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기자란 무엇인가

▲ 문준영 기자

사람은 항온동물이다. 외부 온도나 신체활동에 관계없이 일정한 체온을 유지한다. 체온은 몸의 표면 온도가 아니라 몸속 장기에서 균일하게 유지되는 온도다. 몸속 장기의 온도라서 심부 온도라고 한다. 우리가 열을 잴 때 표준으로 하는 36.5℃가 바로 심부 온도다. 피부 온도는 혈액순환에 의해 심부에서 피부로 운반되는 열량에 의해 결정된다. 추운 겨울 손발이 차가워지는 것은 밖이 차가워서가 아니다. 몸이 추운 환경에서 심부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피부의 혈액순환을 줄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심부 온도가 적정 온도일 때 우리 몸은 최적 상태를 유지한다. 기온이 영하의 추위로 내려가면 인간의 몸은 심부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혈액 순환을 최소화한다. 동상에 걸리는 이유다. 동상 부위가 잘려나가도 심부 온도를 유지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 냉혹한 생명의 본능이다. 반대로 심부 온도가 39.5℃를 넘어가면 저혈압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고열을 조절하지 못해 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2003년 유럽에서 500년 만에 닥친 폭염으로 3만 5천여 명이 사망했다. 외부 기온이 인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지 보여준 사례다. 이처럼 심부 온도는 우리의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한 신호다.

사회 역시 우리 몸이 가진 심부 온도의 속성을 그대로 내포하고 있다. 현실에는 수많은 심부 온도가 존재한다. 사회의 심부 온도가 이상을 일으키면 정치와 경제가 파탄 나거나 심지어 붕괴하기도 한다. 사회가 미리 이상 온도를 감지하고 대처하지 못했던 것이다. 1998년 IMF가 터졌을 때, 한국의 경제 온도는 초저온 상태였다. 기업의 기형적 지배 구조와 외환관리 정책 등 곳곳에 존재했던 잠재 위험요소를 아무도 감지하지 못했다. 몸이 저온으로 동상에 걸린 신체 부위를 잘라내듯이, 당시 구조조정의 칼날은 많은 직장인들을 잔인하게 잘라냈다. 해고와 자살이 반복됐다. ‘괜찮다’ 외치던 정부와 언론은 사태가 커지자 국민에게 금을 구걸했다. 한국 경제는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세월호 사건은 고온을 감지 못한 탓이다. 이상 온도를 발견했지만 그 심각성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해 벌어진 참사다. 언론의 ‘전원 구조’오보는 40℃가 넘는 심부 온도를 36.5℃로 잰 것과 같은 실수였다. 초동대처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 만무했다. 대재앙이 발생했다. 꽃다운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고 이후에도 언론은 반성하지 못했다. 여전히 언론은 40℃가 넘는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 유가족들의 격앙된 슬픔은 폭발 직전의 고온을 기록 중임에도.

사회의 현재 온도를 읽어내는 것. 기자의 역할이다. 기자는 사회의 체온계다. 생명과 직결되는 온도를 파악하는 존재다. 사회가 병들어 고약한 열병에 들었을 때, 사회의 건강 상태를 알려주는 소중한 신호다. 사회의 온도가 썩고 부패해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에, 동상에 걸려 팔 다리 잘리는 사람이 생기기 전에 적절한 처방을 내릴 수 있도록 인도하는 존재다. 이상 체온으로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측정하는 것이 체온계의 사명이다.

▲ 기자는 사회의 체온계다. ⓒ flickr

일본의 전염병 전문의 사이토 마사시는 ‘체온 1℃가 우리 몸을 살린다’고 했다. 체온계만 제대로 작동해도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 기자(記者)는 기록하는 자가 아니다. 사실을 측정하고 진실을 읽어내는 사람이다. 뜨거움에 눈물 흘릴 수 없는 자, 차가움에 분노하지 못하는 자, 수은 덩어리일 뿐이다.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읽어내고,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기자. 권력에 차고 약자에 뜨거운 기자. 기자는 그런 체온계여야 한다. 체온계는 사람을 향한다. 기자도 사람을 향해야 한다.


편집 : 유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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