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제천서 청년사업 이끄는 ‘바싹’ 정보경 대표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신조어가 쏟아진다. 달관세대(돈벌이나 출세에 무관심한 20대)니,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청년층)니 이름을 붙이고는 측은하다는 눈빛을 보낸다. 그리고는 ‘더 노력하라’ 혹은 ‘투표를 하라’, ‘정치에 참여하라’는 등의 처방을 내놓는다. 기성세대의 이런 뻔한 충고와는 다른 방향으로 ‘청년 스스로가 해법을 찾자’고 나서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충북 제천에서 청년단체 ‘바싹’을 운영 중인 정보경(29) 대표도 그 중 하나다. 지난 5월 30일 충북 제천시 의림동 바싹 사무실에서 정 대표를 만났다.

▲ 카메라를 들이대자 정보경 대표가 쑥스러워하고 있다. ⓒ 김이향

지역 청년들이 지역에 애착 가질 수 있도록 

“노인, 아동, 장애인, 다문화 가족 등 취약계층을 위한 다양한 정책이 만들어지는데 청년은 왜 소외됐을까? 우리가 법을 제정해 보자.”

정 대표가 청년단체를 만들게 된 것은 작은 의문에서 비롯됐다. 지난 2010년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 김난도의 강연을 듣기 위해 서울과 청주 중 어디로 갈지 고민하던 그는 ‘왜 제천에는 강연을 오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제천에 청년이 없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제천 인구가 서울이나 청주에 비해 훨씬 적은 것도 사실이지만 청년들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대신 떠날 궁리를 더 많이 하기 때문에 청년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제천서 나서 자랐고, 자영업을 하며 정착한 정 대표는 다른 청년들도 고향에 애정을 갖고 머무를 수 있도록 든든한 언덕을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

그는 친구인 안채윤(29) 부대표와 함께 ‘바른 청년을 싹 틔운다’는 의미로 지난 2013년 11월 청년단체 ‘바싹’을 창립했다. 첫 사업은 청년을 위한 법을 제정하는 데 필요한 강의를 듣는 청년정책개발아카데미 ‘청년비행기’였다. 지난해 1월부터 3개월 간 제천에 사는 청년 12명이 모여 다준다 청년정치연구소 이동학 소장(現새정치민주연합 청년 혁신위원), 새누리당 충북도당 윤홍창부대변인(現충청북도의회 위원장)등 총 6명의 강사진으로부터 강의를 들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끝난 후 청년들은 법을 제정하는 게 만만치 않은 일임을 알게 됐고 시도하기도 전에 지쳐버렸다.

‘바싹스러운’ 방법으로 ‘반값 결혼’ 기획 

몇 날 며칠의 회의 끝에 회원들은 ‘청년답고 바싹스러운 방향으로 가자’고 결론을 내렸다. 거창한입법 활동에 앞서 재미있고 흥미로운 기획을 통해 청년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자는 취지였다. 그 결과로 ‘우리 반값에 결혼함, 우리반함’이 기획됐다. 우리 반함은 경제적 이유로 결혼을 포기하는 삼포세대를 실질적으로 돕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함, 예물, 예단 등 불필요한 혼례비용을 줄여 경제적 부담을 덜고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하게 살도록 축하하는 결혼의 본질적 의미를 살리자는 것이다.

▲ 우리 반값에 결혼함 1회 포스터. ⓒ 바싹 카페 갈무리

금전문제로 고민중인 젊은 커플, 장애로 인해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부부 등을 대상으로 지난해 10월 사연을 공모해 2쌍을 선정했다. 지역 결혼식장과 웨딩숍 등을 대상으로 협찬과 재능기부를 부탁했다. 취지에 공감하고 협력을 약속하는 곳도 있었지만 차갑게 거절하는 업체도 있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몇 번씩 찾아가 설득했다. 결과는 성공. 제천시내 서울관광호텔에서 보통의 결혼식에 조금도 손색 없는 예식을 올릴 수 있었다. 신혼부부들은 일반 예식비용의 반값만 내고 풍성한 축복 속에 의미 있는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청년이 직접 만든 일자리 ‘세마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일자리 창출을 외칠 게 아니라 청년들이 직접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세상의 마음을 여는 디자인, ‘세마디’를 창업했죠.”

바싹은 충청북도의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에 공모해 디자인회사 세마디를 올해 5월 개업했다. 주 사업은 광고(시각)디자인, 제품(산업)디자인, 공공디자인 제작판매인데, 장애인을 대상으로 디자인 기술을 교육하고 수료생을 정직원으로 채용해 청년장애인 일자리창출에 기여한다는 목표도 갖고 있다. 세마디의 근로계약서 중 3조 ‘근로시간, 휴게시간 및 휴일휴가’ 규정에는 “애인과 헤어졌을 시 이틀간의 잠적을 허용한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는 단계라 직원이 4명뿐이지만 ‘우리 일자리는 우리가 직접 만든다’는 패기와 발랄함이 넘치고 있다고 한다.

“말끔한 얼굴로 만나서 회의를 하고 나면 수염이 자라고 주름까지 생긴 채 헤어집니다.”

정 대표를 포함한 바싹의 회원 대부분은 직장인 혹은 자영업자다. 세마디 창업을 포함해 바싹이 기획 중이거나 추진 중인 사업이 꽤 있어서 퇴근 후 저녁 8시쯤 시작한 회의는 새벽 2~3시가 돼서 끝나기 일쑤다. 논의되는 사안은 50명 넘는 회원들이 다 동의해야 다음 주제로 넘어갈 수 있다. 처음 바싹을 만들었을 때는 알음알음으로 회원을 초청하고 ‘삼고초려’도 했지만 요즘은 가입 희망자를 대상으로 지원서를 받고 면접을 볼 정도가 됐다. 면접에서는 바싹이 가진 문제의식과 정신을 공유할 수 있는지 살핀다고 한다.

이렇게 지역 청년들의 관심이 커진 것은 그동안 청년비행기, 반값 결혼식 등 각종 행사를 통해 바싹의 가치가 알려지고 일일 스탠딩클럽 ‘싹’(일일 유흥클럽) 등 재미있는 이벤트로 관심도 모은 덕분이라고 한다.

“행복을 느낄 새가 없어요. 청년한테 즐거울 시간이 어디 있나요?”

바싹 활동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 행복하냐는 질문에 대한 정 대표의 반응은 의외였다. 두 번의 인터뷰 때 마다 눈이 충혈돼 있던 그는 “기획한 사업이 무사히 끝나더라도 또 다른 할 일이 있기 때문에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잠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피곤함을 감추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바싹이 하는 사업에 대한 긍정적 사고는 잃지 않았다. 정기적인 행사로 자리 잡은 반값 결혼식과 세마디 사업을 정착시키는 게 최우선 관심사라는 그는 “지역 청년들에게 항상 관심을 갖고 그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어깨를 툭툭 두드려줄 수 있는 단체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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