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기획’도 ‘기자의 고민’도 없었던 첫 방송
[지난주 TV를 보니:3.21~3.27]

<뉴스추적> 없애고 <9시 뉴스>와 대응 편성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새롭게 선보이는 <현장 21>입니다. <현장 21>은 지금 이 시대의 이슈와 현안을 쫓고, 살아 움직이는 현장을 취재해서, 이면의 진실은 무엇인지 생생하게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지난 22일 에스비에스(SBS)가 <기자가 만나는 세상 - 현장 21>(이하 현장21)을 선 보였다. 15년 동안 이어왔던 시사고발 프로그램 <뉴스추적>을 종영하고 후속 편성한 것이다. 방송시간도 기존의 수요일 밤 11시에서 화요일 밤 9시로 옮겼다. 화요일 그 시간에 방송하던 드라마를 폐지하고 시사 프로그램을 넣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 만했다. 화요일 밤에는 KBS와 MBC의 <9시 뉴스>와 함께 지상파 3사가 보도물로 경쟁하게 된 셈이다.

<현장 21>은 <뉴스추적>과 마찬가지로 기자가 만드는 시사 프로그램이다. 진행 역시 <뉴스추적>에 이어 한수진 기자가 맡았다. 취재진은 “뉴스 속 단순한 사실을 넘어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고, 권력과 자본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겠다”며 “탐사성과 심층성을 살려 품격과 무게감이 녹아있는 방송을 하되, 20~30대 젊은 시청자들의 관심과 화제도 적극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지진 해일 피해와 방사능 공포에 떨고 있는 일본 현지의 실태를 전한 <현장21>. ⓒSBS

일본 지진 다룬 첫 회 반응 “지루했다”

 22일 첫 방송은 지진으로 폐허가 된 일본 현장을 조명한 ‘대재앙 현장을 가다’와 지진 속에서 살아남은 한국 교민을 인터뷰한 ‘죽다 살아났지만...’, 그리고 일본의 원전사고와 우리의 원전 실태를 비교한 ‘예견된 참사 우리는...?’으로 구성됐다. 최근 가장 큰 이슈라고 할 수 있는 일본 대지진을 다뤘지만 이미 지진 발생 열흘이 지난 시점이어서 신선한 소재는 아니었다. 세 편의 아이템 또한 이미 정규 뉴스나 타 방송사의 시사 프로그램에서 여러 번 다룬 것들이었다. 신규 프로그램의 첫 회치고는 고민이 부족해 보이는 기획이었다.

KBS의 <취재파일 4321>은 지난 13일, 지진 발생 이틀 만에 일본 대지진을 심층적으로 다뤘다. 발 빠르게 프로그램을 제작한 덕에 평소 시청률보다 2~3% 높은 9.9%(AGB닐슨 미디어리서치, 수도권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MBC의 <시사매거진 2580>도 지난 20일 일본 대지진 관련 보도물을 내보냈다. 지진으로 집과 가족을 잃은 노래방 업주 스즈키 씨의 사례를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소개했다. 기자의 순발력과 현장감 있는 구성이 돋보였다. 원전의 문제점을 다룰 때 그래프를 사용해 알기 쉽게 설명한 부분도 높이 살 만 했다. 이날 <시사매거진 2580>의 시청률은 9.6%(AGB닐슨 미디어리서치, 수도권 기준)로 평소보다 높은 편이었다.

이와 비교해 볼 때 <현장21>의 방송 내용은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기에 역부족이었다. 차별성이 거의 없었다. 지진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교민 여성이 피난처로 오면서 겪었던 우여곡절은 잘 살릴 만한 소재였는데 아쉬움을 남긴 채 끝나버렸다. 특히 그 교민을 도와 준 중국 여성의 사연도 시청자 입장에서는 더 듣고 싶었지만 더 이상의 언급이 없었다. 3일 동안 걸어서 탈출했다는 교민 여성의 얘기를 잘 살렸다면 한 편의 ‘드라마’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것으로 확실한 차별화가 됐을 것이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중국 분은 중국영사관으로 갈 수 있다든가, 그런 말도 없으니 이건 완전...”등 미흡한 취재에 불만을 표하는 의견이 올라왔다. “내용이 지루하다” “나레이션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현장21>이 내건 “기자들의 뜨거운 열정과 치열한 고민을 담겠다‘는 구호를 무색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콘텐츠 기획의 기본은 ‘새로움’과 ‘차별화’

내용 면에서 뿐만 아니라 진행방식 등 형식면에서도 <현장21>은 신규 프로그램이 갖춰야 할 요소를 거의 갖추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신선함도 찾기 어려웠고, 특별히 ‘튀는 요소’도 없었다. 여성 앵커(한수진 기자)가 진행한다는 점 이외에 다른 프로그램과 ‘다른 무엇’을 가미한 어떤 시도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난 22일 SBS가 선보인 <현장21>의 진행자 한수진. ⓒSBS

<현장21>은 자사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 싶다>나 MBC의 <시사매거진 2580>에서 좀 배우면 어떨까? 이들 프로그램들은 시작할 때 이미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여러 새로운 장치들을 갖추고 있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기존의 프로그램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재연 기법’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범죄 현장을 모노톤(단색조)으로 드라마화하는 방식은 당시 시청자들에게는 낯설었고,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영상 매체의 특성을 살려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부족한 영상의 한계를 극복한 시도이기도 했다. 문성근이라는 배우를 진행자로 선정한 것이나 의자에 앉지 않고 서서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진행 방식도 새로운 것이었다.

<시사매거진2580> 또한 기자들의 진행 방식이나 독특한 나레이션, 음악 활용 등으로 기존의 프로그램들과 분명한 차별화를 시도해 성공한 프로그램이다. 당시 기자 한 명이 크로마키 화면(합성화면)을 배경으로 시청자들을 바라보며 서두를 시작하는 방식은 비록 미국의 <60분>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으나 한국에서는 처음 시도하는 일이었다. 기자들은 대본을 자신의 스타일에 맞춰 감성적인 톤으로 작성해 읽었으며, 음악은 기존의 시사 프로그램에서 사용하지 않던 분위기의 곡들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아이템과 아이템 사이의 연결 부분도 새로운 편집 스타일이었다.

<현장21>은 제목조차 그리 새롭지 않다. 언어를 다루는 저널리즘 영역에서는 부끄러워해야 할 일일지 모른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이 있다. 새 프로그램은 새로워야 한다, 신선해야 한다. 기존의 프로그램에서 무엇 하나를 더 추가하는 것이라도 좋다. 시청자들이 새로운 프로그램을 알아 볼 수 있도록 차별적인 요소를 포함시켜야 한다. <현장21>은 콘텐츠 기획의 기본 요소들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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