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남이 본 나

▲강한 기자

명왕성

네가 사법고시를 그만뒀을 때 나는 기뻤다. 남자로 태어나 법관이라니 네 인생이 아깝지 않으냐. 권력과 부를 탐한 것이 아님은 알고 있었다. 입력된 규칙에 따라 결과를 산출하는 계산기와 정해진 법에 따라 판결을 내놓기만 하는 판검사가 무엇이 다르냐.

내 신세를 봐라. 인간들이 멋대로 정한 잣대에 어제는 태양계 9번째 행성으로 추켜올려졌다가 오늘은 변방의 쓸모없는 자투리별로 폄하되고 말았다. 먼지 같은 지구인들아, 뉴턴의 법칙이니 상대성의 법칙이니 주워섬기며 불과 몇 천 킬로 차이로 별의 등급을 결정하는 너희가 나는 우습다. 너희는 이 거대한 우주에서 감히 판관을 자처하느냐.

규칙을 뛰어넘는 눈을 키워라. 네가 규칙을 발견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을 때 나는 기뻤다. 네가 사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규칙과 현상들을 발견한다면 그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너로 인해 더 지혜와 슬기를 얻는다면 네 지위는 낮아도 너는 이미 큰 존재다. 지금 비록 초라해도 스스로를 높여라. 나는 태양계에서 가장 작지만 저승의 신의 이름을 따서 ‘Pluto’, 명왕(冥王)이라 불린다. 탐사선 뉴 호라이즌스를 보아라. 가장 멀리 있지만 사람들이 결국은 나를 찾아오지 않았더냐. 자신의 가치를 믿어라. 우주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해왕성과 천왕성

우리는 쌍둥이처럼 비슷하다. 우리는 대기가 비슷하다. 온도도 비슷하다. 크기도 비슷하다. 하지만 우리는 23억 킬로미터 떨어져있다. 가장 가까울 때가 그렇다.

우리가 가까웠다면 서로의 중력 때문에 계속해서 가까워졌을 것이다. 마침내 부딪쳐 어느 한 쪽은 형체도 남지 않고 사라졌을 것이다.

너는 정이 많다. 그렇다고 네가 느끼는 끌림을 상대도 똑같이 느낄 것이라 기대치 마라. 네가 주는 정을 상대도 똑같이 내 놓으라 요구치 마라. 자석처럼 끌리는 정신적 쌍둥이를 만나더라도 거리를 보장해줘라. 조금은 멀리서, 있는 듯 없는 듯 아끼는 것이 더 큰 사랑과 우정의 표현법이다.

토성

해왕성과 천왕성의 말을 듣지 마라. 사람은 받는 만큼 주고 싶은 법이다. 네가 상대에게 거리를 두면 사람들도 너에게 거리를 두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그동안 네가 스스로를 통제하고 상대를 가려가며 정을 주었다면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로 주변을 채울 수 없었을 것이다. 드러내지 않는 속 깊은 표현이라고? 네 마음을 상대가 알아채기를 바라는 것이 더 이기적인 태도다.

▲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은 아름다운 고리를 가지고 있다. 그중 토성의 고리가 가장 장엄하다. ⓒ Pixabay

아낌없이 표현해라. 다 주기위해 스스로를 가꾸어라.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리를 가꿔 태양계에서 가장 사랑 받는 행성이 됐다. 푸른색과 녹색과 붉은색을 우아하게 걸친 태양계의 멋쟁이다.

옷차림과 외모에 무관심함을 쿨함이나 남자다움으로 여기지 마라. 착각이다. 깎지 않은 수염은 남자다움이 아니라 게으름이고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은 스스로를 평가 절하시키는 어리석음이다. 처음 보는 사람은 일단 외모로 판단된다. 첫인상은 너의 내면이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단서다.

목성

나는 주피터다. 신들의 왕이다. 별들 중 가장 거대한 내가 별들의 왕인 건 당연하다. 그래. 나는 지구보다 318배 무겁고 지구보다 1,400배 크다. 그렇다고 내가 가장 강할까.

강한아 너는 자신을 지덕체를 두루 갖춘 강한 사람이라 말한다. 과연 그러냐. 똑똑하고 남을 배려하며 지치지 않느냐. 강한 자가 되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하고 있느냐.

사람들은 크기를 보고 내가 강할 것이라 여기지만 사실 나는 거품이다. 수소와 헬륨으로 가득 차 덩치만 크다. 가스를 걷고 나면 형편없이 줄어들 것이다. 네가 사는 지구의 밀도가 나 목성 밀도의 4배가 넘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 강한 것이 무엇인지는 내게도 숙제다. 부풀리는 것보단 옹골찬 것이 먼저다. 단단해져라. 단련해라. 스스로를 포장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때를 늘 경계해라.

화성 금성 수성

우리는 불과 쇠와 물이다. 불 같은 너의 성정을 다스려라. 불뚝 튀어나와 주변을 할퀴는 성격을 고치고 정말 필요할 때 뜻을 밀어붙여 나가는 의기와 패기를 갖춰라.

쇠를 두드리는 망치와 모루처럼 스스로를 채찍질 할 도구가 필요하다. 스스로를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고 과신하지 마라. 너는 어제도 늦잠을 자지 않았느냐. 매일 일기장에 일기를 써라. 배움이 있는 곳을 찾아가 머리를 숙여라. 알람시계를 더 사라. 환경과 상황이 너를 돕도록 해라. 그것들이 너의 망치와 모루가 되어 줄 것이다.

동양인들은 내게 수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서양인들은 나를 전령의 신 헤르메스라 부른다. 물처럼 남에게 이로운 존재가 되어라. 헤르메스처럼 남을 위해 뛰어라. 왜 그래야 하느냐고 물을 줄 알았다. 너는 욕심이 너무 많다. 남을 위해 살아라. 왜 그래야 하는지는 해보면 안다.

▲ 우주에는 1000억 개의 은하가 있고 은하마다 1000억 개의 별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의 별은 약 6000개. 1/3은 지평선 아래에 있고 1/3은 지평선 언저리에 있다. 따라서 밤하늘에서 지금 말을 걸고 있는 별의 수는 2000개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 Pixabay

도시를 떠나 제천 생활을 하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매일 밤 황홀한 별들의 향연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밤마다 별이 쏟아진다. 처음엔 까만 도화지에 수없이 박힌 예쁜 알갱이들로만 여겼다. 지구와 별 하나의 거리는 시시각각 변한다. 지구와 별들 사이의 거리는 모두 다르다. 밤하늘은 평평한 도화지가 아니라 3차원 입체공간이다. 마침내 별이 쏟아지는 날이 온다면 별들은 시간차를 두고 제각각 떨어질 것이다. 별들은 각각의 방향에서 각각의 거리에서 나를 내려다본다.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별 하나하나가 더 분명하고 중요하게 다가온다. 시인 윤동주가 ‘별 하나 나 하나’ 세었던 이유를 알겠다. 저렇게 많은 별들이 지켜보니 ‘하늘 아래 한 점 부끄럼 없을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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