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불패] 농촌지역청년포럼 ‘농촌에, 청년: 바람’

“귀촌하면 많은 분들이 농업에 사명감을 갖길 원합니다. 하지만 너무 어려운 문제입니다. 무엇보다 토지를 구할 수 없어요. 한 뙈기 땅이라도 구하려면 자본이 있어야 하는 거죠.”

전북 완주에서 지역마켓 셀러로 일하는 김다솜(25)씨는 일을 하며 자급자족하는 삶을 원해서 귀촌을 결심했지만, 농사지을 땅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충북 청주에 사는 강진호(31)씨도 “귀농하고 처음 2년 정도는 허송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실력이 미흡해 농사로는 적자를 봤고, 피자배달과 우유배달을 병행해야 했다. 농협 대출은 농지나 시설 보유에 50% 자부담 등의 조건을 내걸어 초기 자본이 없는 강씨가 받기에는 까다로웠다.

이처럼 많은 귀농•귀촌(이하 귀농촌)인들이 지역에 기반이 없고 교육 등 사전 준비가 부실해 어려움을 겪는다. 농촌으로 이주한 청년들의 어려움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논의한 제2회 농촌지역청년포럼 ‘농촌에, 청년: 바람’이 지난 2일 서울 은평구 녹번동 서울시청년허브에서 열렸다.

포럼을 주최한 삼선재단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5월까지 10개월간 귀농촌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고 <농촌으로 이주하는 청년층의 현실과 과제>라는 연구 보고서를 낸 바 있다. 이날 포럼은 삼선재단 손선숙 이사장의 인사말과 녹색사회연구소 박정운 연구원의 보고서 소개로 1부를 시작했다. 2부에서는 연사 8명이 ‘농촌과 청년 사이’를 좁히기 위한 노력과 경험을 공유했고, 3부에서는 참가자들이 자유로운 토론 시간을 가졌다.

▲ 녹색사회연구소 박정운 연구원이 <농촌으로 이주하는 청년층의 현실과 과제>라는 연구 보고서를 소개하고 있다. © 김영주

땅도 집도 돈도 없지만…

귀농촌 청년이 농촌에서 처음 맞닥뜨리는 문제는 ‘일을 구해 먹고 살기’의 어려움이다. 삼선재단 보고서에 따르면, 귀농촌한 청년 76명에게 정착하기까지 장애요인(중복응답)을 물었더니 ‘주거’(26명), ‘일자리’(25명), ‘농사기반과 자금’(15명) 순으로 답이 나왔다. 주거와 일자리는 지역 구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농촌의 공동체 기반이 사라지면서 귀농촌 청년이 농촌 마을과 ‘어색하고 불편한 동거’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박 연구원은 “귀농촌 청년에게 ‘비빌 언덕’을 마련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귀농촌한 청년 76명에게 정착하기까지 장애요인(중복응답)을 물었더니 ‘주거’(26명), ‘일자리’(25명), ‘농사기반과 자금’(15명) 순으로 답이 나왔다. © 삼선재단

지역과 청년은 서로에게 적응할 시간을 필요로 한다. ‘비빌 언덕’이란 이 과정을 지원해주는 사람이나 단체를 의미한다. 지역에서 청년들이 생활하고, 일하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정서적, 물질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주거와 교육에 도움을 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한 청년들의 배움과 성장, 정착 과정을 통해 지역과 청년은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농촌 지역에 젊은 귀농자를 많이 모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비슷한 또래가 모여야 행복하게 지낼 수 있죠. 순창의 귀농귀촌지원센터는 싱글 청년 5명이 1년간 거주할 공간을 제공해줄 거예요. 공적 자금으로 셰어하우스를 마련해서 농사를 짓는 주기인 1년간 청년끼리 지내는 겁니다. 내부자가 되어 실제로 버티고 살아봐야 각자 상황에 맞게 방법을 찾아갈 수 있거든요.”

2부에서 발표를 한 전북 순창 귀농귀촌지원센터 이수형(49)씨는 청년들이 지역에 기반을 잡기 위해 주거 공간을 지원하는 게 ‘비빌 언덕’의 첫째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삼선재단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귀농인의 집’ 등이 운영되고 있지만 장년층 귀농자가 매매계약을 하기 전 임시 거주공간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 청년에게 순번이 돌아가지 않고 있다.

청년들이 지역에 머물며 직접 창의적인 공간을 꾸밀 수 있게 하는 등의 대안이 필요하다. 그 일환으로, 순창 귀농귀촌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주월리 셰어하우스는 2015년 10월에 5~7명의 싱글 청년에게 1년동안 거주지를 제공한다. 순창의 ‘흙건축연구소 살림’은 시골 창고를 사들여 1인 또는 2인 주거 공간과 그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공간 등을 지을 계획이다. 또한, 생태적 재료를 활용해 직접 자기집을 짓는 건축교육도 한다.

▲ 2부 발표자들이 "귀농촌 청년이 ‘비빌 언덕’은 어떤 모습일까"에 대해 얘기했다. © 김영주

충남 홍성의 젊은협업농장에서 1년 6개월째 일하고 있는 구본경(21)씨는 ‘비빌 언덕’으로 교육을 중요하게 꼽았다. 홍성의 젊은협업농장은 땅과 자본이 없는 청년들에게 협업농장의 방식으로 농사일을 배울 수 있게 한다. 작년 3월부터 농장에 들어온 20대 귀농인들은 농장 일과를 오전에 끝내고, 오후에 자기계발 시간을 가진다고 한다.

"청년이 ‘비빌 언덕’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봤는데, 무엇보다 청년들이 직접 현장에 가서 공부하고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과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요. 젊은협업농장도 그 사례가 될 수 있죠. 오전에는 농장에서 일을 배우고, 오후에는 청년들에게 시간을 빼줘서 강의, 세미나, 공부 모임에 나가요. 유기농업 세미나, 생화학 공부모임, 한시와 인문학 공부 같은 걸 듣습니다. 청년의 성장이나 배움을 위해 도움을 주는 게 홍성군 홍동면과 장곡면의 특성이고 장점이에요.”

청년들의 배움과 경험을 넓힌다는 취지로 ‘해강산 프로젝트’도 시도했다. 삼선재단의 지원을 받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구해강(본명: 구본경)씨와 김강산(20)씨는 7주간 글쓰기, 17박18일 동남아 자전거 여행, 전시회를 경험하며 스스로 성장하고 지역과 만나게 됐다고 한다. 프로젝트 보고서는 “20대 초중반 귀농촌인은 배움에 대한 욕구가 높다”며 “(귀농촌으로 인해) 자신이 학습하고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면 불안을 느끼게 된다”고 지적했다. 20대 청년이 지역 기반 공동체에서 공부할 기회를 가짐으로써 지역에 뿌리를 보다 튼튼하게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을 댄 소비자에게 농산물로 갚는다

"농사는 어디에서나 지을 수 있지만, 그 모습은 달라요. 농사는 토착적이라는 특징을 가집니다. 해남에 살면 해남의 농사를 짓고, 해남의 노래를 부르고, 도구나 기계를 다루는 방식과 삶의 방식까지도 해남식이에요. 그 중 어떤 것을 선택하고 살아갈지는 귀농촌 청년 각자가 설계하고 만들어가면 좋겠어요.”

정혜성(38)씨가 활동하는 해남 미세마을에서는 이전 세대가 만든 물적 토대 위에서 ‘청년 스스로가 운영하는 배움터’를 지향한다. 올 가을에 시작될 ‘나의 시골살이 디자인 학교’도 이전 세대에게 증여받은 땅을 토대로 청년들이 각자 방식으로 자립해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홍성 젊은협업농장의 정민철(49)씨도 “농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농업을 기초로 하는 문화와 전통을 가진 촌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라면서도 “젊은이들이 촌의 문화와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각자 재량을 농업에 결합시켜 문화, 교육, 유통, 가공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직업을 만들라는 의미다. 정씨는 “농업을 배우더라도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땅과 돈과 가족이 없는 청년들은 어쩔 수 없이 협업을 선택하고, 산업적 농업을 사회적 농업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고민할 수 있다.

▲ 2부 발표가 이어졌다. 귀농촌 청년들은 지역의 농적 토대 위에서 '창직'(創職)에 도전하고 있다. © 김영주

농사펀드를 운영하는 박종범(36)씨는 ’창직’(創職)의 대표적 사례다. 박씨는 농업 분야에서 ‘농촌기획자’라는 새로운 직업을 만들었다. 그는 2003년부터 농촌체험마을 사업계획서를 만들고 컨설팅을 도왔다. 회사를 그만둔 뒤, 그는 “도시에 사는 사람이 안전한 먹거리를 먹으려면 농부가 별다른 고민 없이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2013년에 농사펀드를 창업했다.

농산물은 가격 변동이 심하고 자연재해에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농부들의 벌이가 불안정하다. 농산물을 팔아서는 대출을 갚지 못해서 신용불량자가 되는 농부도 많다. 농부들이 농약을 뿌리는 이유도 시장에서 팔리는 농산물을 만들기 위해서다. 반면 농사펀드는 도-농 네트워크를 만들어 자금 문제를 해결했다. 도시 사람들이 소액투자로 영농자금을 모으고, 농부는 돈이 아닌 농산물로 되갚는 식이다. 농부는 벼를 심는 순간 판매가 끝나고, 도시 사람들은 안전한 먹거리를 받을 수 있다.

▲ 농사펀드는 도-농 네트워크를 만들어 농사 자금 문제를 해결했다. 도시 사람들이 소액투자로 영농자금을 모으고, 농부는 돈이 아닌 농산물로 되갚는 식이다. © MBC뉴스 화면갈무리

농촌, 사회적 가치를 찾는 가능성의 공간

청년들은 환경과 이웃 관계를 위해 농촌을 찾는다. 그렇지만 농촌의 현실은 만만치 않다. 정기석이 쓴 <농부의 나라>에 따르면, 귀농촌에 실패한 넷 중 셋은 일자리 부족, 낮은 소득 등 먹고 사는 문제에 부딪혀 도시나 타 농어촌지역으로 재이동했다.

그렇지만 시선을 ‘시장’에서 ‘사회’로 이동하면, 농촌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공간이 된다. 논산시청 임경수 사회경제정책관은 “청년들이 농촌에 오더라도 다시 시장구조로 돌아가면 도시 생활과 다르지 않다”면서 “농촌에서 꿈꿨던 생활과 가치를 지키려면 사회적, 공공적 가치를 실현하며 지역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북 완주에 있는 ‘지리산문화공간 토닥’에서 마을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조양호(43)씨도 “농촌에서는 관계를 통해 자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리산문화공간 토닥’을 찾았던 여성분 얘기예요. 그분은 완주에서 7박8일 수다를 떨고 또래와 함께 지냈어요. 다시 서울로 가려니까 문득 원룸에 혼자 있을 게 떠올라 눈물이 난다는 거예요. 서울에서 지낼 때 불안을 자극하는 요소는 관계의 문제입니다. 청년들은 관계를 꿈꾸며 농촌으로 와요. 그런데 주거공간을 옮긴다고 불안이 해결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농촌이 도시보다 자립하기 좋은 조건을 갖춘 건 분명합니다. 자원과 사람, 즉 관계가 있어야 자립이 가능합니다. 모든 먹는 걸 스스로 생산하는 게 아니라, 농부 형님과 친하게 지내면서 내가 부족한 건 받아야죠. 농촌에서 세대간 순환을 만들어갔으면 해요.”

이번 포럼은 청년과 농촌이 공존해나가는 가능성을 발견했던 장이다. 지역은 청년에게 삶의 기반과 농업의 기반을 마련해준다. 청년은 농촌의 다양한 삶의 방식과 미래를 만들어간다. 정기석은 <농부의 나라>에서 “귀농촌인은 지역사회 발전을 견인하는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는 매개가 된다”고 봤다. 귀농촌 청년의 먹고 사는 문제를 지역과 정부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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