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결국, 우리네 삶은 '더'해 가는 일

▲ 유수빈 기자

길이 끝나자 여행은 시작되었다. 우리네 삶도 그렇다. 지난해 종영한 한 드라마의 대사처럼 ‘눈앞에 닥친 문 하나를 온 힘을 다해 열고 넘어가면 이내 곧 또 다른 문 하나를 마주하는 일’이 바로 삶이다. 끝없이 뚜벅뚜벅 걸어가야만 하는 것, 그 안에서 나만의 문을 마주하고 차례차례 열고 넘어가 또 다른 문을 마주하는 일, 그를 통해 ‘나’의 본질과 가까워지는 과정이 바로 삶이다. 결국, 삶이란 나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나다움을 찾아간다는 것은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아가는 여정이다. 지금까지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세계의 욕망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하고 착각을 깨는 일이다. 나를 ‘더’ 깊이 바라보는 일이다. ‘더’ 깊어지기 위해 ‘더’ 노력하는 일이다. 결국, 우리네 삶은 ‘더’해 가는 일이다. ‘더’라는 것은 조금 ‘더’(more) 나아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은 채 꾸준함으로 ‘더’(plus)해 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 2013년 개봉한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월터'는 '더' 해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다움을 찾는다. © 20세기 폭스

삶은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고 매일 아침 꾸준히 운동장을 달리는 것이다. 운동장을 달리는 동안 나는 순수한 쾌감에 깊이 집중한다. 팔과 다리를 움직이며 느끼는 활기와 피부에 닿는 바람의 촉감이 얼마나 좋은지 깨닫는다. 내가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에 집중해 한 번 더, 또 한 번 더 꾸준히 해나가며 나의 세계를 확장해 나간다. 매일 달려도 늘 숨이 차듯 똑같은 상태로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느껴지더라도, 지금 하는 일이 의미 없는 반복인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뚜벅뚜벅 한 발, 또 한 발 나아간다. 꾸준히 달리며 멈추지 않고 뛸 수 있는 거리를 서서히 늘려간다. 어제의 나와 그제의 내가 분명히 다르다는 것과 ‘나는 분명히 달라지고 있다’는 믿음을 놓치지 않은 채.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나는 나의 세계를 더 공고하게 할 또 하나의 문과 마주하며, 나다움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가 있다. 나의 세계 앞엔 고유한 대상을 나타내는 정관사 ‘the’가 붙어 나를 수식한다. 결국, 삶은 나만의 고유한 세계 앞에 정관사 ‘the’를 붙여나가는 과정이다. ‘더할 나위 없었다!’ 지난해 화제였던 드라마 ‘미생’의 대사다. ‘더’할 나위 없다. 더할 것투성이인, 정규직 동기들에 비해 비루한 인턴 장그래에게 ‘더’할 것 없이 충분하다는 것은 엄청난 칭찬이었다. 그러나 그 벅찬 칭찬은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벅차게 행복했던 찰나가 지나고, 장그래는 좀 더 나아가기 위해 다시 또 뚜벅뚜벅 걸어야만 했다. 비단 장그래만의 일이 아니다.

길이 끝나면 여행은 또 시작된다. 삶은 그 길에서 좀 ‘더’ 나아가며, 나다움을 ‘더’해가는 과정이다. 그렇게 비로소 우리는 나만의 고유한(the) 그 끝없는 길을 꾸준히 걸어가며 오늘도 살아간다. 시시포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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