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농업이슈] 이재덕 경향신문 기자
주제: 농업 농촌, 무엇이 기사인가

“강의한다기보다 여러분들을 제 동지로 만들 욕심이 커서 온 겁니다.”

<경향신문>에서 농업농촌 분야에 특히 관심이 많은 이재덕 기자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농업농촌문제세미나’에서 ‘농업∙농촌, 무엇이 기사인가’라는 발제를 하면서 농업∙농촌 문제를 제대로 다룰 기자가 많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외면하는 언론, 소외되는 농촌 

이 기자는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에서 대산농촌전문기자양성과정을 함께 이수한 뒤 경향신문에 입사해 농업 등 경제전문기자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불과 4년차 기자인데도 삼성언론상을 두 차례나 받았다. 후배들 앞에 선 때문인지 약간 긴장한 듯하더니 이내 또렷한 목소리로 강의를 이어갔다.

▲ 이재덕 기자가 후배들 앞에서 자기 소개를 하고 있다. ⓒ 서혜미

그는 "젊은 농림부 출입기자들도 대개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해양수산부, 국토교통부를 함께 출입하기 때문에 농림부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경제정책의 본산인 기획재정부에서 기사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독자적으로 농업 문제를 취재하기보다는 시간이 날 때나 쓰게 되므로 기사도 일회성에 그치고 만다. 경제∙문화∙정치전문기자는 많지만 농업전문기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이유다. 취재원도 대개 공무원들이라 특종이 나오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재덕 기자는 농업•농촌 분야를 ‘기사 아이템의 보고’라고 말했다. 굵직한 이슈들이 많기 때문이다. 식량주권, 쌀개방, FTA(자유무역협정)과 TPP(환태평양협정) 체결, 구제역과 AI(조류독감), 농산물 값 폭등•폭락 등이 있다. 최근에는 종자, 협동조합, 지역축제 관련 기사가 주목받고 있다.

누구를 위한 ‘종자전쟁’인가

최근 주목받은 흥미로운 기사는 종자주권을 다룬 것이다. IMF 구제금융위기 이후 한국의 많은 종묘회사들이 외국에 팔렸다. 흥농종묘, 중앙종묘 등 내로라하는 종묘회사가 외국기업에 넘어갔다. 한국에서 개발한 청양고추 종자도 이때 미국 기업 몬산토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종묘회사에서 개량한 종자는 키워서 씨를 받아 심으면 그 특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청양고추의 경우 고추가 쭈글쭈글해지거나 쉽게 병이 든다. 농사를 지을 때마다 매번 사야 하고, 살 때마다 로열티를 지급해야 한다. 2013년 기준으로 한국이 종자를 수입하는 데 쓴 돈은 1억3,195만 달러다. 같은 해 종자무역수지 적자는 9,017만 달러다.

정부는 최근 중요성을 깨닫고 종자산업을 2020년까지 육성하려는 '골든 시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파프리카 씨앗 1g이 금 1g보다 비싼 것처럼, 금보다 비싼 종자를 개발해 수출하겠다는 것이다. 2014년 9월에는 외국회사에 팔릴 뻔했던 한국 종묘회사 농우바이오도 농협이 인수했다.

“종자주권을 위해 전쟁을 방불케 하는 싸움을 벌입니다. 그런데 과연 누구를 위한 종자전쟁이냐는 거죠. 기업을 위한 종자전쟁이라는 겁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면도 좀 봐야 한다는 겁니다. 국내기업과 몬산토, 오릭스같은 해외기업만의 프레임이 아니라 농민과 소비자와 기업 간의 프레임도 같이 봐야 합니다.”

▲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이재덕 기자가 나눠준 자료들을 읽고 있다. ⓒ 문중현

농민 주체성을 보장해야 농민이 행복하다

이재덕 기자가 기사를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농민들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는 농협 개혁을 주제로 한 자신의 기사를 보여주며 현재 지역농협은 농민들이 가격과 생산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고 말했다. 주요 결정과정에 농민들이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역농협 조합장들은 대부분 전문성을 갖춘 사람보다는 지역 유지가 많다. 이들이 조합장 선거에서 당선되고 난 뒤 농협의 핵심 업무인 농산물 유통보다 부동산 담보대출 같은 사업에 열을 올린다. 핵심 업무에 충실하지 못한 농협 때문에 조합원인 농민이 고통받는다.

“결국 농업 이슈를 농민들의 주체성 측면에서 바라봤으면 좋겠다는 얘깁니다. 그동안 농업기사를 쓰면서 떠올린 것은 ‘우리 사회가 농민들의 주체성을 담보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가’입니다. 농촌이 그런 곳이 돼야 농민들이 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는 지역농협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며 현대 사회에서 왜 농업이 중요한지를 힘주어 말했다. 농업은 시민이 조직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되고 나아가 민주주의의 기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독일 프라이부르크 재생에너지 마을에서 핵발전소 설립 반대 운동을 주도한 포도 농가를 취재한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포도 농가를 중심으로 지역 주민이 반대 운동에 동참하였고 마침내 핵발전소 설립 계획이 무산되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 운동은 녹색당이 성장하는 토대가 된다. 농업을 중심으로 시민이 자기 삶을 결정하고 새로운 지방자치 모델을 만든 것이다. 그는 나아가 진정한 민주주의가 만들어 낼 인간의 얼굴을 한 성장에 대한 바람을 내비쳤다.

농민은 그들 얘기를 들어줄 기자를 갈망한다

이 기자는 마지막으로 ‘평소 어떻게 농업이슈에 관심을 두고 전문성을 쌓고 있는지’에 답했다. 그는 농민들을 많이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농업 전문가가 많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농민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얘기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다양한 모임에 참석해 농민들을 만난다. ‘취재를 왔다’고 하면 농민들은 그를 붙잡고 한 시간도 넘게 이야기할 정도로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농민들의 고충을 들으며 그는 농업 기사를 통해 어떻게 ‘농민들이 주체가 되는 농업’이라는 주제를 전달할지 고민한다고 했다.


[지역∙농업이슈]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기자•PD 지망생들에게 지역∙농업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개설한 [농업농촌문제세미나]와 [지역농업이슈보도실습] 강좌의 산물입니다. 대산농촌문화재단과 연계된 이 강좌는 농업경제학•농촌사회학 분야 학자, 농사꾼, 지역사회활동가 등이 참여해서 강의와 농촌현장실습 또는 탐사여행을 하고 이를 취재보도로 연결하는 신개념의 저널리즘스쿨 강좌입니다. 동행하는 지도교수는 기사의 틀을 함께 짜고 취재기법을 가르치고 데스크 구실을 합니다. <단비뉴스>는 이 기사들을 실어 지역∙농업문제에 대한 인식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편집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