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연 '세명대 학부모 편지 전시회' …자식에게 책도 추천

“그 어떤 형용사라도 표현되지 않는 우리 이쁜이”, “우리 기둥 알부이(경북지방 방언으로 모든 걸 다 아는 사람이란 뜻).”
 
아들딸에게 대개 처음 써보는 편지에는 무한애정이 담겨있었다. 충북 제천 세명대 민송도서관 1층 로비에는 부모의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사연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민송도서관은 신입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자녀에게 보내는 편지를 공모했다. 학부모는 평소 자녀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와 추천하고 싶은 책을 편지에 적었다. 예상 외로 136명의 학부모가 참여했고 이 중 가려 뽑은 편지 48편이 전시되고 있다.
 

▲ 한 학생이 세명대 민송도서관 로비1층에서 전시회를 관람하고 있다. ⓒ 박주현

‘그때가 형이 초등학교 4학년, 현이가 2학년. 한참 사랑받고 돌봐줘야 하는 시기에 장사를 시작해서 걱정은 많이 되었지만 그래도 학교 앞에서 하는 거라 조금은 위안이 되었단다. 그런데 아침 시간 오후 시간 현이가 학교 가고 다녀오는 시간은 항상 엄마 아빠가 바쁜 시간이라 반겨 줄 수가 없었어. 지금도 눈에 선해. “엄마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하면서 가게 앞에 서 있는 너한테 “그래, 다녀와”라는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지. 그러면 너는 가게 앞에 서서 엄마가 고개 들고 너의 얼굴을 볼 때까지 소리를 지르며 “다녀오겠습니다”를 몇 번이고 외쳤어. 그제서야 “그래, 잘 다녀와” 하면 “네” 하고 돌아서는 너의 뒷모습을 볼 때 얼마나 마음 아프고 쓰린지. 바쁜 시간이 끝나고 나면 허망하고 무척이나 속상했었어.’
 

“일 바빠 등교하는 아들 인사도 못 받아준 게 가슴 아파”
 
임관현(공연영상학과)씨의 어머니 박명주(52·자영업)씨는 아들의 인사조차 받아주지 못한 그때를 떠올리면 목이 멘다. 박씨는 “제일 바쁜 시간에 아이가 학교 가니까 다른 아이에게는 친절하게 하면서 우리 아이에게는 대꾸도 못 했던 게 미안했다”고 한다. 박씨는 힘들고 고달플 때 읽으면 힘이 될 거라며 아들에게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추천했다.
 

▲ 임관헌씨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쓴 손편지. ⓒ 민송도서관


“나이 먹고 아이를 다 키우고 나니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상에 잠시 머문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나를 사랑하라’는 내용이 좋았어요. 이 책에 나온 것처럼 저 자신을 칭찬해주니 위로가 됐어요.”
 
박씨는 아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과 함께 사는 지혜를 배우길 바란다.
 
“‘길가에 휴지 버리면 안 돼’라고 하니까 항상 주머니에 휴지를 넣고 다니는 아이예요. 다른 사람에게도 ‘이러면 안 돼’라고 좋은 뜻으로 얘기해도 다른 사람이 꺼릴 수 있잖아요. 바로 지적하기보다는 말하기 전에 잠시 멈춰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편지를 받은 임씨는 “초등학생일 때 일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어 놀랐고 한편으로 미안했다”며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하고 효자 될 테니까 건강하게 계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식에게 보낸 첫 편지의 감동
 
우단비(한방바이오융합과학과)씨 어머니 강정아(44·자영업)씨는 우씨를 ‘단비’라는 이름보다 ‘알부이’라는 말로 더 자주 부른다. ‘알부이’는 경북지방 방언으로 ‘모든 걸 다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펄 벅의 <대지>를 추천했다.
 
“엄마는 이 책을 고교시절과 20대, 30대를 거치며 3번 정도 읽었단다. 읽을 때마다 다른 감동, 그리고 흐르는 시간만큼 또 다른 감동을 주는 책이란다. 하루하루가 빠르게 변화하는 요즘 단비 또래 아이들은 생소한 부분이 많을 거야. 빠르면서 간편하고 스마트하고 예쁜 것만 선호하는 것보다, 느려서 답답하지만, 투박해서 예쁘지 않지만, 엄마는 가끔 그런 시절로 다시금 돌아가고 싶을 때도 있단다. 그 시절만의, 흉내 낼 수 없는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매력이 있으니까.”
 
강씨는 “대지의 주인공 왕룽이 정직하게 땅에 대한 믿음을 지켰듯이 단비도 정직을 중요하게 여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딸에게 빨리 봄을 전해주고 싶었어요”
 
정현진(호텔경영학과)씨의 어머니 오정욱(49·보육업)씨는 편지와 함께 벚꽃 사진을 보냈다. 오씨는 딸이 전화로 “제천에는 봄이 왔는데도 앙상한 가지만 있다”고 말한 것이 안타까워 사진으로나마 벚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 정현진씨의 어머니가 편지와 함께 보낸 벚꽃 사진. ⓒ 민송도서관

 
“진아야! 세명의 전경은 어떤지? 아직도 거긴 추위가 가시지 않지? “엄마! 왜 이렇게 추워, 여기는 너무 추워” 하는 너의 목소리가 가슴을 메게 한단다. 남부의 포근하고 온화한 기온에 젖어있는 네가 적응하긴 다소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싶구나. 너를 세명에 보내주던 입학 전날, 이른 아침 출발해서 가는 그 길...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그 길... 산 넘고 물 건너고 또 산을 넘고 물을 건너고 오후 늦게야 도착한 낯설고 물 선 충북제천 세명대학교에 도착한 날은 눈발이 휘날리던 날이었지. 그래 그래, 정말 많이도 추웠다. 너무도 을씨년스런 제천이더구나. 그래도 학교 기숙사 입구에서 도와주던 선배들의 따뜻함이 좋았고 학교 안에 한방병원이 있다는 것이 자식을 둔 엄마로서는 가장 큰 위안이었단다.“
 
오씨는 편지를 보내고 나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했다.
 
“딸이 강하게 컸으면 하는데 편지를 읽고 (딸이) 마음 아프지는 않을까 걱정되고. 엄마가 (딸을) 항상 보고 싶어 하고 연연해 하는 게 들킨 것 같아 편지를 보낸 게 후회되기도 했어요.”
 
뜻밖에도 아버지 편지가 훨씬 더 많아
 
김식 민송도서관장은 “학생들이 남긴 메모를 분석해봤더니 취업보다 사랑과 우정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며 “부모님의 정을 확인할 수 있는 편지전시회를 연다면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전시회에 참여할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아버지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아버지가 보낸 편지가 96편으로 어머니가 보낸 40편보다 훨씬 많았다. 가장 많이 추천한 책은 김난도 교수가 지은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로 각각 4표를 받았다.
 
이번 전시를 관람한 허정민(사회복지학과)씨는 “요즘 맞벌이하는 부모님이 많아 편지 쓸 시간이 없을 텐데 정성이 대단하다”며 고등학생 시절 고민이 많을 때 김난도 교수의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를 읽으면서 힘을 얻었는데 마침 추천도서에 있어 반가웠다”고 말했다.
 

▲ 민송도서관은 학생에게 편지를 전달하며 부모가 추천한 책을 선물한다. ⓒ 박주현

세명대는 전시된 편지를 모아 <마음을 담은 책>이라는 제목으로 종이책과 전자책을 만들 예정이며, 만든 책은 인근 고등학교 도서관에도 배포한다. 지난 6일 시작된 이 행사는 26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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