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 장원 박영준

▲ 박영준
널리 알려진 얘기지만 1960년대 영국에서 붉은 털 원숭이를 대상으로 스킨십에 대한 실험을 했다. 어미와 격리된 새끼원숭이를 우리에 가두고 두 개의 가짜 원숭이를 넣어주었다. 하나는 모유가 나오는 양철원숭이, 다른 하나는 모유가 나오지 않는 담요원숭이였다. 그런데 새끼 원숭이는 양철원숭이한테서 모유를 먹는 시간 말고는 철저히 담요원숭이와 함께했다.

인간은 어떨까? 인간은 아마도 양철원숭이에 의존할 듯하다. 스킨십을 싫어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담요원숭이와 같은 따뜻함을 느끼기 위해 양철원숭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대문명의 덫에 걸렸다고나 할까? 인간적인 따뜻함을 느끼기 위해 인간이 시도한 게 바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양철덩어리 컴퓨터. 이제는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 컴퓨터와의 만남으로 대체된 듯하다. 우리는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엄지발가락을 이용해 컴퓨터 전원을 켠다. 그리고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공간에서 생활한다. 인터넷 세계에는 시간과 공간 개념이 없다. 인간은 어두컴컴하고 조그만 방구석에서도 전 세계를 누비며 이야기할 수 있다. 환상적인 듯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양철원숭이가 주는 모유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현대의 인간이 담요원숭이를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즉 SNS 열풍이다. 담요원숭이를 만나기 위해 컴퓨터라는 양철원숭이를 통하는 꼴이다. 시간과 공간의 초월은 실재하는 시간과 공간을 집어삼켰다. 실재 세상에서 인간이 외로워진 이유다.

인간은 인터넷에서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 미니홈피나 댓글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안달이고, 친구를 사귀기 위해 인터넷 세상을 방황한다. 요즘엔 ‘팔로워’라는 것이 유행인데 ‘친구’라고 부르기에는 꺼림칙하다. 인터넷에 길들여진 현대인은 실재 세상의 관계 맺기에는 매우 서툴다. 지하철이나 버스처럼 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있어도 서로간에 교류는 없다. 그저 엄지손가락만 바쁘게 움직일 뿐이다. 인터넷 세상과 실재 세상의 주객이 전도됐다.

분명한 것은 인간과 시간과 공간은 하나일 때 가장 온전하다는 것이다. ‘현재에 최선을 다하라’는 투의 명언들이 말하는 그 ‘현재’도 인간과 시간과 공간이 하나를 이룰 때를 말하는 것이리라. 가상이 아니라 실재하는 세상에 살아보자. 일상적으로는 불가능할지라도 가끔은 그랬으면 좋겠다. 내일 아침 컴퓨터로 향하는 당신의 엄지발가락을 멈춰보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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