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창업 구상하랴, 앱 개발하랴…밤이 더 바쁜 세명대 학생들

안경케이스, 필기구꽂이, 시계, 소형서랍. 학생들이 직접 목재를 구해 학교 동아리실에서 톱으로 썰며 만든 작품이다. 학생들은 목공예를 익히기 위해 근처 공방에 견학을 가서 제작방법을 배워왔다. 다른 학생들은 혈액에서 개인 DNA를 추출해 팔찌, 펜던트 등을 만들었다. 축제 기간에는 DNA가 담긴 열쇠고리를 만들어 팔아 70여 만원 수익을 올렸다.

▲ 학생회관 복도 벽 등에 ‘1824 프로젝트’ 한 학기 활동을 소개한 전시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 이병우

충북 제천에 있는 세명대학교는 수업이 끝난 저녁 무렵부터 더 활기를 띤다. 수많은 학생이 방과후 특별활동에 몰입하기 때문이다. 세명대 내 학생 모임의 수는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지난 1학기까지만 해도 동아리와 학과소모임 수는 100개 정도였다. 그러나 올 12월 현재 소모임은 307개, 가입자는 3,622명이다. 중복 가입자를 빼도 3,000명이 넘는다. 전체 재학생의 3분의 1을 훌쩍 넘는 규모다. 학교 분위기도 달라졌다. 수업이 끝나면 버스를 타고 귀가하거나 기숙사 또는 술집, 피시방 등으로 향하던 학생 중 상당수가 학생회관으로 몰려든다.

방과후 밤 12시까지 술자리 대신 커뮤니티 활동

올 8월에 시작된 '1824 프로젝트'는 기획재정부와 국방부에서 차관을 지낸 예산통인 이용걸씨가 세명대 총장으로 부임하면서 낸 아이디어였다. 18시부터 24시까지 정규 수업 외에 학생들의 특별활동에 파격적으로 학교 예산을 지원한 것이다.

"학생들이 저녁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기숙사에서 시간을 때우거나 술을 마신다고 해요. 게임하고 노래방에 가기도 하고요. 시간을 흘려 보내기만 하면 아깝잖아요. 좋은 프로그램을 마련해주면 학생들이 더 의미 있게 저녁 시간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우리 학교는 수도권 대학과 달리 반경 500m 안에 5,000명 가까운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거나 자취하고 있거든요. 함께 활동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죠."

▲ 이용걸 총장은 “학생들이 의미 있는 저녁 시간을 보내라는 취지로 ‘1824 프로젝트’를 기획했다”고 한다. © 서혜미

이전에는 학교에서 프로그램을 짜고 참여자를 모집했다면, 1824 프로젝트는 학생들이 먼저 어떤 활동을 하고 싶다고 요청하면 학교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그동안 학교에서 크게 신경 쓰지 않던 학과 모임과 동아리를 '커뮤니티'라는 이름으로 통합하고, 스포츠·문화예술·봉사·학습 등 분야별로 나눠 총 5개 부서가 직접 관리하기로 했다.

또한 학생들이 모일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학생회관에 있던 교수연구실을 전부 다른 건물로 옮겼다. 리모델링 과정에서도 방을 더 여러 개로 쪼개, 많은 소모임이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했다. 학생들에게는 한 커뮤니티당 50~150만원의 예산을 지원했다. 변화는 빠른 속도로 찾아왔다.

"자존감 높아지고 학교에 애정 커져요"

공모전 동아리 '콘텐츠'의 회장인 박재민(관광3)씨는 이번 학기 후배들의 가장 큰 변화를 '자신감 회복'으로 꼽았다.

"얼마 전 '제천시 관내 대학생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1학년생들이 상을 받았어요. 처음에는 고등학교에서 성공체험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열등의식이 있었거든요. 못 할 줄 알았는데 됐잖아요. 자기도 하고 싶다고 하는 후배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한 번 성공하니까 자존감이 높아져서 도전하려는 마음이 커지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마지못해 나오던 사람들이 직접 기업에 견학도 가고, 발표·수상 경험을 해보니 이제는 먼저 공모전에 참여하고 싶다고 선배에게 연락한다는 것이다. 적극적 참여의 결과로 '콘텐츠'는 이번 학기 교내외 공모전에서 경남대학교 총장상 등 6번이나 상을 받았다. 박씨는 "학기가 끝난 방학에도 계속 모여서 공모전 준비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필통(Feel이 통하는 학습) 경진대회에서 각종 상을 받은 학생들이 총장과 함께 즐거워하고 있다. ⓒ 이병우

창업동아리인 '파인투데이(Fine Today)'의 신동윤(광고홍보3)씨는 지난 19일, 시험이 끝났는데도 서울 노원구 집으로 곧장 돌아가지 않았다. 학기는 끝났지만 창업 준비에 여념이 없기 때문이다.

"동아리원 여섯이 시간 날 때마다 모여서 얘기를 해요. 점심이나 저녁 먹으면서도 회의하고요. 방학했는데 학교에 남은 건 6학기 만에 처음이에요. 파인투데이 마지막 작업을 해야 한다고 해서 친구 집에 신세지고 학교에 남기로 했어요."

'파인투데이'는 익명의 개인과 다양한 범주의 전문가를 연결해주는 '온라인 고민상담소'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고민이 있어도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 상담가에게 직접 찾아가지 못하고 비전문적인 인터넷 지식에 의존한다는 데 착안했다. 다양한 전문가와 연락해 제휴를 요청하고 있고, 이를 토대로 사업 지원금을 끌어모을 계획이다. 신씨는 "원래 창업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는 창업을 해볼까 싶다"며 창업에 대한 인식도 크게 바뀌었다고 한다.

▲ 스포츠∙봉사∙문화 분야 학생커뮤니티 최종보고회에 소개된 전시물들을 학생들이 살펴보고 있다. © 이병우

학교도 학생들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조남근 대학교육혁신본부장은 "1824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이 좋다"면서 "학생들 표정이 밝아졌고, 보람, 성취감,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며 긍정적인 효과를 실감한다고 말했다.

꿈을 찾도록 도와주는 대학

"교육이라 하면 꼭 학문을 가르쳐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잖아요. 대학은 학생 스스로 성장하고 발전해가는 장이기도 합니다. 세명대 학생들은 대부분 기숙사나 자취 생활을 하니까 자기가 온전히 삶을 책임져요. '1824 프로젝트'는 학생들이 스스로 발전해갈 발판을 마련해주는 겁니다."

이용걸 총장은 "1824 프로젝트로 다양한 능력을 키우면 학생들이 인생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 연장선에서 세명대는 '꿈 설계 학기'도 운영할 계획이다. 이 학기는 신입생들이 학기 초에 2~3주 동안 수업을 듣지 않고 학과특성과 교육과정을 이해하고, 교내 커뮤니티와 지역 산업체를 경험하면서 진로를 설계하는 것이다. 이병준 기획팀장은 이러한 시도들이 "대학 위기 시대의 대안이 될 수 있다"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지방대학이 없어진다는 얘기가 나오잖아요. 컴퓨터나 TV로 필요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미래에는 모든 대학이 위태로워진다고 하고요. 이에 대응하려는 몸부림으로 세명대는 학생들이 꿈을 찾는 대학을 만들고 있습니다."


 편집 : 이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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