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잊었던 꿈 되살리는 상페의 따뜻한 삽화들

  “제 인물들이 작은 게 아니라 세상이 너무 큰 것입니다  (Mes personnages ne sont pas minuscules, c'est le monde qui est grand)."
 

▲ 장자크 상페 특별전에 전시된 <꼬마 니콜라>, <모든 것이 복잡해>등의 작품 속 삽화. ⓒ 구세라
<꼬마 니콜라>의 화가 장자크 상페가 직접 사용했다는 화구 곁에 이런 말이 붙어 있다. 펜으로 작은 사람들을 오밀조밀 그려내고, 과하지 않은 붓질로 소박하면서도 편안한 색채를 보여준 화가. 무명 일러스트레이터(삽화가)였던 그를 일약 스타의 자리로 올려놓은 <꼬마 니콜라>의 원화와 함께 상페의 다양한 작품들이 한국을 찾아왔다.

지난해 12월 21일부터 경기도 고양시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꼬마 니콜라의 아름다운 날들’ 전시회에는 <각별한 마음> <사치와 평온과 쾌락> <어설픈 경쟁> 등 상페의 작품에 쓰인 소묘화, 수채화 등 원화 120여 점과 복제화 100점, 꼬마 니콜라 인형 등이 선보이고 있다. 
 

▲ 장자크 상페가 직접 사용하던 화구가 전시된 공간. ⓒ 구세라

상페의 그림들은 친근하다. 일을 하느라 정신없는 사무실에 빼꼼 문을 열고 등장하는 꼬마. 출근길 만원 버스 뒤에 간신히 매달려가는 직장인들. 화려한 옷을 차려입고 뽐내는 신사숙녀와 옛 애인의 추억을 되새기는 쓸쓸한 노부인의 모습. 단순하고 소박한 필치로 우리네 삶의 순간순간들을 담은 그림들은 관람객들이 가볍게 미소 지으며 다가가게 만든다. 그 중에서도 가장 반갑고 익숙한 작품은 <꼬마 니콜라>다.   
 
따스한 유머가 돋보이는 <꼬마 니콜라>

1959년에 처음 발표된 후 5권의 시리즈가 나온 <꼬마 니콜라>는 이후 50여 년간 상페의 모국인 프랑스는 물론 미주 유럽 아시아 등 30개국 언어로 번역돼 인기를 모았다. 프랑스 만화계의 거장 르네 고시니가 함께 작업한 이 작품은 <돌아온 꼬마 니콜라> <꼬마 니콜라의 빨간 풍선> 등 다양한 제목으로 국내에도 소개됐다. 호기심 넘치는 개구쟁이 니콜라가 아빠 담배를 몰래 피워보다 쓰러지는 장면 등에서 공감하거나 배꼽을 빼던 기억이 많은 이들에게 남아 있을 것이다.

▲ 호기심 넘치는 캐릭터 니콜라의 모습. ⓒ 구세라

 상페와 고시니는 니콜라에게 생명력을 불어 넣기 위해 각자의 어린 시절 기억을 많이 끌어다 썼다고 한다. 그래서 니콜라가 사고를 벌이거나 장난을 칠 때, 독자들이 쉽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침대에서 곤히 자는 니콜라의 머리 위로 ‘결투를 청하는 사람’, ‘권투를 하는 사람’, ‘말을 타는 사람’, ‘쏘아 올려진 로켓’ 등이 붙어있는 그림을 보면서 관람객들은 일상에 지쳐 잊고 있던 각자의 어린 시절을 되살리게 된다. 
 
 상페는 어린 시절 악단 연주자를 꿈꾸었다고 한다. 연주자들의 모습을 종이에 그리면서 음악과 그림에 대한 동경을 함께 키웠단다. 이런 설명을 들으면 ‘바이올린을 켜는 남자’ ‘아이와 함께 피아노를 치는 엄마’ ‘피아노를 향해 걸어가는 연주자’의 모습이 새롭게 보인다. 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을 그림 속에 담아내려한 흔적이 느껴진다. <우연처럼>이란 작품 속 삽화에서 연주자 넷이 악기를 든 채 ‘우연처럼’ 열차 플랫폼에 등장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 예술과 웃음을 적절히 녹여내 그린 상페의 작품들. ⓒ 구세라

풍자와 해학이 깃든 장자크 상페의 작품

현실 속의 기회주의와 남녀문제, 소비를 조장하는 문화를 슬쩍 꼬집는 작품들도 눈에 띈다. 노아의 방주에 타려고 암여우에게 급히 달려가 청혼하는 숫여우의 모습, 새끼들에게 남편의 외도를 나직이 설명하며 울분을 억누르는 엄마 토끼의 모습은 기발하게 웃음을 자극한다. 화려한 소파에 기대 누운 중년 부인에게 “손님은 이 소파를 원해요”라며 은근히 구매를 강요하는 대머리 점원의 모습은 ‘소비 권하는 사회’를 슬쩍 비틀고 있다. <속 깊은 이성 친구>라는 작품 속 남녀의 대화도 재미있다. 못생겼거나 평범한 남자가 지나가면 남자는 여자에게 말한다. “저 사람 봐. 당신이 나를 만나는 바람에 놓쳐 버린 사람이야.” 그러나 가끔씩 용모가 수려한 남자가 지나갈 때 그는 할 말을 잃는다.

무용수들이 춤을 추는 동안 무대 뒤에서 작업하는 인부들의 모습을 그린 삽화도 눈길을 모은다. 그림을 찬찬히 보면 무용수들의 춤사위와 인부들의 몸짓이 비슷한데, 예술과 노동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본 상페의 통찰력에 놀라게 된다. 그는 화가와 시사만화가 사이에 벽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둘 다 ‘새로운 것을 창작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작업이라고 봤으며, 자신의 붓은 항상 사람을 향한 것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 사람을 향해 붓을 들었던 프랑스 화가 장자크 상페의 작품. ⓒ 구세라

그는 커다란 사회 안에 놓인 개인을 통해 삶의 진실을 드러내지만, 자기주장을 강요하거나 애써 설득하려하지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 속에 가슴 시큰한 아픔 같은 건 없다. 고통과 상처가 없는 예술은 언뜻 인간사를 표현하기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찬찬히 보면 눈물은 단지 생략되었을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대신 그의 작품 속엔 ‘꿈’이 살아 있다. 어린 시절,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그 때의 가슴 두근거리던 꿈이 그의 그림을 보는 동안 되살아난다. 차도를 점령한 서커스단이 악기를 연주하며 흥겹게 춤을 추는 <아름다운 날들>과 같은 자유로움과 환상적인 느낌이.

 오는 3월 20일까지 계속되는 상페 특별전은 아시아 최초이자 마지막 전시회가 될 것이라고 한다. 프랑스 갤러리 측이 한국 전시를 마지막으로 <꼬마 니콜라> 원화를 더 이상 해외에 반출하지 않을 계획이기 때문이다. 아람미술관은 이 기간 동안 일요일도 개관하며 대신 월요일에 문을 닫는다. 관람료는 일반 11,000원, 19세 미만 8,000원, 미취학아동 6,000원이며 만 2세 이하는 무료다.

▲ 아람미술관 상페 특별전은 아시아 최초이자 마지막 전시회가 될 것이다. ⓒ 구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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