 무어는 미국 주택시장의 문제점과 월가 금융그룹의 부패를 비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금융위기를 '국가적 범죄'라는 이야기로 확장한다. 미국의 자본주의가 ‘1인 1표’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1원 1표’를 기반으로 하는 금권주의로 운영되면서 타락했다고 주장한다.

▲ <자본주의 러브스토리> 포스터. ⓒ 마이클 무어 공식 홈페이지

이 영화의 특징은 감독인 무어가 1인칭 프리젠터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무어는 직접 주인공이 되어 사건 가운데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목소리를 담는다. 그는 자신이 이야기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며 자신의 등장을 정당화한다. GM에서 33년간 일한 아버지와 함께 폐쇄된 GM 공장을 찾아가는 식이다. 화면에 야구 모자와 점퍼, 청바지를 입고 등장해 서민·노동자 계급으로 자신을 그리며 등장인물과의 연관성을 높이기도 한다. 관객은 이런 연출 때문에 감독의 참여를 받아들이고 자신과 동일시하며 그의 말을 진실로 믿는다.

무어는 사건에 직접 개입해 등장인물의 행위를 촉발하고 갈등을 조장한다.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의도한 상황으로 몰고 가는 기법을 자주 쓴다. GM이 1만8천 명을 해고하자 무어는 GM의 전 수석 로비스트 톰 케이를 찾아가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를 묻는다. 집요한 질문 끝에 결국 “더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더라도 GM 부도를 막아야 한다”는 답변을 끌어낸다. 이런 방식으로 개입 없이 관찰만 할 때는 보이지 않았던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 (좌) GM에서 33년간 일한 아버지와 공장 부지를 찾은 마이클 무어. (우) GM 회장을 만나기 위해 본사를 찾은 마이클 무어. ⓒ <자본주의 러브스토리> 화면 갈무리

시네마 베리테를 넘어 '무어 스타일'

무어는 시네마 베리테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블랙 유머와 풍자를 섞어 대중 친화적인 화법을 구사한다. 내레이션으로 직접 자기 생각을 말하며 풍자와 조롱을 통해 주제를 부각하기도 한다. 영화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직장을 잃은 사람들과의 인터뷰 배경 화면으로 미녀와 공놀이를 하고 자전거를 타는 부시의 영상이 나온다. 여기에 “임기 끝자락을 즐기고 있던 부시는 경제가 무너지자 마법의 단어를 꺼냈다”고 내레이션을 깐다. 이어지는 화면에 부시가 “자본주의는 여태껏 발명된 최상의 체제”라고 말하는 영상 자료를 붙인다. 부시를 직접 비난하기보다 화면 간의 충돌을 통해 그의 비인간적이고 거짓된 행동을 풍자해 폭로하는 것이다.

내레이션에 적합한 자료 영상을 찾기 어려울 때는 픽션 영상을 활용한다. 유명 영화의 한 장면에 희극적이면서 풍자적인 해설 내용을 더하는 식이다. 영화 도입부에 로마 제국을 배경으로 한 픽션 영화의 일부를 배치한 것이 한 예다. 심각한 빈부 격차, 법 제도를 무시한 인권 침해, 권력자의 무책임한 행동 등으로 멸망해 가는 로마 제국을 미국의 현재 상황과 비교한다. 이런 영상은 지루하거나 무거울 수 있는 다큐멘터리의 분위기를 전환하는 데 효과가 있다. 무어는 인터넷 방송 ‘페리스코프’에 출연해 “관객은 약이 아닌 팝콘을 원한다”며 “유머야말로 사회적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진정한 도구”라고 말했다.

<자본주의 러브스토리>는 희극적 요소를 가미한 프로파간다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속 장면들은 연대기적으로 배열되는 것이 아니라 주제 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재구성된다. 감독은 작위적인 음향과 의도적인 편집을 넣어 자신의 주장으로 관객들을 몰고 간다. 관객은 감독이 보여주는 자본 권력의 비민주적인 횡포와 억압을 보며 프로파간다적인 영화적 실천에 동참한다. 무어는 실제로 “영화를 본 관객 중 5%만 행동으로 옮겨도 더할 나위 없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 (좌) 해변에서 미녀와 공놀이 하는 부시. (우) 로마 제국을 배경으로 한 픽션 영화의 한 장면. ⓒ <자본주의 러브스토리> 화면 갈무리

열렬한 지지자와 맹렬한 안티

마이클 무어 주변에는 늘 열렬한 지지자와 맹렬한 안티가 있었다. 그의 영화는 재미있지만 사실을 조작해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다큐멘터리 감독은 기록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감독의 주관성이 커지면 왜곡과 과장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영화 제작자 잭 매튜스는 “다큐멘터리 감독과 관객 사이에는 사실을 담아야 한다는 묵시적인 약속이 존재하는데 마이클 무어는 그런 약속을 어겼다”며 비판했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다큐멘터리도 이야기’라고 옹호한다. 이들은 완전히 객관적이면서 총체적인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다큐멘터리 속 현실은 사실 그 자체라기보다 감독의 인식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재구성한 현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감독은 자신이 믿는 ‘진실’을 이야기 형식으로 전달할 뿐이다. 다큐멘터리의 인터뷰이는 사실에 바탕을 둔 진실이라고 진술하지만, 실제로는 사건에 대한 해석에 불과하다. 감독은 이들의 기억을 ‘사실’이라고 믿고 ‘진실’의 프레임 안에 넣는 것이다.

무어의 다큐멘터리가 논쟁적인 것은 당연하다. 관객은 감독이 제시하는 진실에 대해 공감과 감동 또는 비판과 거부로 대응한다. 둘 중 어떤 것이 옳다고 말할 수 없다. 다큐멘터리는 감독과 관객 간의 끊임없는 공방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공간일 뿐이다. 오히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는 것이다. 이 관점으로 볼 때 시네마 베리테라는 장르적 특성을 넘어 자기만의 스타일을 구축한 마이클 무어는 성공한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무어는 지금도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악취가 풍기는 어딘가에 카메라를 들이밀면서 자기 스타일로 관객과 소통하고 있다.


편집 : 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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