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아들과 함께 지구촌 여행하는 오소희 작가

누군가와 함께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는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체력과 취향이 다른 일행이 함께 움직이다 보면 이런저런 갈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행 중에 아주 어린 아이가 있다면? 예상치 못한 장애물에 부닥칠 수 있는 여정에서 무거운 배낭 하나가 늘어나는 것 이상으로 부담스런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작가 오소희(45)씨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 오중빈(14)군이 36개월 됐을 무렵부터 중동, 아프리카, 남미 등으로 단둘이 여행을 다녔다. 그리고 <그러므로 떠남은 언제나 옳다> 등 5권의 여행기를 썼다. 중빈군도 남미여행기 <그라시아스, 행복한 사람들>를 펴내, 대한출판문화협회의 ‘2013 올해의 청소년 도서’로 뽑히는 영예를 안았다. 이들 모자는 어떤 생각으로 이리 남다른 길을 걸었을까. 지난 5월 27일 인천시 구월동 롯데백화점 인천점의 한 식당에서 만난 오 작가는 단어 하나하나에 열정을 실어 자신과 아들의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교실 대신 ‘여행이라는 학교’에서 공부한 아들

“선생님께 ’남미라는 학교를 더 다녀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했죠. 물론 중빈이가 학교를 빠지게 돼서 곱셈을 배워야 할 때 못 배울 수도 있어요. 그런데 여행을 하면 인문학적인 경험이 쌓여요. 그렇게 쌓인 경험들이 나중에 곱셈을 배우기에 무리가 없도록 도움을 주죠.”

만 세 살 때 시작된 엄마와의 여행은 중빈 군이 학교에 들어가서도 계속됐다. 2010년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중빈이 남미여행을 가게 됐을 때, 여름 방학 한 달로는 모자라 2달 결석을 해야 했다. 오 작가는 담임교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이를 ‘남미라는 학교’에 데려갔다.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는 것은 여행을 통해 체험하는 것과 밀도가 다르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회사원인 남편(46)도 여행을 좋아하고, 길 위에서 얻는 가르침을 알기 때문에 모자의 여행을 지지해주었다.

오 작가는 여행을 시작할 때부터 ‘멋지고 좋은 걸 보여 주겠다며 애 손을 잡아끌지는 않겠다’고 작정했다. 좋은 여행을 계획하고 충실하게 실천하면 아이는 저절로 배운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는 아이들을 억지로 학원에 보내놓고 ‘비싼 학원이니 성적을 올려야 한다’고 강요하는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교육 태도에 대한 비판이 깔려있다. 부모 스스로 좋은 삶을 살면 자식은 그것을 보고 배운다는 마음 자세로 아들과의 여행에 나섰다는 것이다.

▲ 부모가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여행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하는 오소희 작가. ⓒ 이지민

오 작가의 여행기에서 아들 중빈은 또래보다 의젓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만 세 살짜리 꼬마가 터키의 주택가 골목길에서 현지 아이들과 공을 차는 동안 엄마는 "곧 오겠다"고 하고 동네 산책에 나선다. 누군가는 무책임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오 작가는 어릴 때부터 아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했고 서로 간에 믿음이 견고했다고 말했다. ‘중빈이가 저기에서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데 황당한 곳으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사람’을 얻은 소중한 시간 

한 번 떠나면 몇 달씩 걸리는 세계 여행을 여러 차례 했으니 돈이 꽤 많이 들지 않았을까. 오 작가는 “주로 제 3세계 나라를 여행했기 때문에 생활비는 오히려 한국보다 적게 들었다”고 웃으며 답했다. 처음 터키 여행의 경우 1달에 10만원씩 1년 반을 저축해 비행기 값을 마련했다고 한다. 그가 굳이 불안정하고 위험성도 높은 제 3세계를 고집하는 이유는 “여행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예측 불가능한 만남과 인연이기 때문”이라고. 지난 3월 인도네시아 발리 우붓의 한 고아원에 봉사활동차 갔을 때는 마지막 날 아이들이 오 작가와 중빈의 이름 알파벳 첫 자를 새긴 케이크를 직접 만들어 주었다. 선물같이 다가온 뭉클함, 모자가 ‘사람 여행’을 계속하는 이유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도 수첩에 그림을 그리거나 마임, 손가락 등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마음을 주고받는다.

“선진국에 가면 해야 할 것들이 정해져 있어요. 박물관이 몇 시에 열고 몇 시에 닫는지 체크하고 구획된 스케줄 속으로 들어가는 거죠. 제 3세계는 아무 계획 없이 비행기 표만 끊어서, 지도만 보고 ‘여기 여기 이쯤 가면 좋지 않을까’ 얼개만 가지고 가도 돼요. 그 이유는 도착하자마자 그곳에서 뜻하지 않은 만남과 에피소드가 생기기 때문이에요. 질서와 구획 밖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언제나 변수가 있어요. 그런 변수를 기대하면서 가는 거죠.”

오 작가가 처음부터 ‘사람 여행’의 매력을 알았던 건 아니다. 24살 때 한 달 동안 미국 여행을 할 당시 그녀는 ‘유치하고 수준 낮은 대학생’이었다고 한다. 생각보다 볼 게 없어서 실망하고, 남자들의 추파에 어찌할 줄 모르며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중빈과 함께 제 3세계를 다닐 때는 달랐다. 현재와 ‘나’ 대신 미래와 아이를 생각하게 됐다. 나눔에 대해서 의미를 깨닫고, 그때부터 ‘사람 여행’을 하게 됐다. 저개발국의 치안이나 위생 문제 등 불편함은 어느새 사소한 요소가 되어 있었다.

아프리카 여행 중 오 작가는 길 위에서 칼을 들고 “돈 없느냐”고 묻는 청년을 만난 일이 있다고 한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하지만 침착하게 생각하니 그곳 원주민들에게 칼은 과일 껍질을 깎을 때, 머리를 긁을 때 쓰는 필수품이었다. 당당하게 “싫다, 내가 왜?”라고 물으니 청년은 부끄러운 듯 웃으며 그녀와 아들을 지나쳐 갔다. 아프리카에서는 예방약을 먹고 갔어도 아들이 말라리아 모기에 물릴까봐 걱정이 됐다. 비상시에 쓸 약을 지니고 다니며 최대한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주의했고, 무사히 여행을 마쳤다. 하지만 힘든 순간도 있었다.

“청결도라든가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 같은 것에 좌절하진 않아요. 저를 좌절시키는 건 ‘사람’이에요. 친구라는 이름으로 관계 맺고 정을 나누는 경우가 물론 많죠. 하지만 ‘돈 많은 나라에서 누가 왔구나, 어떻게 해볼까’ 하는 경우도 있어요. 당연히 배신감을 느껴요. 돈지갑 취급을 연달아서 받게 되면 힘이 들죠.” 

우간다의 서남쪽, 르완다의 접경지역 부뇨니에서 오 작가가 자원봉사를 할 고아원을 찾고 있을 때였다. 그녀에게 접근한 남자는 후원을 요구하며 통장을 보여줬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외국에서 송금된 돈이 모두 당일 인출되어 있었다. 고아원 운영이 아니라 갈취를 하는 남자였다. 이렇게 흑심을 품고 접근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참담함을 느끼지만, 창밖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과 또 다른 고마운 인연 등으로 치유 받으며 오 작가는 슬럼프에서 빠져나왔다고 한다.

세월호 상처의 치유를 희망하며 소설도 출간

오 작가는 지금까지 14권의 책을 냈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한동안 직장생활을 하다 아이를 낳은 후 전업 작가로 돌아섰다. 아이와 함께 한 터키여행을 토대로 낸 책이 첫 작품이었고, 지난 5월에는 첫 소설 <해나가 있던 자리>를 출판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희망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한다. 7살 아들 재인을 돌연사로 잃은 주인공 해나가 피폐한 일상을 보내다 무작정 적도 근처의 나라로 떠난 뒤 구두닦이 소년부터 다리 없는 탐험가까지 여러 인연을 만나고, 결국 마음의 병을 치료한다는 내용이다.

▲ 지난 5월 출간한 오소희 씨의 첫 소설 <해나가 있던 자리>. ⓒ 북하우스

“세월호 참사 당시 우리 모두가 너무 힘들었잖아요. 유족분들의 마음이야 헤아릴 길 없는 것이고. 상식과 선의를 갖고 열심히 살아가던 대부분의 사람에게 구제할 길 없이 죄책감을 심어줬던 것 같아요. 모두가 죄인으로 연루됐고요. 그래서 저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에게 치유가 필요했어요.”

오 작가는 우리 사회가 국내총생산(GDP) 같은 지표를 내세우며 성장을 위한 경쟁에 몰두하는 동안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 안전은 희생됐고, 국민의 행복지수는 높아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사회를 ‘경쟁’과 ‘피로감’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끊임없이 ‘더 가, 더 가’라는 채찍질을 받으며 잠시도 고삐를 놓아서는 안 되는 레이스에 모두가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콜롬비아 보고타 국립대 앞에서는 오후 4시쯤 되면 여학생들이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남학생들에게 추파를 던져요. 남학생들 역시 눈빛을 보내기에 바쁘죠. 교문 앞에 늘어선 카페에선 데시벨 높은 클럽 음악이 나오고요.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스펙 쌓기로 찌들어 가는 동안 콜롬비아 학생들은 매일 축제를 즐기는 거죠. 단순히 유희를 즐기는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가슴 뛰는 일, 열정과 욕망을 유예하는 데 한국 청년들은 너무 익숙해져 있어요. 다른 나라 시각에서 보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경쟁에 매몰되어 있는 거죠.”

오 작가는 사회가 아이들에게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상처를 주는 현실을 개선하지 못해 어른으로서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청년들이 ‘내가 태어난 곳이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지금 이 상황에서 꿈꿀 수 없다고 해서 자신을 방기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경쟁’과 ‘피로감’에 찌든 이 사회 바깥에 다른 세계와 다른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오 작가와 중빈은 지구촌 여행과 책 쓰기를 계속할 예정이라고 한다.

▲ 오소희 작가는 펜을 드는 사람으로서 사회를 ‘관(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 이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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