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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나면 끝장인데 떠날 수도 없다”
[원전재앙은 막자] ③ 노후 원전의 위험성 <하>
2015년 11월 02일 (월) 18:29:14 이정화 기자 cool9867@naver.com

“울산 시민 99%가 원전에 둘러싸여 있는 거죠. 만에 하나 사고가 나면 울산은 끝장이고. 이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에요.”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의 고리원전에서 25킬로미터(km) 떨어진 울산시 울주군 삼동면에 사는 최수미(49·여) 씨는 태풍이 심하게 불면 마음이 요동친다. 쓰나미(지진해일)가 들이닥친 후 폭발사고를 일으킨 일본의 후쿠시마원전처럼, 고리원전에도 천재지변으로 사고가 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지나가는 소리에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고 한다. 울산 지역 주민들에게 원전은 이처럼 ‘일상적 공포’다. 울주군의 신고리 1,2호기와 부산 기장의 고리 2,3,4호기 등 한창 가동 중인 5기의 원전이 울산을 둘러싸고 있다.  

   
▲ 월성원전이 있는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의 식당가는 주말인데도 사람이 없어 한산했다. ⓒ 이정화

핵폭탄처럼 위험한 원전에 둘러싸인 사람들 

“원전이 핵폭탄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 견딜 수 없이 불안한 거예요. 만에 하나 사고가 나면 울산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살 수 없는 땅으로 변하는 거죠. 우리 애가 고1인데 아이한테 이런 세상을 물려주는 것은 어른으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를 낳았다는 게 후회될 정도로 너무 불안해요.”

최씨는 “원전 때문에 삶이 파괴됐다”고까지 말했다.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일상을 짓누르기 때문이다. 설계수명을 다해 최근 폐쇄가 결정된 고리1호기는 다른 원전에 비해 사고율이 높았다.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후 130번의 사고‧고장이 발생했다. 가동 중인 신고리 1호기는 2010년부터 2015년 사이 총 22번의 고장이 발생했고, 신고리 2호기 역시 같은 기간 두 번의 고장이 있었다. 고리 2호기도 이 기간 중 4번, 3호기 3번, 4호기 4번의 고장이 보고됐다. 정부와 원전 옹호론자들은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가 설계상 매우 안전하며 철저히 관리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동안 빈번하게 일어난 고장·사고 등 관리부실과 부품 관련 비리 등을 감안할 때 이를 믿기 어렵다고 최씨는 말했다. 또 원전에서 새 나오는 방사성 물질에 대한 건강 우려도 크다고 덧붙였다.   

“원전이 가동되면서 방사성 물질이 공기 중으로 방출되고 있잖아요. 보이지 않고 냄새도 없고 느낄 수가 없으니까 더 불안하죠. 인간의 지각을 벗어난 공포인 거죠.” 

최씨는 삶의 터전인 울산을 쉽게 떠날 수도 없고, 위험한 원전을 근처에 두고 맘 편히 살 수도 없어 괴로운 것이 이 지역 주민들의 마음이라고 전했다. 그래서 그는 행동하기로 결심했다. 지난 4월 ‘노후원전 폐쇄를 위한 울산운동본부’를 만들어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지난 6월 고리1호기 가동중단이 결정된 후에는 이 조직을 ‘탈핵공동행동’으로 전환했다. 후쿠시마 사고 전까지만 해도 원전에 아무 관심이 없었던 최씨지만, 2011년 3월의 사고는 그의 삶을 총체적으로 바꾸었다. 원전이 ‘죽음의 에너지’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 우리 사회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어떤 대응이나 대책도 마련하지 않는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주민 서명운동과 원전의 실상을 알리는 교육 등 핵발전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민운동에 발 벗고 나섰다. 

만일의 사고에 대비한 시설도, 훈련도 없는 현실 

“제 주변에 울산을 떠난 사람도 많아요. 남편만 울산에 남아 있고 아내와 아기는 다른 곳에 가 있는 경우도 있고요. 아예 울산에 집을 안 사요. 다른 지역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 거죠. 이웃들이 가만히 있으면 괜찮은가보다 하지만 이제는 다 아니까,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거죠.”

울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서진희(33·여) 씨는 울산시 울주군 범서읍에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 생업을 두고 울산을 떠날 수 없는 그는 원전 사고가 났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아보고 대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서씨가 사는 동네는 지난 4월 21일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확정한 ‘방사선비상계획구역’ 30km 안에 포함된다.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은 원전 사고에 대비해 방호약품을 구비하고 구호소를 확보하는 등 주민보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는 범위다. 과거에는 원전시설 반경 8~10km 범위에서 운영해왔으나 이번에 기준을 강화해 고리원전의 경우 반경 20~30km로 정했다. 경북 경주의 월성원전 등 다른 원전들도 지역별로 원전 반경 20~30km를 비상계획구역에 포함시켰다. 미국의 경우 원전에서 80km까지, 벨기에‧핀란드‧독일 등 유럽 국가는 20~30km를, 헝가리는 최대 300km를 비상계획구역에 포함시켜 관리하고 있다. 서씨는 우리나라의 경우 비상계획구역 내에서도 이렇다 할 사고대비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 박승준(일본 관서학원대학 종합정책학부 준교수), 임상혁(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 양이원영(환경운동연합 탈핵에너지국 국장) 연구팀이 진행한 고리 1호기 방사능 누출사고 시뮬레이션 사진. 사고가 나면 부산경남지역 대부분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 환경과 자치연구소

환경운동연합과 반핵부산대책위, 핵없는세상광주전남행동 등은 지난 2012년 5월 고리원전 1호기와 월성원전 1호기의 사고피해 모의실험을 했다. 일본의 원전 사고 평가 프로그램인 세오 코드(SEO code)를 이용한 실험 결과 고리1호기에서 후쿠시마급의 사고가 날 경우 암 사망 등 인명피해가 최대 85만여명, 주민대피 등의 여파로 경제피해가 최대 628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환경운동연합 원전특위 서토덕 공동위원장은 “인구 밀집 지역에 원전을 짓는 것부터가 비상식”이라고 지적했다. 고리원전 반경 30km 내에 살고 있는 인구는 약 320만명에 이른다. 후쿠시마 원전 30km 이내에 17만명이 살고 있던 것과 비교하면 19배나 된다. 고리원전 반경 30km 안에는 해운대 해수욕장과 부산시청, 울산시청,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석유화학공업단지 등 주요 시설이 밀집해 있다. 대형 원전사고가 날 경우, 이 정도 인구가 동시에 어딘가로 대피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방사능 낙진 피할 수 있는 대피시설 한 곳도 없어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은 확대 지정됐지만, 사고에 대비한 시설·장비나 훈련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원안위가 낸 '방사선비상계획구역 바로알기' 보고서는 구역 내 관할 지자체별로 학교‧체육관 등 대규모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 약 140개를 구호소로 지정‧관리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를 대폭 확대 지정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서토덕 공동위원장이 정보공개청구한 자료에 따르면 부산지역의 1926개 민방위 대피소 중 방사능 낙진을 피할 수 있는 대피소는 한 곳도 없다. 예를 들어 부산 기장군 기장읍의 대청초등학교는 방사능비상계획구역 10km 지점에 있고 대피소 팻말이 붙어 있으나 어떤 보호 장비나 시설도 갖추고 있지 않다.  

원안위의 고리지역 사무소는 방사능 누출 사고가 나면 사고대책본부 역할을 맡아야 하는 곳이지만 이곳 역시 방사능 낙진을 피할 수 없다. 방사능 낙진에 대비할 수 있는 구호 시설이 전혀 없다는 것, 이것이 세계 최고수준의 원전 밀집도를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방재 현주소다.

이런 상황에서 방재 예산도 줄었다. 원전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은 방사선 비상사고 대처를 위해 방재훈련과 방재장비, 방호용품 확보 등의 목적으로 매년 예산을 편성한다. 그런데 이 예산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다음 해인 2012년 99억 원으로 반짝 늘었다가 2013년 28억원 등으로 다시 줄었다. ‘사고는 안 날 것’이란 막연한 기대 속에 사실상 사고 대비를 외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원전 원자력방재대책 예산집행 현황. ⓒ 한국수력원자력

환경전문가들은 가공할 사고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고리원전 1호기 폐쇄에 이어 월성원전 1호기 등 설계수명을 다한 원전부터 가동을 중단하면서 순차적으로 탈핵과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생산원가 이하로 공급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을 현실화하는 등 에너지 과소비구조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공장과 빌딩 등의 에너지효율화 투자를 적극 지원하며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가속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원전 하나 건설하는데 3조 8000억원이 듭니다. 정부는 2030년까지 40조를 투자해서 41개의 원전을 운영하겠다고 합니다. 이 돈을 에너지절약, 에너지효율성제고, 신재생에너지에 투자하면 10년 안에는 힘들지 몰라도 20년 안에는 탈핵이 가능합니다. 지금 우리가 가동하고 있는 원전을 일시에 멈추는 것은 어렵지만 당장 위험한 노후 원전인 고리 1호기에 이어 월성 1호기를 폐쇄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두 원전의 발전량이 전체 전기의 1.5%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독일‧벨기에‧스위스‧이탈리아 등 유럽의 여러 나라는 이미 ‘완전 탈핵’을 결정하고 신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성공적인 에너지구조 전환을 이뤄가고 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재생가능에너지가 전체 전기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아이슬란드는 83.8%, 노르웨이 43.7%, 뉴질랜드 40.4%이고 스페인은 풍력으로만 30%를 충당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의 34개 회원국 중 원전이 아예 없는 나라가 16개국이다. ‘목숨을 위협하지 않는 에너지체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많은 선진국이 이미 보여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태양광, 풍력, 지열, 바이오 등 신재생에너지 종합적 이용 조건이 독일 등 유럽 국가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정부의 정책선택에 따라 기술과 경제성 격차도 어렵지 않게 좁힐 수 있다고 강조한다. 노후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고 새 원전까지 지어가며 국민의 삶에 ‘공포와 불안’을 더할 것인지, 신재생에너지로 ‘안전’과 ‘새로운 성장 동력’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것인지 냉철한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대참사 후 독일, 벨기에, 스위스, 프랑스 등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들은 원전을 폐기하거나 줄여가는 ‘탈원전’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설계수명을 넘긴 월성 1호기를 연장 가동하고, 새로운 원전을 증설하기로 하는 등 거꾸로 가는 모습이다. 노후 원전의 사고 가능성과 지역주민의 건강 피해, 대책 없는 핵폐기물 등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를 외면한 채 이처럼 ‘원전대국’으로 직진해도 되는 것일까. <단비뉴스>는 우리나라 원전 정책의 문제점과 원자력발전의 근본적 위험성을 짚어보고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에너지 체제’를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편집자) 

편집 : 이명주 기자

[이정화 기자]
단비뉴스 편집부, 환경팀 이정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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