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토크] 억지 교훈 대신 코미디다운 접근법 상큼

조선시대에 탐정이 있었다면?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은 ‘개혁을 꿈꾼 왕’ 정조가 공납비리 사건의 전말을 캐기 위해 몰래 탐정을 파견한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명탐정(김명민 분)은 비리의 배후로 의심되는 임 판서(이재용 분)집안의 열녀 감찰 명목으로 적성(경기도 파주)으로 떠난다. 영화는 이런 추리극의 얼개에 코미디를 버무린 ‘퓨전’ 사극이다.

2003년 <황산벌>에서 2011년 <방자전>까지, 한국영화계에는 사극코미디 행렬이 이어졌다. 게다가 살인범을 ‘추리’하는 <궁녀(2007)>와 <혈의 누(2005)>도 있었으니, 추리사극 장르가 낯선 것도 아니다. 하지만 탐정을 주인공으로 한 ‘본격 추리사극 코미디’는 이 영화가 처음일 것이다. <조선명탐정>은 개봉 24일 만인 19일 누적 관객 수 4백만 명을 돌파했다. 완전 새롭진 않지만 ‘신선한’ 이 영화, 과연 그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2% 부족한’ 명탐정과 ‘눈치백단’ 개장수 콤비

이 영화의 원작은 김탁환의 소설 ‘열녀문의 비밀’이다. 하지만 원작자가 당대의 실학자 정약용을 마음에 두고 ‘진지한’ 명탐정을 그린 반면 영화 속 명탐정은 ‘허당’과 ‘예리함’을 정신없이 오가는 인물이다. 게다가 탐정이 오해로 옥에 갇혔을 때 만난 뒤 그의 조수로 맹활약하게 된 개장수 서필(오달수 분)은 한 술 더 뜨는 코믹 캐릭터.

명탐정은 포졸을 매수하기 위해 ‘김상궁의 은밀한 매력’ 책을 내밀고, 공납비리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한 객주(한지민 분)의 미모에 놀라 “완전 예쁘십니다"며 ‘멍 때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죽은 사또의 뒷머리에서 대침을 찾아내고, 거기에 각시투구꽃 독이 묻어 있다는 것을 단서로 사건이 적성 지역과 관련 있음을 추리해 내는 날카로움도 발휘한다.

개장수 서필은 한 객주의 집 지하에서 마주친 사나운 개를 현장에서 조련해 명탐정을 위험에서 구해내고, 옥에서 개구멍을 찾아내 탈출하는 등 기상천외한 재치와 기지를 보여준다. 허를 찌르는 그의 맹활약에 객석에선 감탄과 웃음이 터져 나온다.

▲ 영화 <조선명탐정>의 한 장면. ⓒ조선명탐정

두 캐릭터는 영화 <셜록 홈즈>의 두 주인공 홈즈와 왓슨처럼 서로를 긴밀하게 보완하면서 유쾌하게 어울린다. 이 두 캐릭터는 김석윤 감독의 작품이다. KBS 예능국 피디(PD)시절 <올드미스 다이어리> <개그콘서트> 등을 만들었고, 영화 <올드미스 다이어리>로 데뷔한 김 피디는 <불멸의 이순신> <하얀 거탑> <베토벤 바이러스>의 연기파 배우 김명민을 ‘촐싹거리는’ 명탐정으로 180도 바꿔 놓았다. 코미디의 달인 오달수와 ‘안면 바꾼’ 김명민이 보여주는 슬랩스틱(몸연기)과 최신 유행어의 향연은 ‘사극은 진지하고 지루하지 않을까’하는 편견을 가차 없이 깨준다.

웃겨도 추리물은 역시 추리물!

그러나 순간의 개그가 보는 내내 재미를 주긴 어렵다. 코미디 영화의 핵심도 결국은 스토리다. 이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성공적이다. 지방 사또들의 연속된 죽음, 과부가 된 며느리의 자결을 둘러싼 의문, ‘남편을 뒤따른 열녀’로 포장하려는 시부모의 음모 등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건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처음엔 별개의 사건들로 보였는데 후반부로 가면서 점점 하나의 그림으로 짜여진다. 사건은 좀처럼 미궁에서 헤어나지 못하지만, 그럴수록 결말에 대한 관객들의 궁금증이 커진다.

영화는 관객들이 각자 탐정이 되어 추리하도록 친절하게 단서를 제공한다. 사당을 다시 지은 흔적, 괴력을 가진 미스터리한 남자, 중간 중간 등장하는 천주교도의 모습 등에서 관객은 명탐정과 함께 퍼즐 조각들을 맞춰 나가게 된다. 이제 더 이상 코믹한 장면이 등장하지 않아도 관객들은 결말을 예측하는 재미로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

물론 구성상의 허점도 없지 않다. 2시간 분량에 여러 사건을 녹여내다 보니 설득력이 부족한 장면들도 등장한다. 공납비리의 배후세력들이 명탐정을 바로 죽일 수 있던 상황에서 굳이 산으로 끌고 올라가다 놓쳐버리는 것이 한 예다. 또 위기의 순간에 노비들이 목숨을 바쳐 탐정을 구하는 장면도 ‘왜 그랬을까’에 대한 설명이 충분치 않았다. 마지막의 갑작스런 반전도 다소 억지스러웠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가 하나로 연결되고 사건의 전모가 드러날 때, 관객들은 약간의 허술함 쯤이야 용서할 수 있다는 마음이 된다. 완벽한 추리물도 아니고 코미디 영화인데 그 정도면 나름대로 탄탄한 얘기였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와이어에 매달려 DSLR로 잡아낸 생생한 표정

▲와이어에 매달려 있는 카메라 감독. ⓒ조선명탐정
이 영화는 ‘디테일’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명탐정과 서필이 쫓기는 장면은 그럴 듯한 할리우드 액션물의 장면들에 견줄 만 했고, 명탐정이 곡식가루로 가득 찬 민가에 불을 붙여 폭파시키는 장면도 현실감 있었다. 장남철 촬영감독이 와이어에 매달려 직접 디지털일안반사 카메라(DSLR)로 배우들의 표정과 동작을 담았다고 하는데, 그래선지 역동적이고 생생한 화면이 지루해질 틈을 주지 않는다. 코믹한 상황과 배꼽 잡는 대사에 박장대소하다 다음 순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추격전에 빠져드는 재미가 있다. 게다가 컴퓨터 그래픽을 동원한 화면은 화려하기까지 하다.

▲ 영화 <평양성>의 포스터. ⓒ평양성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평양성>이 사극 코미디로서 라이벌 구도를 만들었지만, <조선명탐정>이 한 수 위 반응을 끌어 낸 것은 무엇보다 ‘코미디’에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평양성>은 인기를 모았던 <황산벌>의 속편 격인데다 정진영, 황정민 등 스타들이 총 출동해 기대를 모았지만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정치적 메시지와 작위적 결말 때문에 혹평을 받고 있다. 코미디가 너무 ‘교훈’과 ‘의미’를 강조할 때 관객들은 불편해 할 수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조선명탐정>은 수위를 잘 조절했다. 영화에는 공납 비리를 통해 현실의 부조리를 풍자하려는 의도도 살짝 드러나고 신분차별 없는 세상에 대한 메시지도 언급되지만 ‘딱 거기까지’다. 명탐정이 당시 금지된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는 걸 약점 잡은 임 판서가 비리의 전모가 드러난 뒤 보복으로 왕에게 세례자 명단을 보냈을 때, 그 책이 어느 새 ‘김상궁의 은밀한 매력’으로 뒤바뀐 부분에서 관객들은 코미디의 진수를 만끽한다. 영화 후반부 내내 교훈적 대화가 이어지는 <평양성>과 달리 <조선명탐정>은 관객을 가르치려 하지 않고 즐겁게 해주는 데 더 힘을 쏟았다. ‘코미디는 코미디답게’ 접근하는 자세가 판정승을 거둔 셈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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