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국 민주화 관련 국제보도, 양 적고 늦고 편향돼
취재시스템 관건…<인디펜던트>는 30년 중동특파원

막스 베버가 1910년 가을 제1차 독일사회학자대회에서 신문 분석 테제를 발표하면서 신문의 내용 분석은 사회를 읽는 단서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딱 백 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 살고 있는 대중은 신문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특히 국제 뉴스는 면수가 적은데다 이념에 따른 취사선택의 폭이 좁고 취재 시스템에도 문제가 많아 한국 신문만 보면 세상 돌아가는 것을 온전히 알 수 없다. 최근 튀니지·이집트·리비아 등의 민주화 또는 노동운동과 삼호주얼리호 피랍사건은 한국 언론의 국제보도가 어떤 문제점들을 안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첫째, 미국·중국·일본 등 강대국 중심의 보도 관행에 빠져 후진국 관련 기사를 소홀히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한겨레>로 한정해 튀니지 사태 보도를 뒤돌아보면, 첫 기사인 ‘‘고실업·고물가’에 북아프리카 분노 폭발’이 나간 것은 한국언론 중에서는 그래도 이른 1월11일이었는데, 1판(제주)에만 실리고 아예 기사가 빠졌다. 13일 ‘튀니지 고실업에 성난 시위대, 관공서·은행 공격’ 기사는 6판(서울)에만 실렸다.

대부분 지방 독자들이 첫 기사를 대한 날은 15일이었다. 그간 경과를 모르다가 난데없이 ‘튀니지 대통령 항복선언’이라는 기사가 실린 것이다. 지난해 12월27일 한 청년의 분신으로 촉발된 시위가 그동안 경찰 발포로 66명이 숨질 정도로 격렬했지만 19일 만에 나간 기사였다. 밤 당직시간에 많이 들어오는 아프리카·중동·유럽발 주요 외신들을 다음날 지방판에서 빠뜨리는 것은 지방 독자들을 무시하는 처사다.

국제면은 지면 수가 적을 뿐 아니라 지면 배치에서도 뉴스면 중 거의 맨 뒤로 밀려 홀대를 받고 있고, 미·중·일 관련 기사가 아니면 종합면에 나가는 경우도 드물다. 권위지인 <가디언>은 국제면(International) 수가 정치·사회 기사를 합친 국내면(National) 수와 비슷하고, <르몽드>는 국제면을 종합면 바로 다음에 배치해 놓았다. 종합면의 최대 단골도 국제뉴스여서, 시시콜콜한 정치인 동정 등 정치기사로 과점되는 우리 신문들과 대조된다. 아랍세계의 정치사회적 격변이 국제면을 벗어나 1면으로 나온 것은 사태 발생 한 달이 가까운 1월25일이었다.

둘째, 한국의 보수/진보 신문들은 이념적 성향에 따라 뉴스를 취사선택하는 폭이 매우 좁다는 점이다. 저널리즘스쿨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대개 집에서 보아온 신문이 무엇이냐에 따라 같은 사안에 대한 시각이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국제뉴스를 예로 들어 좀 심하게 말하면, 보수신문만 보면 유럽과 중남미에 다 우파정권이 들어서 있고, 진보신문만 보면 다 좌파정권이 들어서 있는 줄 안다. 이념적으로 가까운 정파가 정권을 탈환하면 크게 보도하고, 반대의 경우 기사를 소홀히 취급하는 한국 신문의 전통 탓이다. 요즘 복지논쟁에서도 유럽국가의 복지현실을 보도하는 보수/진보 매체, 특히 <동아일보>와 <한겨레>의 기획기사들을 비교해보면 마치 딴 나라를 소개하고 있는 느낌을 줄 만큼 딴판이다.  

셋째, 서방의 이해와 시각을 반영한 보도가 주류를 이룬다는 점이다. 큰 국제뉴스가 터지면 대부분 한국 신문과 방송들은 서방 언론사의 보도 내용을 그대로 받아 내보내기에 바쁘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LA 타임스> 등 권위지들도 이라크전을 부추긴 데서 알 수 있듯이 아랍국 보도에 관한 한 공정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들 신문은 자본의 뿌리가 유대계이고, 중동문제 주요 논객인 토머스 프리드먼, 윌리엄 새파이어 등도 모두 유대인이다. <폭스TV> 등 수많은 언론사를 소유하고 있는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도 그렇지만, 래리 킹, 여성 방송인 인기 1위인 케이티 커릭 등 미국 언론계 스타 중에는 유대인이 엄청나게 많다. 미국 언론계는 상당 부분 유대인들의 손 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랍권의 대표적 위성방송인 <알자지라>는 이집트 사태에 대한 미국 언론의 편향 보도를 다시 기사로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 언론은, 결국 오보가 됐지만, 시위 사태를 비관적으로 전망했고, 시위 사태가 미국과 서방사회에 미칠 영향만 집중적으로 보도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한국 언론은 미국 언론에 의존해 보도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이집트로 간 한국 기자들도 반정부/친정부 시위대의 충돌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언론이 ‘친정부’라고 명명한 ‘관제 시위대’의 정체를 밝혀보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한겨레>는 그나마 서방 언론의 시각에서 벗어나 시위를 시민혁명 차원으로 보려는 노력을 어느 정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튀니지 시민혁명’ 주변국 민주화 불 지피나’(1월17일) 등 여러 분석기사가 돋보였다. 그러나 그 기사에서 튀니지 사태가 주변국으로 번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 것은 빗나갔다. 그 이유로 인근 국가들이 “튀니지와 달리 군과 경찰이 정권에 충성하고 있거나 풍부한 석유자원을 바탕으로 국민들을 달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실업과 저임금 등 절박한 생존의 문제로 시작된 노동운동의 저력을 과소평가한 듯하다.

넷째, 아랍국의 독재권력을 존속시키는 데 기여한 외부요인의 분석이 미흡하다는 점이다. 서방 언론들은 미국 등 강대국들이 석유를 싼값에 공급받기 위해 독재권력과 결탁해온 부분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미국 책임론에 대해서는 <한겨레>가 집중적으로 분석기사를 내보낼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소말리아 해적을 보는 시각도 그렇다. 해적은 근절돼야겠지만, 강대국과 유엔의 공인 아래 이뤄지는 무자비한 소탕작전에는 강대국의 역사적 과오에 대한 반성이 결여돼 있다. 군벌에 무기를 대줘 중앙정부를 무력하게 만든 것은 미국과 소련이었다. 무정부 상태의 소말리아 해역에 선진국들은 산업폐기물을 무단투기하고 고기를 남획했다. 우리나라도 한 다리 끼어들었다. 해적은 애초 바다를 지키는 어민들의 자경단 비슷한 조직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한국 언론은 삼호주얼리호 선원 구출작전에서 많은 사상자가 났는데도 해적과 영웅의 이분법으로 자축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해적'이 소말리아에서는 '영웅'시 되는 소말리아 현실에 대해 기자들이 사실 전달은 해야 되는 것 아닌가? <한겨레>는 그나마 좀 자제했으나 초기 보도들은 영웅들의 무용담으로 흘렀다.

다섯째, 국제보도와 관련한 한국 언론의 이런 문제들은 취재 시스템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 많다. 아프리카나 중동 특파원을 두고 있는 신문사가 전무한 게 한국 언론의 현실이다. 중동문제에 정통한 <인디펜던트>의 로버트 피스크 기자는 중동 주재 30년이 넘었다. 이번에 오바마 대통령의 이집트 특사가 무바라크를 변호한 법률회사의 변호사였다는 사실을 폭로한 것도 그였다. 루퍼트 머독이 인수한 <더 타임스>에서 쫓겨난 기자들이 우리사주 형태로 설립한 <인디펜던트>는 <한겨레>보다 부수가 적고 자본도 영세하지만, 피스크 말고도 패트릭 코크번 등 국제문제 전문기자들의 활약이 대단해 전세계 신문이 늘 인용하는 매체가 됐다.

<한겨레>는 처음에 아랍국 관련 기사를 주로 써온 기자를 이집트에 특파했다가 시위가 소강상태에 빠졌다고 생각했는지 철수시키고 영국에서 연수중인 기자를 현지로 보냈다. 갑자기 투입돼 전문성은커녕 말도 잘 안 통하고 인맥도 없고 길조차 모르는 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한겨레>는 현재 미국·중국·일본에 특파원을 두고 있는데, 그것이 그들 나라에 대한 기사 편중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사실 영향력이 줄어든 일본에 특파원을 상주시킬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일본은 취재 거리가 있을 때 서울에 ‘상주’하는 분야별 전문기자들을 보내면 어쩌면 더 좋은 기사를 쓸 수도 있는 곳이다.

<한겨레>라면 파리 특파원을 부활하는 것보다 중동에 특파원을 상주시키고 유럽을 함께 커버하게 하는 것이 남다른 지면을 만드는 데 유리할 듯하다. 사실 유럽과 미국, 일본 등은 인터넷상에 정보가 넘치는 곳이어서 검색만 잘 하면 한국에서도 탁월한 시각의 기사를 작성할 수 있는 곳이다. 세계에서 임대료와 물가가 가장 비싼 곳들에 특파원을 두고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일을 한다면 재검토해볼 문제이다. 중동은 비용도 훨씬 적게 들지만 그래도 그게 문제라면 제3세계 국가의 진보매체들과 기사교류 협정을 맺거나 현지 교민을 섭외해 통신원으로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특파원은 언어장벽이 없어야 하니 신입기자 채용도 특파원 운용과 연계돼야 한다.

네트워크가 중시되는 정보사회에서 <한겨레>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세계의 권위지들은 하나같이 세계뉴스 취재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다. <한겨레>가 적어도 한국 언론 중에서는 세상을 내다보는 데 가장 맑고 균형 잡힌 창문 구실을 해주길 기대한다.


* 이 기사는 <한겨레>와 동시에 실리지만. 일부 내용이 보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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