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이름’

▲ 이정화 기자

“정화? 촌스러운 이름이네. 우리 세대나 쓰던 이름인데.” 난생처음 듣는 말이었다. 촌스럽다니. 십만 원이나 들여 유명한 작명소에서 음양오행에 맞게 지은 이름인데…… 중학교 3학년 때 친구 어머니가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한 말이었다. 집에 처음 놀러 온 딸 친구에게 하는 말 치곤 고약했다. 연예인 김정화, 엄정화도 있는데. 아, 그 사람들은 나이가 좀 있던가? 머리가 복잡했다. 그 말은 두고두고 나를 괴롭혔다. 개명을 해야 하나?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내 이름에 대한 호불호조차 없었다. 이름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던데.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없을 때, 그 밖에도 쓰라린 실패를 했을 때 문득 개명을 생각했다.

내 이름을 ‘촌스럽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름에도 유행이 있기 때문이다. KBS 2TV에서 방송하는 육아 예능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나오는 이휘재의 쌍둥이 아들 이름은 서언, 서준이다. 이것도 요즘 신생아 작명의 유행을 반영한 것이다. 해마다 대법원에서는 신생아 출생신고에 가장 많이 쓰이는 이름을 정리해서 발표하는데, 작년 남자 이름 1위는 서언이고 여자는 서연이다. 연예인 예명으로 쓰일 법한 이름이 신생아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원빈, 현빈, 김우빈 등 연예인들이 인터넷 소설에나 많이 등장하는 예명을 쓰고, 신생아 이름을 연예인 예명에 버금갈 만큼 세련되게 짓는 이유는 같다. 외모와 함께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이름이 사람의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정당이 개혁을 외치며 수시로 당명을 바꾸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대부분 독자들은 신문을 볼 때 큰 제목만 읽고 넘어간다. 그만큼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언론의 명명은 중요하다. ⓒ Pixabay

그래서 작명은 중요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 ‘꽃’에서 명명은 대상을 의미 있는 존재로 탈바꿈하는 행위다. 명명 행위가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기자 최경영도 <9시의 거짓말>에서 언론의 객관보도에는 상징조작이 숨어있다고 지적한다. 사건을 분석하는 데 쓰이는 단어가 사건에 대한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이다. 모호한 단어 사용이나 현실적인 문제를 피해 가는 지칭은 일종의 물타기다. 예를 들면 종합부동산세를 ‘세금 폭탄’으로 표현해 종부세와 관계없는 서민들이 세금 폭탄을 맞을 것처럼 몰아가 무산시킨 것도 언론의 상징조작이다. IMF 당시 ‘대량 해고’를 경영자 입장을 반영한 ‘구조조정’으로 표현해 사태의 심각성을 축소한 것도 상징조작이다.

면전에서 이름을 ‘촌스럽다’고 말한 것은 개인의 ‘교양 없음’ 정도로 치부되지만, 언론의 상징조작이 미치는 파장은 범사회적이다. 사실을 왜곡해 잘못된 여론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제목은 내용을 규정하고, 이름은 이미지를 만든다. 언론의 명명은 여론을 만들고, 잘못된 상징조작은 여론을 왜곡한다. 빌 코바치는 ‘저널리즘의 원칙’에서 사람들이 단순히 무지하다거나 다른 사람들은 모든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생각은 신화라고 지적한다. 대부분 독자들은 큰 제목만 읽고 넘어간다. 그만큼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언론의 명명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개인의 이름은 ‘촌스럽다, 세련되다’로 품평할 수 있지만, 언론의 상징조작은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옳고 그름으로 판단돼야 하는 이유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제6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에서 우수작으로 뽑힌 이 글을 쓴 이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1학년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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