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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된 고물차, ‘질주 면허’ 받다
[원전재앙은 막자] ① 낡은 핵발전소의 위협 <상>
2015년 09월 28일 (월) 11:05:49 이정화 기자 cool9867@naver.com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대참사 후 독일, 벨기에, 스위스, 프랑스 등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들은 원전을 폐기하거나 줄여가는 ‘탈원전’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설계수명을 넘긴 월성 1호기를 연장 가동하고, 새로운 원전을 증설하기로 하는 등 거꾸로 가는 모습이다. 노후 원전의 사고 가능성과 지역주민의 건강 피해, 대책 없는 핵폐기물 등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를 외면한 채 이처럼 ‘원전대국’으로 직진해도 되는 것일까. <단비뉴스>는 우리나라 원전 정책의 문제점과 원자력발전의 근본적 위험성을 짚어보고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에너지 체제’를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편집자) 

“경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지난 20일 오후, 시외버스를 타고 도착한 경주는 도로 옆 팻말 문구처럼 손님을 반기는 평화로운 관광도시의 모습이었다. 불국사, 석굴암 등 풍성한 역사유적과 보문단지 등 다양한 휴양시설을 자랑하는 천년고도(千年古都) 경주. 하지만 노서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차로 한 시간가량 달려 도착한 양남면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천년고도 경주에 5기의 원전, 1기는 수명연장까지  

“오염된 나아지역 벗어나고파.”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은 도적.”

경주에는 월성 1, 2, 3, 4호기와 신월성 1호기 등 모두 5기의 원전이 있고, 양남면에는 그중 가장 오래된 월성 1호기가 있다. 원전 근처 월성원자력홍보관 주변에는 갖가지 원전 반대 구호가 적힌 나무 팻말들이 여기저기 꽂혀 있었다. 뭐라고 쓰였는지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갈가리 찢긴 현수막들도 나부꼈다. 홍보관 주차장 구석에는 시위대가 썼던 것으로 보이는 낡은 텐트가 눈에 띄었다. 멀리 산등성이와 들판으로는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친 송전탑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 양남면에 접어들자 곳곳에 송전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이정화

월성1호기는 1982년부터 상업운전을 시작했고 2012년 설계수명 30년이 끝났지만, 가동 중단한 지 946일 만인 지난 6월 23일 오후 2시부터 다시 전력생산을 시작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점검 결과 재가동에 문제가 없다’며 승인을 내주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부터 월성원전 남문 앞에 농성천막을 치고 이주대책을 요구해 온 ‘월성원전인접지역 나아·나사리 이주대책위원회’ 주민들은 아침마다 자신들의 이름이 새겨진 관을 들고 행진하는 등 저항했다. 

이들은 지난 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경주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들이 주관한 ‘월성1호기폐쇄 경주시민 만인소(萬人疏) 전달 기자회견’에서 “월성 1호기를 폐쇄하고 주민이주대책을 마련하라”고 호소했다. 후쿠시마 참사 후 원전의 위험성이 부각되면서 마을 일대의 부동산거래가 끊기고 횟집이나 바닷가에 찾아오는 관광객도 크게 줄어 주민들은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 등에 따르면 최근 동국대산학협력단, 조선대산학협력단, 한국원자력의학원이 공동연구한 <월성원자력본부 주변주민 삼중수소 영향평가> 결과, 양남면 나아리 주민들의 소변에서 방사성물질인 삼중수소(트리튬)가 100% 검출돼 건강에 대한 우려도 높다. 

시민단체들은 월성 1호기를 개발한 캐나다의 경우 동종의 ‘캔두형 중수로’를 위험성과 비경제성 때문에 더 이상 건설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캐나다에서는 월성 1호기와 동일한 설계수명의 동종 원전을 연장가동하려면 약 4조원이 든다는 계산이 나와 폐쇄했는데, 월성 1호기는 고작 5600억원을 들여 압력관 등 일부만 교체한 뒤 재가동 승인을 받았다며 사고 가능성을 우려했다. 

 
▲ 월성원전 홍보관 앞에 찢어진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다. © 이정화

반면 현지에는 이런 걱정에 비교적 무심한 주민과 관광객도 없지 않았다. 홍보관 근처의 한 식당에서 만난 관광객 김종한(53·울산시 중구)씨는 “전혀 불안하지 않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사고가 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아리의 한 주민(52)은 “내진설계나 안전장치를 다 해놓았다고 하니 그렇게 불안하진 않다”면서도 “가까이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 위험은 감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전대국 순서대로 3번의 대형사고, 4위인 한국은? 

지난해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집계한 발전용량별 세계 원전운영국 순위를 보면, 우리나라는 14만3550기가와트(GW)로 미국(77만719GW), 프랑스(40만7438GW), 러시아(16만6293GW)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후쿠시마 사고 전 3위였던 일본은 가동중단 상태인 원전이 많아 18위로 내려앉았다. 현재 가동 중인 원전 기수는 미국이 100기, 프랑스 58기, 러시아 33기, 한국 23기다. 

이 중 프랑스는 후쿠시마 참사를 목격한 뒤, 향후 24개의 원자로를 폐쇄해 원전의존도를 현재의 75%에서 오는 2025년 50%로 낮추기로 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공약을 담은 ‘에너지전환법안’은 지난 5월 프랑스 하원 심의를 통과했다. 5위인 독일(9만4098GW)은 노후 원전 8기를 2011년 폐쇄했고 2022년까지 독일 내 원전을 모두 닫는 ‘완전 탈핵’을 결정했다. 반면 우리정부의 에너지기본계획에 따르면 오는 2035년까지 12기를 추가로 지어 국내 원전은 35기로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 2011년까지 1~4위 원전대국 중 미국(쓰리마일), 러시아(체르노빌), 일본(후쿠시마) 등 3개국이 초대형 원전사고를 당했는데도 ‘다음 순서 아니냐’는 우려를 사고 있는 한국은 원전을 계속 짓는 정책, 특히 낡은 원전까지 수명을 연장하는 정책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위치한 월성 1호기의 모습. © 이정화

<한국탈핵>의 저자인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는 “원자력발전소를 많이 보유하면 보유할수록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도 높아진다”며 “한국은 다른 원자력 대국들에 비해 국토면적이 작아 원자력발전소 밀집도로는 세계 최고이기 때문에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피해도 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환경운동연합 원전특별위원회 서토덕 공동위원장은 설계 당시 ‘안전한 수명’으로 정해진 30년을 넘긴 노후 원전은 사고위험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자동차로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새 차는 고장이 잘 안나요. 10년, 20년 쓰면 고장이 자주 날 수밖에 없습니다. 기계에는 수명이란 것이 있기 때문에 노후 되면 고장이 나는 것이 당연한 거죠. 원전에는 200만개 이상의 부품이 있는데, 그걸 전부 교체하진 않습니다. 6만 5천 개의 용접 부위가 처음에는 튼튼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걸 사람이 일일이 점검할 수가 없어서 더 위험한 거죠.”

가장 낡은 원전부터 터진 후쿠시마

실제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원전안전운영정보시스템(OPIS) 공개 자료를 보면, 국내 최초로 지난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원전 1호기는 모두 130번의 사고·고장을 일으켰고, 월성 1호기도 83년부터 모두 53차례의 사고‧고장을 일으켰다. 특히 우리나라는 원전 안전관리에 대한 투명성이 매우 부족해 이런 사고와 고장이 상당부분 은폐돼 왔고, 가짜부품 납품과 뇌물수수 등 비리도 만연해 원전 운영 전반에 대한 신뢰성이 매우 낮다. 

서 위원장은 원전은 수많은 부품으로 이뤄진 기계이기 때문에 기계 자체가 완벽하지 않아 사고가 날 수 있고, 이것을 조작하는 사람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실수로 사고가 날 수 있고, 기후변화 등 예상치 못한 외부변수로 인해서도 사고가 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술적으로 조치가 돼 있으니 원전이 완벽하게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태도라는 것이다.  

김익중 교수는 그 중에서도 낡은 원전이 특히 위험하다는 것을 후쿠시마 사고가 이미 생생하게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원전 10개 중 30살 넘은 것만 정확히 골라서 터졌습니다. 30살을 넘기지 않은 것은 하나도 안 터졌어요. 노후원전이 위험하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겁니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중 노심용융과 수소폭발 등 사고가 난 것은 1~4호기다. 1호기는 1971년, 2호기는 1974년, 3호기는 1976년, 4호기는 1978년부터 가동을 시작했다. 모두 가동연수가 30년 이상 된 노후 원전이었다. 5, 6호기도 각각 1978년, 1979년에 가동을 시작했지만 정기검사로 발전이 정지된 상태여서 사고를 피했다고 한다. 

“30년 넘으면 다 닫아야 합니다. 핵 사고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에요.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고농도오염지역 넓이가 남한 넓이쯤 됩니다. 전 일본 국토의 20%가 고농도 위험지역이 된 거죠. 만일 한국에 핵사고가 나면 국토 전체가 고농도 오염지역이 됩니다. 살 수 없는 땅이 되는 거예요. 그런 엄청난 대형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제로냐, 절대 제로가 아닙니다. 후쿠시마 핵사고가 인류 마지막 핵사고냐, 절대 아니라는 겁니다."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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