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뉴스]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제3차 범국민 촛불대회

“진시황의 분서갱유(책을 태우고 학자를 파묻음), 연산군의 사초훼손(역사기록초고 손상) 같은 일을 흉내 내려는 만행과 폭거를 낱낱이 역사에 기록해서 두고두고 경계할 역사로 남길 것입니다.”
 
지난달 31일 오후 6시, 480여 시민·사회·교육단체로 구성된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가 주최한 제3차 역사교과서 국정화저지 범국민 촛불대회가 서울 서린동 청계광장에서 열렸다. 대학생, 청소년, 역사학자 등 주최측 추산 1만여명(경찰 추산 2500여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밝혀들고 “친일·독재 비호하는 역사교과서 거부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안병욱(67) 전 진실화해위원장은 “박근혜 정부가 지난 3년 동안 역사에 남을 아무런 일도 한 것이 없지만 우리를 이곳에 모이게 한 것 하나는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문을 연 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분서갱유(焚書坑儒), 사초훼손(史草毁損)에 빗대 비판했다.

친일파 청산, 독립투사 예우 왜 안 됐나

민주주의를 수호한 이들에 대한 묵념 등 민중의례로 시작된 이날 집회는 시민대표들의 발언과 문화공연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고등학교 1학년생인 이권택(17·경기도 양주시)군은 ‘윗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윗분들에게 고마운 점은 서울 구경을 시켜준 것과 국민소통의 장을 만든 것, 어이없어서 웃게 해준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군은 “이제 코미디가 아닌 진짜 정치를 보고 싶다”며 주먹을 내뻗기도 했다. 그는 또 “영화 <암살>로 알려진 김원봉 선생님은 독립에 있어서 지극히 큰 역할을 하셨는데 왜 인정받지 못했느냐”며 “친일파 청산이 되지 않은 것과 독립투사 후손들에 대한 대우가 부족한 이유가 너무나 궁금하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를 위한 3차 범국민 촛불대회 참여자들이 서울 청계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 문중현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박성호군의 어머니 정혜숙(47)씨,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최창식(48) 경기지부장 등에 이어 지난달 30일 대구에서 ‘국정화 반대 휠체어 국토종단’을 출발한 대구장애인차별감시연대 최창현(49) 대표도 연단에 올라 시민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발언 중간 중간에 전국노래패교사연합, 유기농펑크포크 가수 ‘사이’ 등이 공연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주최측은 지난 보름 동안 국내외에서 받은 31만5000명의 국정화반대 서명을 오는 2일 청와대에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1 아들과 함께 참석한 임영순(55·여·서울 중랑구)씨는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역사 과목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나왔다”며 “역사를 개인이나 권력의 사유물로 보는 국정교과서는 택도 없는 소리”라고 말했다. 23세 딸과 함께 나온 김경숙(50·여·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씨는 “북한을 따라가는 듯한 교과서 국정화에 패배감과 무력감을 느낀다”며 “지인들에게 집회 가자고 하니 ‘뭐가 바뀌겠냐’고 답해 속상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서문교회 박원홍(59) 목사는 “일본은 31개 (검인정)교과서이고 한국은 8개인데 그것마저도 하나로 만들면 일본한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며 한탄했다.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이에 앞서 오후 4시에는 대학생 1000여명(주최측 추산)이 청계광장을 미리 달궜다. 이날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등 도심 곳곳에서 국정화 반대 사전행사를 열었던 건국대, 고려대, 연세대, 전남대 등 전국 30여개 대학 학생들이 청계광장에서 합류한 것이다.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손솔(22)씨가 외치자 참가자들이 큰 함성으로 화답했다. 손씨는 지난달 12일 ‘국정화 고시’에 맞서 스무 명의 대학생들이 서울 세종로 이순신 동상에 올라가 시위를 벌였고, 각 대학에서 서명을 받고 대자보를 붙이는 등 저항의 길을 열어냈다고 강조했다. 손씨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국정교과서가 통과되지 않도록 이제 우리 청년들이 경고를 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주무열(30)씨는 “상식을 지켜내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나라의 상황이 대단히 걱정스럽다”며 “이 자리 이 모임은 비상식에 대한 도전이고, 국가의 야만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대학생들이 집회를 하는 동안 청계천 건너편 도로로 ‘국정교과서반대 청소년행동’에 참여한 초·중·고등학생 300여명이 행진하자 대학생들은 손을 흔들며 환호하기도 했다. 각 대학의 대표들은 함께 연단에 올라 ‘역사를 퇴행시키는 박근혜 정부에 맞서 행동하고 앞으로 나아갈 것’ 등을 다짐하는 결의문을 낭독했다. 대학생들은 이어진 범국민 촛불대회와 행진에도 참가했다.

촛불 든 행렬 한 시간가량 도심 행진

저녁 8시를 조금 넘긴 시각, 범국민대회 주최측은 집회를 마치면서 시민들에게 쓰레기봉투를 나눠주고 자리를 정리했다. 이어 대다수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청계광장에서 종로1가와 을지로 2가를 거쳐 시청까지 한 시간가량 “역사왜곡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행렬에 있던 성창석(고려대 행정학 1)씨는 “역사공부를 하면서 역사는 가치관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나왔다”며 “정권 입맛에 맞는 역사를 만드는 건 나치나 파시스트가 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진은 경찰의 교통 통제 속에 극우단체 등과의 충돌 없이 평화롭게 마무리됐다. 참가자들은 저녁 9시9분쯤 시청 옆 사거리에 모여 오는 7일 청계광장에서 다시 모이기로 하고 집회를 마쳤다.

▲ 이날 오후 4시경부터 대학생들이 청계광장에 모여들었다.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출발한 고려대, 경희대, 서울여대 등 서울 동북권 11개대 학생들이 가장 먼저 도착했다. ⓒ 문중현
▲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집회를 마친 서울대, 숙명여대 등 서울남부권 8개대 학생들이 ‘국정화 반대’를 외치며 청계광장으로 진입하고 있다. ⓒ 문중현
▲ 이화여대, 연세대, 경인교대 등 서울서부권 9개대 학생들이 청계광장에 도착하고 있다. 이화여대 사학과의 한 학생이 “역사는 감탄고토(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의 학문이 아닙니다”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다. ⓒ 문중현
▲ 한 학생이 ‘헬조선’에서 ‘넌 행복해’라고 세뇌하는 국정교과서를 반대한다는 내용의 팻말을 들고 있다. ⓒ 문중현
▲ 경인교대 학생들은 “교육의 획일과 역행을 올바르다 하지말라“는 구호로 국정교과서를 반대했다. ⓒ 문중현
▲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독재적 발상 철회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는 대학생들. ⓒ 문중현
▲ 대학생들의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한 남성이 이들을 응원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 문중현
▲ 역사교과서 국정화 중단을 촉구하는 청소년들의 행진. “21세기 역사독재, 부끄러운 우리나라” “국정교과서 너네나 배워라” 등의 팻말을 들고 있다. ⓒ 문중현
▲ 촛불 대회에서 한 여성이 주먹을 쥐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문중현
▲ 시민들은 주최측이 나눠준 피켓 뒷면 공간에 국정교과서에 대한 생각을 자유롭게 적었다. ⓒ 문중현
▲ 어린 아이를 데리고 나와 함께 촛불을 든 가족들도 보였다. ⓒ 문중현
▲ 고등학생 이권택군이 비상교육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를 펼치며 “유관순 열사 똑똑히 나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현행 검정제 교과서에 유관순 열사가 없다’는 교육부 광고를 반박하는 것이다. ⓒ 문중현
▲ 이화여대 손솔 총학생회장이 “10월 29일 경찰이 이화여대에 진입해 박근혜 대통령 방문 반대를 외치는 학생들을 강제로 제지했다”고 설명하자 청중이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있다. ⓒ 문중현
▲ 청계광장을 메운 촛불 시민들. ⓒ 문중현
▲ 거리행진 도중 한 시민이 확성기로 “시민들의 힘을 모아 역사쿠데타 막아내자”고 외치고 있다. ⓒ 문중현
▲ 경찰은 청계천 일대의 교통을 통제하면서 시민행진을 도왔다. ⓒ 문중현
▲ 연도의 시민들은 박수를 치거나 카메라로 촬영을 하는 등 촛불행진에 관심을 보였다. ⓒ 문중현
▲ 서울 종로2가를 거쳐 을지로를 지나 최종 목적지인 시청으로 향하는 행렬. ⓒ 문중현

 편집 : 문중현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