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토크] 콜린 퍼스의 완벽 연기 돋보인 <킹스 스피치>

“독일과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숨을 죽인 채 라디오 방송에 귀 기울이던 영국 국민과 군인들의 얼굴엔 긴장과 불안이 감돈다. 그러나 궁전에 모여 있던 왕족, 시종들은 연설이 끝나자 스피커 앞에서 일제히 박수치며 환호성을 올린다. 방송을 마치고 나온 영국 왕 조지 6세(콜린 퍼스 분)도 감격을 감추지 못한다. 

영화 <킹스 스피치>의 마지막 장면이다. 1939년 3월 영국의 참전 선포로 사회분위기는 어수선한데, 이에 아랑곳없이 기뻐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 그러나 관객들은 그들을 완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 ‘말더듬이’ 국왕 조지 6세가 처음으로 대중 연설에 성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거의 2시간 동안 밋밋하게 흐르던 영화는 이 마지막 10분간 관객의 감정을 절정으로 몰아간다.

▲영화 <킹스 스피치>의 한 장면. ⓒ  킹스 스피치 홈페이지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버지 조지6세의 콤플렉스

영화는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시절의 영국 왕궁을 배경으로 한다. 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버지인 조지 6세가 말더듬이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장애를 딛고 훌륭한 왕이 되기까지 곁에서 그를 도왔던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제프리 러쉬 분)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감독 톰 후퍼와 제작진은 어렵사리 자료들을 모아 조지 6세의 인간 승리를 그리면서, 동시에 그의 형 에드워드 8세의 스캔들과 왕궁의 비밀 등을 멋지게 버무려냈다. 제작단계부터 높은 관심을 모았던 이 영화는 2011년 제 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했고, 국내에서도 관객 동원 1위를 기록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 없이는 무거운 책임을 감당해 나갈 수가 없다."

▲ <킹스 스피치> 포스터. ⓒ 킹스 스피치 홈페이지
형인 에드워드 8세(가이 피어스 분)가 사랑을 위해 왕위를 포기하는 바람에 동생인 버티(Bertie)가 엉겹결에 왕위 승계자가 된다. 하지만 버티는 겁이 난다. 소심한 성격과 말더듬증 때문이다. 영국 왕은 현실적인 통치권이 없지만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신적 지주로서 의미가 크다. 버티의 아버지 조지 5세(마이클 갬본 분)는 라디오 연설을 한 첫 영국 왕이었다. 그는 “왕은 연설로 국민을 감동시켜 마음을 얻어야 한다”며 더듬거리는 버티를 윽박지른다. 이것이 버티의 두려움을 더 키웠다. 
 
수많은 언어치료사들이 그를 고치려했지만 다 실패했다. 구슬을 입에 한 가득 넣고 한 단어씩 발음하도록 시키는 등 기술적인 면에 치중한 전문가들의 치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로그는 달랐다. 은퇴한 연극배우일 뿐인 로그가 시도한 치료법은 다름 아닌 ‘들어주기’였다. 잠자코 버티의 얘기를 경청했다. 알고 보니 버티의 병은 어릴 적부터 억눌린 궁정생활과 강압적인 아버지 때문에 생긴 강박관념 탓이었다. 아버지는 왼손잡이인 버티를 윽박질러 오른손을 사용하게 하고, 버티를 형과 비교해 주눅 들게 했다. 유모는 ‘학대’에 가깝게 버티를 다루었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터놓지 못했던 버티에게 로그는 친구처럼 다가갔다.

“내 말을 들어봐. 나도 할 말이 있다구!”(버티)
“그럼, 물론이지!”(로그)

드디어 버티는 로그에게 마음을 열었고, 서로의 믿음은 깊어졌다. 그리고 버티는 말더듬증 극복을 위해 사력을 다한다. 실제로 조지 6세가 왕위에 오른 뒤 라이오넬 로그는 기사 작위를 받고 궁에서 버티의 모든 연설 때마다 함께했다고 한다.

뻔한 스토리에 감동을 입힌 배우들의 열연

▲<킹스 스피치>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콜린 퍼스. ⓒ킹스 스피치 홈페이지
‘말더듬이 왕, 세계를 감동시킬 위대한 도전이 시작되다.’ 제작진의 홍보 문안에서 눈치 챌 수 있듯 이 영화는 전형적인 성공 스토리 구조를 갖고 있다. 장애를 딛고 일어선 주인공, 그의 곁에서 헌신하는 조력자, 그리고 극복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까지 말이다. 스토리 전개도 뻔하다. 갈등 없는 밋밋한 흐름이 이어진다. 블록버스터급 화면도 없고 현란한 컴퓨터그래픽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재미와 감동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은 ‘실화 같은’ 감동을 주는 배우들의 연기력을 꼽을 수 있다. 조지 6세를 완벽히 재연하기 위해 연설 테이프를 반복해 들으며 연구했다는 콜린 퍼스의 연기가 단연 돋보인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러브 액추얼리> <맘마미아> 등에서 진지한, 때론 코믹한 연기로 인기를 모았던 그는 실제 조지 6세와 소름끼치도록 흡사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제프리 러쉬의 연기도 깊이와 여운이 있다. 그는 촬영 2개월 전 운 좋게 입수한 라이오넬 로그의 친필 일기장을 토대로 세밀한 부분까지 철저히 연습했다고 한다. 각본을 쓴 데이빗 세이들러가 어릴 적 말을 더듬었던 자신의 경험을 녹여내서인지 아주 사실적인 묘사가 실화의 감동을 더해준다.

밋밋한 흐름에 양념을 치는 코믹대사도 칭찬할 만 하다. 자신의 말을 좀처럼 따르지 않는 버티에게 “멍청이로군요”라고 비난하는 로그. 버티가 신분이 높다는 것을 내세우자 “그럼 공식적인 멍청이로군요”라고 응수한다. 버티가 연설에 대한 부담감으로 힘들어 할 때 그를 위로한 아내 엘리자베스 1세(헬레나 본햄 카터 분)의 말도 관객들에게 웃음을 터뜨릴 기회를 준다. 

“왕가의 부담스러운 일정이 싫었어요. 하지만 당신이 멋지게 말을 더듬기에 결혼했지.”

영화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과 극적 반전을 원한다면 <킹스 스피치>는 아니다. 그러나 짙은 감동과 함께 ‘진정한 소통과 교감’을 목격하고 싶다면 ‘강추’할만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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