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훈쇼> 재탕 같은 다큐멘터리, 진정성 부족했다
[지난주 TV를 보니: 3.28~4.3]

배우 김태희가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됐다. 지난 1일 MBC 스페셜은 <셀러브리티 바이오그래피-태희의 재발견>편을 방영했다. 시청률은 10.6%(AGB닐슨미디어리서치·수도권 기준)로, 지난 25일 전파를 탄 박완서 추모특집 ‘그 겨울은 따뜻했네’ 에 비해 5%나 올랐다. ‘김태희 효과’를 입증한 셈이다.

▲ MBC 스페셜 <태희의 재발견>의 한 장면. ⓒ MBC제공

프로그램은 ‘태희의 사생활’ ‘태희의 굴욕’ ‘태희의 전설’ ‘태희의 서른 그 후’ 등 4가지 테마로 나눠 연기자 김태희를 다각도로 조명했다. 그러나 새로운 내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난 2009년 1월 방영된 KBS 2TV의 <박중훈쇼>를 리바이벌(재생)한 듯 했다. 어린 시절 평범한 가정에서 왈가닥 소녀로 자랐다는 것, 재벌과의 결혼설 해명, 연기력 논란으로 힘들었던 심정을 고백한 것까지 거의 비슷했다. 그동안 언론 기사와 인터뷰, 토크쇼에서 수차례 언급된 내용을 다큐멘터리에서 다시 한 번 반복했을 뿐이다. ‘태희의 재발견’이란 제목을 보고 TV 앞에 앉았을 시청자들에게는 실망감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 촬영 현장. 스텝들이 쪽잠을 자고 있는 사이에도 김태희는 대기실에서 대본 연습에 몰입 중이다. 따지고 보면 광고에만 열중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지만 김태희는 연기력 논란과 힘든 촬영을 감수하면서 ‘연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가족, 친구, 스텝, 동료 연기자들의 인터뷰는 김태희가 소탈하고 인간적이며, 언제 어디서든 성심껏 일하는 사람이라는 내용들이다. 프로그램은 ‘김태희 찬양’으로 시작해 연기력 논란에 대한 해명으로 마무리 됐다.

이영애, 비, 김명민, 박지성 그리고 김태희

‘셀러브리티 바이오그래피(Celebrity Biography)’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지만 서구에서는 이미 다큐멘터리의 한 장르로 인정받고 있는 인물 다큐멘터리다. 당대 대중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인물, 특정 분야의 발전과 진보에 한 획을 그은 유명 인사들이 주인공이다. 인터뷰를 중심으로 그들의 삶에 대한 태도와 철학을 깊이 조명한다.

▲ MBC 스페셜 <당신은 박지성을 아는가>의 한 장면. ⓒ MBC제공

 MBC스페셜은 2008년 ‘나는 이영애다’ 편과 ‘비가 오다’ 편, 2009년 ‘김명민은 거기 없었다’ 편과 ‘당신은 박지성을 아는가’ 편 등 여러 차례 셀러브리티 바이오그래피를 제작한 경험이 있다. 특히 평소 보기 힘들었던 스물아홉 살 ‘청년 박지성’의 이야기가 전파를 탄 후엔 ‘감동과 재미를 한꺼번에 볼 수 있었다’ ‘2부도 제작해 달라’는 등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김태희의 재발견’ 편을 본 시청자들은 감동 대신 ‘김태희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압박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비록 연기력은 뛰어나지 않지만) 태희가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자꾸 비난할거야?’하는 재촉을 받은 것처럼.

일본 수출용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왜 김태희를 다큐멘터리 주인공으로 선택했을까? 당장 큰 화젯거리도 없는데 말이다. 자사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에 출연한 것이 계기였나? 하지만 드라마에 출연하는 모든 스타가 다큐멘타리의 주인공이 되진 않는다. 그런데 MBC가 <마이 프린세스>의 TV방영권과 VOD(주문형비디오) DVD(디지털비디오디스크) 판권을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와 미국 캐나다 등 12개국으로 판매한 것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결국 이 다큐멘터리는 드라마 판매에 필요한 홍보용이나 끼워 팔기용이었나?

 ▲ MBC수목 미니시리즈 <마이 프린세스>. ⓒ imbc

‘나는 이영애다’ 편도 이런 논란에 휘말린 일이 있다. ‘대장금’ 내용으로 18분가량을 구성하는 바람에 ‘대장금 스페셜이냐’는 지적이 나왔었다. 제작진은 억울해 할 수도 있다. MBC 스페셜은 지난 3월 18일 ‘츠카 코헤이와 김봉웅’을 시작으로 박완서 추모특집 ‘그 겨울은 따뜻했네’와 ‘태희의 재발견’ 편을 연이어 방영했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골프선수) 신지애, 즐거운 삶에 도전하다’ 편을 방송할 예정이다. ‘셀러브리티 바이오그래피(Celebrity Biography)’ 연작 중의 하나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만일 홍보용 다큐멘터리였다면 이는 프로그램에 대한 모독이라고 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가 유독 신성한 장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것이 상업적인 목적을 가질 때 우리는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방송사 내부 제작이든, 독립 제작이든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인간과 사회의 ‘숨은 진실’을 드러내는데 열중하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는 그 소재 선택이나 메시지, 표현방법에서 매우 자유로운 특성이 있다. 다큐멘터리가 ‘민주적 다원주의’에 기여할 수 있다는 기대를 받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물론 다큐멘터리도 흥행을 고려해야 하고, 스폰서를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나 산업, 연수, 모금을 위한 홍보물을 다큐멘터리로 볼 수 있을까?

인물 다큐는 주인공의 내면을 드러내야

▲ MBC 스페셜 <태희의 재발견>의 한 장면. ⓒ MBC제공

순수한 인물 다큐멘터리로 기획했다 하더라도 ‘태희의 재발견’은 주인공에 대한 천착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모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당신은 박지성을 아는가’ 편의 성공과 대비된다. 인물 자체가 뿜어내는 어떤 ‘힘’의 차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해서 진정성 어린 다큐를 만들어내는 일은 제작진의 몫일 것이다. 이미 잘 알려진 김태희가 아닌 다른 측면의 김태희, 그녀의 숨겨진 내면세계를 끌어냈어야 하지 않을까?

‘츠카 코헤이와 김봉웅’ 편은 그리 유명하지 않은 인물을 다뤘지만 보는 이들의 가슴을 멍하게 만들만큼 감동을 줬다. 츠카 코헤이의 내면에 꿈틀거리는 고뇌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이를 간파하고 드러낸 제작자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톱스타지만 김태희에게도 아픔이 있을 테고, 고뇌가 있을 것이다. 모두가 다 아는 ‘연기력 부족’이나 ‘재벌과의 결혼설’ 따위 말고도 말이다. 그걸 드러낼 자신이 없으면 김태희 편은 좀 더 시간을 두고 만들었어야 마땅하다.

▲ MBC 스페셜 <츠카 코헤이와 김봉웅>의 한 장면. ⓒ MBC제공

<MBC 스페셜>이 ‘셀러브리티 바이오그래피’라는 명분을 걸고 유명인 연작을 만드는 작업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일정한 성과도 이뤄냈다. 그러나 인물 다큐멘터리의 본령을 잊지 않는 긴장이 필요해 보인다. 스타를 주인공으로 삼으면 시청률이라는 달콤한 선물이 따라오겠지만, 진정성이 부족한 작품으로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순 없다. 혹시 회사 내부의 상업적 압박이 ‘태희의 재발견’을 낳았다면 더 안타까운 일이다. <MBC 스페셜>이 좀더  ‘MBC 다운’ 기획과 제작을 통해 시청자의 더 큰 사랑을 받을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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