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 우수 권숙희

▲ 권숙희
얼마 전 탤런트 김효진 씨가 앞으로 모피옷를 입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패션모델 출신인 그다. 김씨는 5년 전부터 채식도 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아는 대다수 채식주의자들이 채식을 시작한 계기는 제러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을 읽고부터다.

‘모피를 입지 않겠다’는 말이나 ‘난 고기 안 먹는데’라는 식 의사 표명은, 사실 그 행위 자체보다 그 말이 가져오는 불편함 때문에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개성을 별로 존중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다같이 회식하러 가는데 ‘저 고기 못 먹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눈총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타인의 기호를 배려하기는커녕 주문할 때 메뉴를 통일하는 ‘조직’을 얼마나 숱하게 봐 왔던가. 물론 누구에겐 고기를 먹지 않는 것 자체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이해한다.

개성도 무시 받기 일쑤이니 사상과 신념을 드러내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자본주의에 반대한다든지, 페미니즘을 주창한다든지 하는 일들 말이다. 우리 사회의 융화는 내 것을 자유롭게 꺼내놓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숨김으로써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한 인간의 사상과 신념은 그것이 ‘말’에 한정될 때 타인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실천’으로 이어지는 사상과 신념은 100m 거리에서는 존경 받을지언정, 50cm 옆에서는 불편한 요소이다. 너와 나의 생각과 이상은 ‘술자리 안주’로만 유효했던 건 아닐까?

나도 그랬다. 두루뭉술한 사람들이 좋았다. 자리를 어색하고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은 호감이 가지 않았다. 여성차별은 만날 욕하면서도, 생활 속 남녀평등을 실현하려 하는 사람들은 페미니스트 기질이 있다며, 불편해하고 ‘너무 나댄다’는 식의 반응을 보여왔다. ‘언행일치(言行一致)’, 즉 말과 행동의 일치는 그 자체가 어렵다기보다 나처럼 그들을 고깝게 보는 인간들이 지천에 깔렸기 때문에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여러 사회문제에도 마찬가지 원인이 있다. 부패사건이 끊이지 않는 원인을 보자. 기본적으로 인간의 탐욕이 문제지만 더 문제인 것은 ‘내가 굳이 혼자 고고한 척하며 관례를 깨야 할까’라는 의식이다. ‘어차피 인간은 혼자 사는 게 아니다’라는 자기합리화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타성 말이다. ‘원칙주의자’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때로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김효진 씨는 그걸 다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갈까? 그마저도 그가 개성 넘치고 제멋대로인 것이 다소 용납되는 ‘스타’이기 때문에 가능한 건 아닐까? 보통사람에겐 여전히 ‘언행일치’가 최고의 덕목이 아니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겐 ‘눈치’가 유력한 보신책이다. 50cm 안에서는 맞장구나 잘 치면 되는 세상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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