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세 개의 시선 ①

▲ 김영주 기자

정부가 정책을 밀실에서 결정하고 추진하는 일이 많아졌다. 정책의 시행 대상이 되는 국민이 알 권리를 요구해도 묵묵부답이다. 정보를 제공해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 의견을 대표해야 할 국가 본연의 역할을 저버렸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정책을 추진하는가?

6월 6일 오후 4시를 기준으로 메르스 확진 환자가 51명, 격리자수는 약 1,900명에 이른다. 메르스 초기 대응에서 질병관리본부는 첫 번째 환자의 메르스 확진 검사 요청을 거부하다 ‘메르스가 아닐 경우 검사를 요청한 병원 측이 책임진다’는 조건으로 검사를 해줬다. 그 과정에서 환자 가족이 “검사를 해주지 않으면 고위직 친인척에게 알리겠다”고 말한 것이 드러나 화제가 됐다. 질병관리본부가 기관 자체의 안위를 국민의 건강보다 우선시한 것이다. 이후 대응에서도 정부는 메르스 환자들이 다녀간 병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병원의 피해가 막대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병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국민의 건강 위협과 메르스에 대한 불안은 눈감아 버렸다.

▲ 질병관리본부가 기관의 안위를 우선시해 국민의 건강 위협에 대처하지 못했다. ⓒ KBS 화면 갈무리

지난 23일에는 워싱턴에서 론스타와 한국 정부 간의 투자자-국가 소송(ISD) 1차 심리가 끝났다. 법무부에 대한 심상정 의원의 질의에 따르면 론스타가 한국 정부에 피해 보상을 요구한 금액은 약 5조 1,000억 원에 이른다. 국민은 이 금액이 어떤 부분에 대한 피해 보상액인지 모른다. 금액도 추론일 뿐, 정확한 금액을 알 수 없다. 정부가 국제중재재판 관련 내용을 기밀에 부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피해 보상액과 내용, 1차 심리 과정과 증인 26명의 명단도 비밀로 했다. 국민의 세금을 거둬가면서 그 용도가 쓸모 있고 정당한지 확인할 수조차 없게 한 것이다.

정부가 투자자-국가 소송에서 패소한다면, 수많은 외국 기업이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한-벨기에 조세협정 등에 명시된 ‘이중과세 금지 원칙’에 따라 과세를 면제받을 수 있게 된다. 그동안 정부는 ISD 조항이 외국에 나간 한국 기업들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선전해왔다. 그러나 실상은 론스타와 같이 힘 있는 국제 금융 자본에 국민의 세금을 내주는 위험성을 키웠다. 정부는 최대 500억 원의 예산이 소송을 준비하는데 들어간다고 밝혔는데, 대부분은 소송을 담당하는 미국 변호사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한국의 1등 기업들을 키워주려다 더 많은 국민은 저버린 셈이다.

국가의 리더십은 개인과 개별 기관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국민을 국가의 경계 내에서 안전하게 보호하고, 국민의 의견을 반영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 국가가 국민을 위하려면 민주주의를 되찾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이 토론하고 의견을 모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국가는 국민의 의견을 대표해야 한다. 토론과 여론 수렴의 과정은 지금과 같이 형식적이어선 안 된다. 단 한 번 공청회를 열고 마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 다수 주민이 참여해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 국가의 입장을 설명하고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의견을 국가 정책에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논의가 내실 있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이 입을 수 있는 피해를 정확히 따져보기 위해 연구 용역을 파견하고, 조사 결과는 국민이 알 수 있도록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해서 정책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국민의 의견을 정부가 대표로 실행하는 것이 현대 사회에서 국가가 가져야 할 리더십의 올바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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