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프로젝트 ‘미-루어볼’

지난 4일 저녁 6시, 서울 시민청 지하 2층 바스락 홀에서 사회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의미의 '미-루어볼(美-루어볼)'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미-루어볼'은 나 자신을 거울(mirror)을 통해 찬찬히 '이미 알려진 것으로써 다른 것을 비추어 헤아려(미루다)' 보자는 뜻이다. 프로젝트는 대학생 비영리단체 아트앤쉐어링(ART & SHARING)이 기획했다. 아트앤쉐어링은 문화예술에 접근하기 어려운 소외계층부터 문화예술의 가치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이 문화 예술을 더 넓고 깊게 누릴 수 있도록 나눔 활동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단체로, 문화예술에 관심이 있는 다양한 전공의 대학생 181명이 모여 2009년부터 지난 3월까지 모두 63개의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실행해 왔다.

▲ 지난 4일, 서울 시민청에서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해 생각해보는 프로젝트 '미-루어볼'이 진행됐다. ⓒ 유수빈

"거기 있는 당신, 충분히 예뻐요."

이날 '미-루어볼 프로젝트는 연극과 밴드 공연, 초상화 그리기 행사로 꾸려졌다. 연극은 주인공의 심경을 진솔하게 보여주는 모놀로그 형식으로 화장하지 않는 여자의 민낯에 대한 타인의 시선, 외모가 예쁜 친구와 함께 다니면서 알게 모르게 느꼈던 소외감, 살을 빼고, 피부 관리를 하는 것과 같이 외모를 꾸밈으로써 자존감을 회복한 경우 등 대학생들의 일상 속에 깊이 스며든 외모지상주의를 극화해 보여주었다.

"내가 날씬해지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대우도 달라지지 않을까?" 연극 속 주인공은 거울 앞에 마주 서 그 안에 비친 자신에게 묻는다. 질문의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래, 이젠 살을 빼고 더 예뻐져야지." 주인공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 타인들의 눈에 더 날씬하고 예쁘게 보여야 한다며 스스로 강요한다. 그리고 극 속의 주인공은 관객들에게 또 한 번 질문을 던진다. "다들 이런 경험 있으시죠? 거울 속의 내가 왠지 더 뚱뚱해 보이고 더 못 생겨 보이는 그런 경험이요." 관객석 곳곳에서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이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관객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 연극의 주인공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가 외모를 꾸미는 것이 순수하게 제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는지, 남들의 시선과 기준에 인정받기 위함은 아니었는지. ⓒ 유수빈

극 사이에는 인디밴드 체리팩토리가 상상밴드의 '피너츠송', 유미의 '별', 김종국의 '사랑스러워' 등 외모나 자존감에 관한 노래를 극 내용에 맞춰 개사해 불렀다. 특히, "난 내 모습대로 살고 싶어, 나는 나니까." 앳된 목소리의 보컬이 피너츠송을 흥겹게 부를 땐 관객들이 박수를 치며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공연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사랑스럽다'는 노래 가사와 함께 남의 기준에 갇히기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주인공의 메시지로 막을 내렸다. "거기 있는 당신, 충분히 예뻐요."

우리 일상 속 외모 지상주의

공연은 이성 친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고, 익명의 인터넷 공간에서 다른 사람의 외모를 평가하는 것과 같은 개인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솔직하게 담았다. 외모지상주의가 사회문제이기도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손채은 공연예술팀장(22·한국외대)은 외모지상주의를 주제로 프로젝트를 기획한 이유에 대해 “우리의 관심사에 주목해 프로젝트를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외모지상주의라는 게 갈수록 심화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대학생들과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나도 예쁜 연예인을 보면 다이어트를 하고 싶고, 더 예뻐지고 싶다. 세상은 점점 더 완벽을 추구하는 사회가 되어 가니까"라는 손 팀장의 고백처럼 우리는 외모지상주의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손 팀장은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해봤을 사소하고도 중요한 ‘외모’에 대해 공연 프로젝트를 통해 찬찬히 미루어 봄으로써 관객들이 궁극적으로 개인의 자존감과 삶의 만족도를 높이기를 기대한다"며 "타인의 잣대로 자신을 평가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프로젝트의 기대효과를 덧붙였다.

연극 공연에 참여한 배우 김민성(29) 씨는 "외모지상주의에 관한 극을 준비하면서 나를 비롯해 우리 사회가 생각했던 것보다 외모지상주의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구나"를 느꼈다며 "보이는 것만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자기한테 어울리는 옷과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개성을 많이 중시하는 분위기를 보면 예쁜 것만을 추구하는 외모지상주의 인식이 이미 많이 바뀌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보이는 것 너머를 바라보기

공연 전후로 진행된 '분위기 초상화' 그리기 프로그램은 준비해둔 대기석이 부족할 만큼 많은 관객이 참여했다. 초상화를 인물과 똑같이 그려주는 것이 아니라 아티스트들이 관객과 대화를 나누며 주인공이 가진 고유한 분위기를 담아준다는 점에서 참신하고 독특했다. 분위기 초상화 프로그램에 참여한 송유경(22, 이화여대) 씨는 "제 분위기를 그린 그림을 받았는데, 색달랐어요. 통통한 볼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걸 오히려 귀엽게 그려준 초상화를 보면서 통통한 볼이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감도 생겼다"며 "분위기 초상화를 통해 스스로 자신을 새롭게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 개인의 고유한 분위기를 그려주는 분위기 초상화 프로그램은 참여자들의 호응이 좋았다. ⓒ 유수빈

친구 소개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초상화 아티스트 박지민(21, 이화여대) 씨는 분위기 초상화를 "세세하게 그리기보다 최대한 인상을 단순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보통 캐리커처라고 하면 보이는 대로 그리거나 외모적인 특징을 과장해서 그리기 마련인데, 인물의 분위기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까 그 사람의 분위기를 보려고 노력하게 되고 외모지상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며 프로그램에 참여한 소감을 밝혔다. 5분 남짓 걸려 그려진 자신의 분위기 초상화를 받은 사람들은 밝은 표정으로 한 손에 초상화 엽서를 들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미-루어볼' 프로젝트는 외모지상주의가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지 못하는 특정 대상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보이는 것에 자유롭지 못한 우리가 모두 겪고 있는 문제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렇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분위기 초상화가 상징하듯 보이는 것 너머의 것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드러난 사실이 항상 진실은 아니니까. 살아가는 일 자체가 예쁜 것만으로 채워지지 않고 때론 힘든 길을 걸으며 누더기와 거친 음식으로 견뎌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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