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좌담] ‘전주 프로젝트: 삼인삼색 2015’

일시: 2015. 5. 10
장소: ‘전주 프로젝트: 삼인삼색’ 상영관
 
전주국제영화제는 올해 16회째를 맞이했다. 국고지원을 받는 영화제 중에서 유일하게 영화적 실험, 대안을 고민하는 영화제다. 매년 봄이 오면, 영화 팬들은 참신하고 실험적인 영화를 찾아 전주로 향한다. 천편일률적인 영화들이 넘쳐나는 요즘, 참신한 영화적 실험을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영화의 실험과 대안에 관한 고민을 담은 영화를 만나러 단비뉴스 기자 셋이 전주영화제에 다녀왔다. 
 
단비뉴스팀이 주목한 영화는 ‘전주 프로젝트: 삼인삼색’이다. 전주영화제 프로그램 중에서도 실험, 대안 모색이라는 특색을 가장 잘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디지털 삼인삼색 2014’였던 프로젝트 명칭을 올해는 ‘전주 프로젝트: 삼인삼색 2015’로 바꿨다. 모든 영화가 디지털로 제작되는 이때 퇴색한 ‘디지털’이란 수식을 떼어내고 프로젝트가 함축하고 있는 혁신 정신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기 위해서다.
 

▲ 왼쪽부터 <설행, 눈길을 걷다> 김희정 감독, <삼례> 이현정 감독, <엘 모비미엔토> 벤자민 나이슈탓 감독. ⓒ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올해는 알코올중독 남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설행, 눈길을 걷다>(감독 김희정)와, 고요하고 낯선 도시 삼례를 독특한 이미지로 포착한 <삼례>(감독 이현정), 독특한 영화적 실험을 보여준 <엘 모비미엔토>(감독 벤자민 나이스타트) 라는 세 가지 색깔을 담았다. 이 중 <설행, 눈길을 걷다>와 <삼례>에 집중해 좌담을 구성했다. 두 영화는 ‘시련을 통한 성장(Spiritual Growth through Suffering)’이라는 공통적인 메시지를 각각 서사와 이미지라는 다른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다. 둘 다 우리나라 감독이 제작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영화의 실험과 대안 또한 이야기해보기로 한다. <엘 모비미엔토>에 대한 단비뉴스팀의 좌담과 이현정 감독인터뷰 전문은 단비뉴스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설행>
아버지와의 작별, 또는 초극 의지

유수빈(이하 유) : <설행>에서 주인공은 알코올 중독자예요. 사냥꾼이었던 주인공의 아버지도 알코올 중독자였어요. 두 사람은 같은 중독자지만 대척점에 서 있다고 볼 수 있을 거예요. 정신분석학적으로 보면 아버지라는 존재는 기존의 도덕, 종교, 제도, 권위, 억압을 상징해왔어요.
 
김근홍(이하 김) : 저는 아버지와 술이 같다고 생각했어요. 정우(김태훈)의 알코올 중독은 똑같이 알코올 중독이었던 아버지로부터 유전되었잖아요.
 
하상윤(이하 하) : 아버지(술)로부터 시작된 알코올 중독은 전시대로부터 물려받은 가치관과 관습을 말하는 것이겠죠? 정우는 이미 그에 너무 취해있기 때문에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하죠. 영화 초반에서 볼 수 있듯이요. 중독 상태에 더 빠져있기를 원해요. 자신을 규정하는 아버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아요. 아버지라는 강한 힘과 타협해 그 자리에 안주하려 하죠.
 
유 : 정우는 벗어날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상황이 따라주지 않는 것일 수도 있어요. 중독이라는 것 자체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태잖아요. 알코올 중독자들이 술을 자력으로 끊기 어렵듯 정우도 이전 세대의 가치관과 관습에서 혼자 힘으로 떠나기는 어려운 거죠.
 
김 : 이때 정우의 구원자로 등장하는 사람이 어머니예요. 어머니라는 존재가 상징하는 것은 아버지와는 달리 주인공을 도와주고 그의 용기를 북돋워 주는 조력자죠. 정우가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찾는 곳이 재활치료센터가 아니라 엄마가 있었던 수녀원이라는 사실도 그래서인 것 같아요.

▲ 수녀원에 도착한 첫날, 마리아 수녀와 마주친 정우. ⓒ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하 : 나중에 밝혀지긴 하지만 <설행>에서 정우의 엄마는 이미 죽었어요. 대신 조력자로 등장하는 사람은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수녀죠. 마리아(박소담)의 어머니는 무당이고 그녀 또한 신병을 앓고 있어요. 영화 내내 마리아는 정우의 엄마처럼 이유 없이 정우를 살뜰하게 챙겨줘요. 저는 특히 마리아가 라이터를 찾는 정우에게 뭘 찾느냐고 묻지도 않고 성냥을 내미는 장면에서 그녀가 정우의 엄마에 빙의된 것은 아닐까 생각했어요.
 
유 : 그녀가 사후세계의 정우 엄마와 사바세계의 정우를 잇는 선이라고 봤어요. 마리아 수녀는 영화에서 ‘세상에는 수많은 점이 있고 그 점이 이어지는 현상은 아름답다’고 했어요. 그녀가 수녀원을 떠나며 남긴 것도 수많은 점을 선으로 이은 그림 수첩이었어요. 무당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사람이잖아요. 내적으로 추위에 떠는 정우를 감싸주는 마리아의 모습에 죽은 정우 엄마의 영혼이 스며있다고 느꼈습니다. 정우가 마리아를 통해 죽은 엄마를 만나는 것이죠.
 
김 : 흥미롭게 그려내긴 했지만 이 영화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그리고 귀환이라는 보편적인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영화는 아버지로 표현되는 기존 관습, 제도를 넘어 나만의 실존적 가치를 찾아 나서게 되는 여정을 그리고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들어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라고는 보기 어렵다는 얘기죠.
 
하 : 아버지를 넘어선 직후 잠시 정우의 모든 갈등은 해소된 것처럼 보여요. 그러나 길을 떠나는 정우를 휘감는 것은 앞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거센 눈보라예요. 또 다른 길이, 갈등이 시작될 것을 암시하는 것 같았어요.
 
유 : 반복되는 암중모색이죠.

<삼례>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유 : 암중모색이 반복되는 것은 <삼례>도 마찬가지예요. 감독 자신이 투영된 주인공 승우(이선호)는 시나리오 작가예요. 승우는 시나리오 작업이 꽉 막혀 앞이 캄캄한 상태에서 삼례라는 새로운 공간에 들어서죠. 이 공간에서의 경험을 통해 승우는 한 단계 성장해서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요. 그러나 승우는 또 다른 캄캄한 상태를 경험해야 하죠.
 
김 : 시나리오를 쓰는 행위 자체가 승우가 자기 삶의 방식을 찾는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초반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삼례로 가는 기차 안에서 승우의 무릎 위에 있는 책 데미안은 새로운 공간에서 자신이 갇힌 알과도 같은 세계를 깨고 날아가겠다는 승우의 의지를 보여주죠. 삼례라는 공간과 그를 상징하는 소녀 희인(김보라)은 승우가 시나리오를 쓸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설행>의 어머니, 마리아 수녀에 견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 : 이 영화가 ‘기차로 시작해서 기차로 끝나는, 삼례로 들어갔다가 삼례에서 나오는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무진기행>도 좀 생각났고요. 승우가 삼례라는 공간에 들어갔다가 희인이라는 소녀를 만나고, 그간 일어나는, 아니면 일어났다고 상상해버린 일들을 통해 삼례라는 공간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유 : 그래서 저는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삼례라는 공간이 무엇일까에 집중하면서 영화를 봤어요. 그렇게 영화를 보니까 처음에는 희인이가 삼례 같더라고요. 전생 이야기를 포함해서 그녀가 갖는 의미와 그녀가 의지하는 특성이 삼례라는 공간의 역사를 품고 있었으니까요. 또 희인은 자신을 “유난히 희한한 인간, 유희인”이라고 소개해요. 영화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일본 강점기에 만들어진 양곡 창고와 오일장이 현재와 공존하는 고요한 소도시 삼례도 유난히 희한하지 않나요? 찾아보니까 감독이 처음 삼례라는 도시를 봤을 때도 유난히 희한하다고 느꼈다고 하는데, 그 느낌을 희인이에게 대입한 것 같았어요.

▲ 시나리오 작가 승우가 오빠에게 머리를 강제로 깎이고 상처입은 소녀 희인을 업은 채 숲을 걷고 있다. ⓒ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김: 그러고 보니 영화 속에서 삼례를 바라보는 승우의 시선이 희인이를 바라보는 승우의 시선과 겹치는 것 같네요. 승우가 마을버스를 타고 오일장으로 향하고, 거기서 빵집에 들어가서 희인이를 만나잖아요. 그리고 둘은 마주 앉아 눈을 소재로 대화하고요. 조금 오글거리지만, 그때 정우가 희인이의 눈동자를 찍으면서 이렇게 말하죠. “사진 찍어뒀다가 시나리오 쓸 때 참고할게요.” 이 말이 앞으로 희인의 눈이 시나리오 구상 도구로 사용됨을 암시하는 거로 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거기에 이어지는 대사 “여기 삼례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희인이의 말도 의미심장하고요.
 
하 : 희인이가 승우에게 배우 지망생임을 고백한 다음 둘은 근처 성당으로 가는데 성당 창에 그려진 새로 앵글이 좁혀지죠. 오프닝에서 나온 책 <데미안>의 새와 통하는 것 같지 않나요?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여기에서는 승우뿐만 아니라 희인이도 알을 깨고 나오려는 새 같았어요.
 
유 : 맞아요.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는 희인이가 기타를 치며 ‘라구요’를 노래하는 것이 그런 뜻 아닐까요? 노래는 현실적으로 도달할 수 없지만 꼭 한번 가고 싶은 마음을 외치니까요. 그런 점에서 승우와 만나고 온 희인이의 긴 머리를 가위로 무지막지하게 자르는 오빠는 바깥세상으로 나가려는 희인이의 반대급부인 것 같기도 하고.
 
김 : <삼례>는 <설행>처럼 개인의 정신적 성장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야기 전개 방식은 <설행>과 달리 이미지의 모자이크를 사용하고 있고요. 불교사상으로 비유하자면 갑자기 깨달음을 얻는 돈오에 가까워요.
 
하 : 나열된 이미지들이 선명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눈을 닮은 성운이나 우주의 이미지, 검은 새, 해식 동굴의 지층 등 여러 이미지가 등장하지만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산만해요.
 
유 : 이현정 감독은 관객이 자신의 영화를 보고 자유롭게 해석해 영화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영화가 상영되고 나면 감독의 손을 떠나 독자적인 길을 걷는다고 생각해요. 해석은 수용자의 몫이죠. 열려있는 부분이 많을수록 감독의 의도가 뭔지 알기는 어렵겠지만 그만큼 영화가 담고 있는 의미는 확장될 거예요. 
 
여행이 끝나자 길이 시작되었다

<설행>에서 정우는 알코올 중독과 작별하며 일상으로 회귀하는 듯하지만, 다시 눈보라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는 또다시 시작될 다음 여정을 암시한다. 승우는 삼례라는 공간에서 시나리오를 갖고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곧 승강기를 타고 오르며 다음 단계에 놓인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죄르지 루카치(György Lukács)가 언명했듯이 ‘여행이 끝나자 길이 시작되었다.’ 잠깐 갈등이 해소된 것 같으나 다른 시련이 시작되는 것이다. ‘별이 빛나는 밤 하늘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을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 별빛은 기존의 가치관과 세계였다. 그 길을 거부하고 우리는 ‘나’의 길을 찾는다. 이 둘은 별빛이 사라진 시대에 불안하고 추운 여정을 계속해야 하는 현대인의 모습이 아닌가?
 
아버지로부터 규정 받은 자아를 극복하는 서사(설행)와 시나리오 쓰기를 통해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탐색하는 서사(삼례)는 독일적 전통에 기반을 둔 ‘교양소설(Bildungsroman)’ 구조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 개인의 성장 과정을 그리는 것이다. 같은 본질을 각자가 다르게 풀어낸다는 데 의의가 있다. 같은 이야기라도 어떤 내러티브로, 어떤 영화적 표현으로 전개했느냐에 사람들이 주목하는 이유다. 전자는 ‘스토리’고 후자는 ‘텔링’이다. 그러나 두 영화에서는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을만한 매력적인 스토리도 텔링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영화제를 찾는 관객들이 기대하는 것은 독립영화만의 신선함일 것이다. <설행>과 <삼례>를 보면서 서사와 표현기법에서 ‘신선함’보다는 ‘생경함’을 느꼈다. 독립영화의 실험성은 수용자와 교감할 수 있을 때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생경하기만 한 실험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전주 프로젝트’의 두 영화가 아쉬운 이유다.
 
영화제의 간판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상영관 곳곳에 보이는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시대적 요구를 제대로 읽어낸 영화는 관객을 불러 모은다. 1,700만 관객을 동원한 <명량>의 성공 요인을 뛰어난 서사와 표현기법에서 찾는 것은 무리가 있다. 제대로 된 지도자를 갈구하는 시대적 요구를 읽어낸 영리함이 흥행의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정신을 제대로 반영하지도, 영화적 표현의 대담함도 보여주지 못한 ‘전주 프로젝트’가 아쉬울 수밖에 없다.
 
전주 프로젝트의 가능성과 한계

혁신적이고 대안적인 영화가 많이 나올수록 영화계는 풍성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의미 있는 영화적 실험을 추구하기에 ‘전주 프로젝트’의 기반은 빈약했다. 구체적으로 다큐멘터리 1편의 제작비도 3억 정도인 상황에서 각 영화당 1억의 지원금은 실험과 대안을 발휘하기엔 턱없이 부족하지 않았을까? 대상작 선정 이후 모든 제작과정을 감독의 자율에 맡겨 독창적인 영화적 실험을 추구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영화적 대안을 모색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서사를 통해 기존의 가치관을 뒤집거나, 과감하고 실험적인 표현 기법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거나. 이번 ‘전주 프로젝트’는 두 부문 모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대안적 영화를 찾으려는 전주영화제의 꾸준한 시도는 지금까지 한국 영화계의 암중모색 과정이었다. 창공에 별빛이 사라진 시대다. 우리는 어두컴컴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 한국 영화계도 마찬가지다. 내년에 돌아올 ‘전주 프로젝트’가 어떻게 하면 좀 더 ‘의미 있는’ 암중모색의 과정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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