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세계 곳곳의 ‘다른 삶’에 주목한 여행작가 박준

1997년, 인도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청년이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태국 방콕에 내렸다. 당시 그가 방콕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이라곤 전 세계 배낭여행자들이 몰려든다는 ‘카오산 로드’의 이름뿐이었다. 밤늦은 시간 낯선 곳을 찾아가는 게 겁나 국제공항에서 두 시간을 서성거렸다. 그러다 용기를 내 택시를 타고 찾아 간 카오산 로드는 새벽 세시가 넘었는데도 대낮같이 환했고 수많은 외국인의 에너지로 활기에 넘쳤다.

8년 뒤인 2005년, 그는 카오산 로드를 찾은 각국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펴냈다. 여행서로서는 드물게 10만 부가 팔린 <온 더 로드>는 저자 박준(48)을 여행작가로 만들어 주었다. 이후 그는 <책여행책>(2010) 등 네 권의 책을 출간했고 방송의 여행프로그램에서 해설을 맡는 등 활동 폭을 넓혀왔다.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이야기를 담은 <책여행책>과 비슷한 개념으로 영화 속으로 떠나는 여행이야기, 그림 속으로 떠나는 여행이야기도 준비 중이다. 지난 6월 2일 경기도 파주 인근의 한 북카페에서 박 작가를 만나 여행에 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

여행으로 삶을 채워가는 남자의 ‘온 더 로드’

“수많은 여행책 중 <온 더 로드>가 인기를 모은 비결이요? 아마 평범한 사람도 떠날 수 있다는 희망에 많은 독자가 반응한 것 같습니다.”

▲ 경기도 파주출판단지에 위치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 여행작가 박준을 만났다. ⓒ 박주현

우리나라에서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건 30년이 채 되지 않는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했던 그는 1994년 스물일곱에 처음으로 호주 시드니를 여행했다. 그 뒤 그에게 여행은 곧 삶이 되었다. 한때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시간을 여행과 책 쓰기에 쏟아 붓고 있다.

박 작가의 책은 제각기 다른 삶의 방식에 주목한다. <온 더 로드> 이후 펴낸 <네 멋대로 행복하라>(2007), <언제나 써바이 써바이>(2008)는 각각 미국 뉴욕과 캄보디아에 살고 있는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캄보디아어로 ‘행복하다, 즐겁다’의 뜻을 가진 ‘써바이’는 캄보디아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한 한국인 간호사의 마음을 표현한다. 국내 대학병원에서 일하던 그녀는 정신없이 시간에 쫓기는 삶 속에서  ‘내가 싫어하는 모습으로 변하는 나’를 견딜 수 없어 훌쩍 떠나왔다. <온 더 로드>의 배낭여행자 중에는 운영하던 제과점을 정리하고 인도와 네팔 등 동남아시아 국가로 결혼 30주년 여행을 떠난 50대 부부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모두 저마다 다른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은 사람들이다.

“모든 사람이 한 가지 길로 갈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삶이 달리기라면 선두에 있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 행복할 겁니다. 자기를 잃어버리기가 너무 쉬워요.”

그는 이메일의 프로필명으로 본명 대신 ‘여행은 삶’을 쓴다. 소박함, 자유로움 속에서도 자신을 지키는 삶을 추구하며, ‘언젠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채워 나가는 것’이란 의미로 여행과 삶을 동일시한다고 말한다. 여행 경험을 통해 그는 또한 자신의 삶을 확장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겨울 방영된 한국교육방송(EBS)의 <세계테마기행> 태국 편에는 큐레이터로 출연했다. 태국 최고의 오지 마을인 ‘레똥쿠’를 찾아가 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카메라에 담긴 따뜻한 미소의 사람들’이라고 소개했다. <책여행책>의 서문에서 그는 “여행자로서만이 아니라 창조자로 살고 싶다”고 밝혔다. 여행으로 삶을 채우며 자신을 알아가고, 삶의 가능성을 넓혀가려 한다.

늘 낯선 길에 서 있기를 바라다

그는 여행하며 늘 다른 세상을 꿈꾼다고 말했다. 낯선 길에 서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최근 그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준 곳은 아프리카다. 지난 3월 남아프리카항공(South African Airways)의 초대로 아시아 8개국 기자, 작가와 함께 남아프리카공화국, 잠비아, 보츠와나 등 3개국을 일주일간 취재하는 일정에 참여했다. 해외 취재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는 체류를 연장해 개인 여행의 기회를 만드는데, 이번에도 공식 일정이 끝난 뒤 3주 동안 혼자 따로 여행을 했다.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독일식 건축양식이 남아 있어 '아프리카의 독일'로 불리는 나미비아의 스와코프문드와 '아프리카의 유럽'으로 불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 등을 둘러봤다.

▲ 오렌지빛 사구로 유명한 나미브 사막 ⓒ 박준

그를 압도한 것은 ‘오렌지 사막’으로 유명한 나미브 사막이었다. 게리프(Gariep)강을 타고 내려온 퇴적물이 해안가에 쌓였다가 바람에 실려 내륙으로 이동하는 동안, 모래 속 철분이 산화돼 붉은 색을 띤다. 그 모래가 쌓여 오렌지빛의 아름다운 사구(모래언덕)를 만든다. 그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사구 위에 올라가 붉은 바다가 넘실거리는 듯한 장관을 보았다고 한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모습이었다”고 회고하는 그의 눈이 반짝였다.

“붉은 사막의 장엄한 풍광만큼 기억나는 건, 사막에는 ‘사막의 질서’가 있다는 점이었어요. 사막은 척박한 땅이거나 죽음의 땅이 아니에요. 숱한 생명이 사막에서 살아가요. 그 중 어느 생명에게 사막은 파라다이스일 수 있어요.”

그는 등에 조그만 돌기들이 나 있는 나미비아 딱정벌레 사진을 보여주었다. ‘안개 딱정벌레’로도 불리는데, 안개와 자신의 몸을 이용해 사막에서 생존하는 법을 익혔기 때문이라고 한다. 딱정벌레는 아침마다 대서양을 향해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몸을 둥글게 만든다. 아침 사막의 자욱한 안개가 0.5~1mm 간격으로 울퉁불퉁하게 난 돌기에 내려앉고, 물이 맺힌다. 안개 딱정벌레는 돌기를 타고 내려온 물을 마시며 비가 내리지 않는 사막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 생존환경이 다르기에 딱정벌레는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은 것이다.

▲ 자신의 몸에 난 돌기를 이용해 사막에서 살아남은 ‘안개 딱정벌레' ⓒ 박준

지구를 온몸으로 느끼고파 ‘바이크 세계일주’ 궁리

“바이크로 세계일주하는 걸 궁리하고 있어요. 아직 계획을 세웠다곤 할 수 없는 수준이에요. 하지만 언젠가 이루고 싶은 꿈이죠. 비행기, 또는 차로 간단히 이동하는 길을 온몸으로 달려보고 싶은 거죠. 지구의 크기가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 제 몸으로 느껴보고 싶어요.”

앞으로 그가 채워갈 삶에는 ‘바이크 세계 일주’가 포함될 모양이다. 라오스나 태국 북부 같은 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며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했다는 그는 “깊은 산 속에서 인적 드문 길 위로 바람을 쌩쌩 맞으며 달리는 게 참 좋았다”고 말했다. 작년에는 태국 북부의 매홍손에서 치앙마이를 거쳐 치앙라이까지 451킬로미터(km) 정도 산길을 달렸다. 누적 주행거리가 50만km를 넘을 정도로 낡은 스쿠터를 빌려탔지만 다행히 여행 내내 고장이나 사고는 없었다고 한다. 그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땅을 몸으로 체험하기 위해 바이크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유럽으로, 아프리카에서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을 달리는 여행을 구상하고 있다.

▲ 바이크를 타면 온몸으로 길을 느낄 수 있다. 여행작가 박준은 바이크로 이동하는 세계일주를 꿈꾼다. ⓒ 박주현

독신인 그는 “어쩌면 2, 3년 뒤에 외국에서 작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가 세계 어디에서 살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시아, 아프리카 등 지구촌 어디서 만나도 사람의 본질은 같다”며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찍은 소녀들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심각한 빈부격차로 강도 등 범죄가 잦아 ‘걸을 수 없는 길’이 정해져 있는 요하네스버그였지만 그곳에도 세련된 분위기의 작은 카페가 있는 안전한 거리는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학생들은 그와 눈이 마주치자 해맑은 미소와 친절을 보여주었다.

그는 여행작가를 꿈꾸거나 자기만의 여행기를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남과 다른 시선으로 남과 다른 여행을 할 것”을 조언했다. 인터넷 등에 넘쳐나는 과다한 정보가 여행의 방식을 획일화 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 좋은 글은 독자가 알아 줄 것이지만, 알아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진정성’이 담긴 글을 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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