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재앙은 막자] ⑨ 후쿠시마 바닷물 오염과 수산물 국제 분쟁

발생한 지 5년이 다 돼 가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방사성 물질이 섞인 대량의 냉각수가 아직도 바다로 콸콸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냉각 시스템이 고장 난 후쿠시마 원전 원자로에 바닷물(해수)을 주입해 열을 식히는 과정에서 물에 방사성 물질이 섞이고, 그 오염수가 인근 바다로 배출되고 있는 것이다. 고농도 오염수가 원자로 건물 지하에 고여 있는 정황이 처음 포착된 것은 사고 발생 10일째인 2011년 3월 21일이었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통제되고 있다’ 거짓말

당시 도쿄특파원이었던 정남구 한겨레 경제부장이 쓴 <잃어버린 후쿠시마의 봄>(2012)에 따르면 원전 1, 2, 3호기에 전기를 공급하는 터빈 건물 지하에서 방사선량 수치가 매우 높은 오염수가 고여 있는 게 발견됐다. 가장 높은 경우 시간당 1000밀리시버트(mSv)로, 사람이 1시간 동안 노출되면 구역질로 시작해 고열과 출혈로 이어지는 급성 방사선장애를 겪을 수 있는 농도였다. 도쿄전력이 이 오염수를 저장탱크에 옮겨 담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방사능 오염도가 낮은 물은 바다로 흘려보냈는데, 그 농도마저 기존 원전 폐수 기준치의 100배가량 높은 수준이었다. 일본 원자력연구개발기구(JAEA)에 따르면 사고 직후인 3월 21일부터 4월 30일까지 바다로 흘러들어간 방사성 물질 총량은 1만5000테라베크렐(TBq)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 정부에서 규정한 법적 한계치인 30베크렐(Bq)의 500배나 된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런 사실을 은폐했다. 2020년 올림픽을 도쿄로 유치하기 위한 2013년 9월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연설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원전사고는 잘 관리되고 있다”며 “오염수의 영향은 후쿠시마 항구 내에서 완전히 차단돼 있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의 이 발언은 석 달 전인 6월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가 “후쿠시마 인근 바닷물의 방사성 물질 농도가 높아졌다”며 “고농도 오염수가 해양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고 문제를 공론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온 것이었다.

▲ 도쿄전력은 2013년 7월 오염수의 유출을 처음으로 인정했지만,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 SBS 뉴스 화면 갈무리

원전을 운영하는 도쿄 전력도 오염수 문제를 쉬쉬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발언이 문제가 된 일주일쯤 후 도쿄전력연구원은 “지금 (방사능 오염수의) 상태를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총리의 발언을 뒤집는 증언을 했다. 재임 중엔 원전확대 정책을 폈으나 후쿠시마 사고 후 탈원전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지난 3월 원전사고 4주년을 맞아 후쿠시마현에서 한 강연에서 “오염수가 통제되고 있다고 말했지만, 전혀 통제되지 않고 있다”며 “(아베 총리가) 잘도 저런 말을 한다고 생각했다”고 꼬집었다.

2013년 독일 공영방송 제데프(ZDF)가 방영한 다큐멘터리 <후쿠시마의 거짓말>은 일본 정부와 주요 전력회사들이 원전을 건설, 운영하고 사고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거짓말과 무책임한 행동을 일삼았는지 폭로했다. ZDF의 취재진과 인터뷰한 전현직 원전기술자와 지방정치인 등은 안전관리상의 결함과 부조리 등을 지적하는 자신들에게 전력회사, 건설사, 중앙정치인, 관료 등 원전이해관계자들이 똘똘 뭉쳐 개인적 공격을 가함으로써 입을 막았다고 증언했다. ZDF는 또 후쿠시마 사고 대처과정에서도 ‘잡초가 고무호스에 구멍을 내 오염수가 샜다’는 등 납득할 수 없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진실을 은폐하기에 급급한 도쿄전력과 정부 관계자들의 모습을 조명했다.

▲ 2013년 3월 독일 공영방송 ZDF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후쿠시마의 거짓말>의 타이틀(좌)과 다큐멘터리 속 일본 도쿄전력 직원들이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우). ⓒ ZDF Die Fukushima Lüge

방사능 오염수가 지하로 스며들었다 바다로 유출되는 상황이 통제되지 않고 있다는 게 드러나자 도쿄전력은 원전 건물 주변 땅속으로 ‘동토차수벽’을 세운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총 1.5킬로미터(km)에 달하는 원자로 1~4호기 주위에 지하 30미터(m) 깊이의 동결관을 심어 주변의 땅 전체를 얼리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면 '얼음벽'에 막혀 방사능 지하수가 바다로 흘러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8월 일본 산케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 작업은 실패로 판명됐다. 동결관에 냉매를 주입하고 최대 250톤(t) 가량의 얼음과 드라이아이스까지 동원했지만 수온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쿄전력은 다시 강철관을 시멘트로 이은 '해측차수벽'을 원전과 바다 사이에 설치했다. 육지에서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지하수를 막아 세우는 벽인 셈이다. 도쿄전력은 지난 10월 26일 해측차수벽의 완공을 발표하면서 원전 오염수와 지하수가 섞여 하루 400t씩 바다로 들어가던 유수량이 이 벽에 막혀 앞으론 하루 10t 정도로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원자로 건물 지하에서 매일 생겨나는 300t 가량의 오염수와 원전 내부 탱크에 보관 중인 약 70만t의 오염수를 근본적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못 하고 있다.

▲ 일본 도쿄전력이 방사능 오염수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후쿠시마 항만 내에 설치한 해측차수벽의 모습. ⓒ TEPCO

일본산 수산물 수입 줄었지만 원산지 조작 등 불안감 여전 

후쿠시마 원전으로부터 방사능 오염수가 대거 바다로 흘러든 사실이 알려지면서 각국은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통제하는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발표한 해외 일본산 식품 규제조치 현황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와 미국, 중국, 러시아 등 32개국이 수산물을 비롯한 각종 일본산 식품 수입을 규제하고 있다. 중국은 후쿠시마 인근 10개 현의 모든 식품과 사료를, 러시아는 8개 현의 수산물과 수산가공품, 미국은 14개 현의 일부 식품을 수입 금지했다. 우리나라 2013년 9월부터 후쿠시마 등 8개 현의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수입금지 조치 후 국내 수입 어류 중 일본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7.6% 대비 2014년 2.3%로 크게 줄었다. 그러나 2011년 1만1829t에서 2013년 7155t까지 줄었던 수입량은 지난해 7707t으로 다시 약간 늘었다. 지난 4월에는 수입금지 지역인 아오모리현 수산물을 홋카이도 지역으로 싣고 간 뒤 홋카이도산으로 표시해 국내로 반입하려던 업체가 적발되는 등 ‘원산지 위장’에 의한 수입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수산물 원산지를 바꿔 수입하려다 적발된 건수는 765건이었는데 그중 122건이 일본산이었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서균렬 교수는 씨비에스(CBS)와의 인터뷰에서 “오염수 유출이 완전히 종결되지 않는 이상, (일본산) 수산물은 종류에 상관없이 방사성 물질을 몸에 축적시키는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방사성 물질이 축적된 음식물을 먹으면 인체 내부가 24시간 방사선에 노출되는 ‘내부 피폭’이 일어나고, 내부 피폭 정도와 개인의 특성에 따라 암, 백혈병, 유전성 질환 등 심각한 건강 이상이 생길 수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9월 성인 6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92.6%가 '후쿠시마 사고로 인한 방사능 누출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답해 방사능 오염에 대한 걱정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우려가 52.9%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문제는 일본산 수산물에만 국한되지 않고 있다. 시민방사능감시센터가 지난 3월부터 11월까지 서울, 부산 등의 대형마트와 재래시장 수산물을 대상으로 분석해 지난 22일 발표한 결과를 보면 태평양에서 잡힌 어종에서도 방사능이 검출됐다.

▲ 시민방사능감시센터가 발표한 조사 결과, 일본산 뿐만 아니라 태평양산 수산물에서도 세슘137이 검출됐다. ⓒ KNN 뉴스 화면 갈무리

총 150개의 시료 중 러시아산 6건(13.3%)과 국산 2건(3.2%)에서 자연에서 생기지 않는 방사성 물질인 세슘137이 최대 1kg당 1.09베크렐(Bq) 수준으로 검출됐다. 후쿠시마에서 유출된 방사성 물질이 더 넓은 해역으로 퍼져 나간 것이거나, 원산지를 속였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수입될 때마다 매 건 방사능 검사를 하는 일본산과 달리 태평양산 어종은 주 2회 검사에 그친다. 시민방사능감시센터 김혜정 운영위원장은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원산지 표기를 속일 수 있는 상황인데도 (원산지가 다른 수산물에 대해서는) 일본산보다 낮은 수준의 방사능 검사가 이뤄지고 있다”며 “국민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게 중요한 문제인 만큼 좀 더 관리가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우리나라는 방사능 검사기준을 세슘 기준으로 킬로그램 당 370Bq에서 100Bq로 낮춰 일본산 수산물 유입을 차단했다. 그러나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는 저서 <한국탈핵>(2013)에서 “방사선 피폭량과 암 발생은 비례하고, 의학적으로 안전한 최저 기준치(역치)가 없기 때문에 일본산 수산물 수입은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오히려 한국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규제가 부당하다며 국제기구에 제소하고 나섰다.

▲ 방사선이 건강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보고서에 따르면 방사능에 안전한 최저 기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 PNAS BEIR VII Phase 2

'오염 수산물 안 먹겠다'는 한국, 일본이 WTO 제소 

일본 정부는 지난 5월 21일 세계무역기구(WTO)에 자국산 수산물에 대한 한국의 수입규제조치를 분쟁해결절차에 넘겨달라고 요청했다. 우리나라는 WTO의 식품‧동식물 위생검역 협정 5.7조의 '관련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할 때 회원국은 잠정적으로 위생 조치를 채택할 수 있다'는 조항에 따라 수입을 금지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한국의 위생 조치가 차별적이라 무역에 방해된다며 수입금지를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분쟁은 일본산 수산물 수입규제에 대해 일본이 처음으로 WTO에 분쟁해결을 요청한 사례로, 한국과 비슷한 수입규제 조치를 취한 다른 나라들도 주목하고 있다.

지난 6월에 있었던 한·일간의 양자협의는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종료돼, WTO 사무국 주관으로 위원 3인으로 구성된 사전해결기구(패널)에 의해 분쟁해결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다. 통상적으로 분쟁당사국들이 패널에 입장을 밝힌 문서를 제출하고 구두로 검토하는 과정을 거쳐 패널보고서가 나오는데 약 1년이 걸린다. 패널 위원들이 쟁점별로 양국의 입장을 반영한 결정을 내리는데, 그 결정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취하고 있는 기존 조치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통상법무과 신정훈 과장은 "패널이 구성되면 본격적인 분쟁절차가 시작될 것"이라며 "일본의 적절한 원전 관리와 식품의 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나라가 취한 조치가 정당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7월 국회에서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잠정적 수입금지 조치의 쟁점과 정책과제’ 토론회가 열린 뒤 국회입법조사처는 이를 정리한 정책보고서에서 “WTO 협정문에 따르면 방사능 오염의 위해가 없다는 것을 사고국인 일본이 입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인 수입금지 조치는 수입국이 조치의 이유를 제시해야 하지만 방사능 오염은 예외성을 인정한 것이다. 시민방사능감시센터 김혜정 운영위원장은 “정부는 지금 하고 있는 수입금지 조치에 더해 대만 등 비슷한 입장에 있는 나라들과 국가 차원의 기구를 만들어 (공동) 대응해야 한다”며 “일본산 수산물뿐만 아니라 방사능 오염수의 영향을 받은 태평양산 수산물에 대한 방사능 기준치도 더 높여 (안전 점검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대참사 후 독일, 벨기에, 스위스, 프랑스 등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들은 원전을 폐기하거나 줄여가는 ‘탈원전’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설계수명을 넘긴 월성 1호기를 연장 가동하고, 새로운 원전을 증설하기로 하는 등 거꾸로 가는 모습이다. 노후 원전의 사고 가능성과 지역주민의 건강 피해, 대책 없는 핵폐기물 등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를 외면한 채 이처럼 ‘원전대국’으로 직진해도 되는 것일까. <단비뉴스>는 우리나라 원전 정책의 문제점과 원자력발전의 근본적 위험성을 짚어보고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에너지 체제’를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편집자) 

편집 : 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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