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세월호 1년 전국 추모제, 광화문에선 시민과 경찰 대치

“1년 전 오늘, 저희는 동생들이 죽어가는 걸 생방송으로 지켜봐야 했습니다.”

16일 저녁 9시 30분쯤 서울 태평로 서울광장.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최윤민(단원고)양의 언니 윤아(24)씨가 발언대에 올라 울먹이는 목소리로 참담했던 ‘그날’을 떠올렸다. 여기저기서 어깨를 들썩이며 함께 흐느끼는 사람들이 보였다. 최씨는 “사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했는데, 정작 그 말을 해줬으면 하는 사람에게는 듣지 못했다”며 “제발 우리가 이 나라에서 숨 쉴 수 있도록 세월호를 인양하고 (잘못된) 시행령을 폐기해달라”고 호소했다. 최씨의 연설이 끝나자 옷깃에 노란 추모리본을 달고 손에는 하얀 국화꽃을 쥐고 있던 시민들이 긴 박수를 보냈다. 

▲ 현장은 국화꽃 향기로 가득했다. 많은 시민들은 광화문 분향소에 헌화할 국화를 들고 있었다. ⓒ 김재희

1년 전 참담한 고통 떠올리는 유가족 

이날 오후 7시부터 4ㆍ16가족협의회 등의 주최로 열린 추모행사 ‘4.16 약속의 밤’에는 주최 측 추산 6만5000여명(경찰 추산 1만여명)의 시민이 서울광장을 가득 메웠다. 추모제를 시작하는 짧은 묵념에 이어 세월호 1년의 기록 등이 상영된 후 실종자 허다윤(단원고)양의 아버지 허흥환(52)가 마이크를 잡았다. 허씨는 “그 어떤 역경도, 고난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며 “실종자 아홉 명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고, 친구들 곁으로 보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문화제를 겸한 이날 행사에서 안치환과 자유는 ‘꿈의 소풍을 떠나 부디 행복하여라’를, 이승환밴드는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등을 불렀다. 재즈싱어 말로, 노래패 우리나라 등도 공연을 통해 추모 열기를 고조시켰다. 시민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며 진지하게 몰입했다. 교복을 입고 나온 이재호(15·중3)군은 “사람들이 광장을 꽉 채운 걸 보니 느낌이 이상하다”며 “이전에는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었지만 세월호를 계기로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추모제의 차분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 사고 직후에 있었던 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 발표 모습이 스크린에 비치자 곳곳에서 삿대질과 함께 욕설이 튀어 나왔다. ⓒ 김재희

오후 10시. 선체 인양과 함께 실종자 9명을 찾기를 기원하며 세월호 모형을 끌어 올리는 퍼포먼스를 벌인 뒤 시민들은 도보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광화문광장 분향소로 향했다. 하지만 경찰이 수십대의 경찰버스로 빽빽이 차벽을 세우고 가로막는 바람에 행진 대열은 금방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4미터(m)길이의 가림막 등을 동원, 세종대로 동화면세점 뒤편부터 종각 광교사거리, 인사동과 안국동 일대를 빙 둘러 막았다. ‘시위대가 도로를 불법 점거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고 있으니 즉각 해산하라’고 가두방송 등으로 종용했다.  

시민들은 반발했다. 추모제 현장에 청중의 한 사람으로 나와 유가족들을 위로했던 가수 김장훈씨는 “왜 치졸하게 벽을 막고 있는 거냐”며 “이렇게 하니까 유가족들이 광장에 나온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등학생 이윤형(19)군은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경찰 측에서 미리 버스를 세워 두는 건 너무 과하지 않냐”며 “우리는 국화꽃만 두고 오려고 하는데 뭐가 무서워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했다. 청계광장에서 길이 막히자 상당수 시민들은 시청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30분을 돌아 광화문광장에 도착하기도 했다. 

▲ 막힌 차벽을 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이 원망스럽게 쳐다보고 있다. 광화문 분향소를 몇 걸음 앞두고 차벽에 진입이 막히자 유씨가 마이크를 들고 길을 터주기를 경찰에 촉구했다. 유씨의 등 뒤에서 불법 집회로 규정한다는 경찰의 경고 방송이 계속됐다. ⓒ 김재희

‘길 터라’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경찰 최루액 발사 

차벽으로 퇴근길의 시민들까지 길이 막혀 항의하자 현장의 한 경찰 관계자는 “여기서 길을 터주면 불법 시위대에 합류할 수 있어 통행을 막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경찰과 물리적인 충돌이 있으면 현행범으로 체포하겠다”고 경고했다. 길을 터달라는 추모제 참가자들의 항의가 계속되자 경찰은 여러 차례 경고방송 끝에 최루액을 발사하기도 했다. 

자정이 넘은 시각, 세월호 희생자 유예은(단원고)양의 어머니 박은희(45)씨가 광화문 분향소로 가려는 것을 경찰이 막아서자 시위대가 합세해 경찰에 항의했다. 시위대는 “예은이 어머님 혼자만이라도 들여보내 달라”고 요구하며 “다 같이 뒤로 삼보 물러가자”고 외치기도 했다. 30~40분의 대치 끝에 경찰이 길을 터주어 박씨 혼자 분향소로 갈 수 있었다.

경찰과 시위대의 대치가 계속되는 동안 광화문 분향소에는 다른 길로 온 시민들이 줄지어 참배했다. 순서를 기다렸다가 영정 앞에 국화꽃을 올리려는 시민들의 행렬이 광장이 끝나는 광화문 앞까지 이어졌다. 기다리는 동안 연신 울먹이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한쪽에서는 노란 종이배 접기, 정부시행령폐기 국민투표 서명 등의 캠페인도 진행됐다.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죽어도 몇 년이나 생각나는데, 오늘 겨우 1년 됐잖아요. 왜 지겹다고 하는지….” 

분향소를 찾은 홍나래(23·여)씨가 말했다. 헌화를 마치고 나오던 곽주영(34·여)씨는 “아이들 영정사진을 보니 나는 너무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미안했다”며 “인사를 하다가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 광화문 광장 분향소에는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헌화하려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순서를 기다리면서 울음을 참느라 어깨를 들썩이는 시민들도 있었다. ⓒ 김다솜

‘1년 동안 정부여당은 뭘 했나’ 유가족들 울분 

“유가족이 되고 싶다는 실종자 가족들이 있습니다. 하루 빨리 세월호를 인양해야 합니다.”

앞서 이날 오후 2시 경기도 안산 화랑공원 내 세월호사고 합동분향소 앞 광장에서는 유가족과 시민들이 정부여당을 향해 ‘세월호 인양’과 ‘세월호 특별법 정부시행령 폐기’를 목청 높여 요구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마이크를 들고 “선체를 온전하게 인양해서 실종자를 찾아주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 시각 분향소 안에서는 김무성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 김문수 보수혁신특별위원장 등 새누리당 수뇌부가 유가족들에 둘러싸여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시행령 폐기에 대해 김 대표는 "내일 유족대표와 협의하는 걸로 하겠다"고 답했다. 또 선체 인양에 대해서는 “책임지고 하겠다”고 강조했지만 ‘공식 선언을 하라’는 유가족의 요구에는 확답을 내놓지 못했다. 결국 여당 인사들은 '1년 동안 당신들이 한 것이 무엇이냐'고 외치며 격렬히 항의하는 유가족들에 밀려 조문도 못하고 쫓기다시피 분향소를 빠져나갔다. 

가족협의회는 오후 2시가 넘어서자 “예정됐던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행사를 취소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정부가 세월호를 인양한다는 약속, 진상규명을 방해하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을 폐기한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다”며 “결국 1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는데, 무슨 면목으로 아이들을 추모하겠냐”고 말했다. 성남세월호대책회의 장건 공동대표는 “진실을 밝혀야 할 대통령과 정부가 책임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데 대해 희생자, 실종자 가족들은 절망하고 있다”며 “유가족들만 홀로 광화문에 서 있게 하지 말고 공동체 일원으로서 국민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갖자”고 촉구했다. 

▲ 성남세월호대책회의 장건 공동대표는 "요즘은 부정부패한 기성세대를 개혁하기 위해 싸우는 젊은이들이 없다"며 "그렇지만 세월호 문제 해결을 위해 젊은이들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이문예

행사가 취소됐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갔지만 추모의 뜻을 담은 작은 행사들은 합동분향소 일대에서 그대로 진행됐다. 카드에 추모의 글귀를 써서 팽목항으로 보내는 ‘팽목항 편지’ 코너에서는 초등학생들이 고사리 손으로 또박또박 편지를 써 내려갔다. 안산시 상록구 일동의 방과후교실 ‘우리동네지역아동센터’의 어린이 30여명은 오후 3시 50분 대절한 버스로 분향소를 찾았다. 3~4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사회복지사 김혜란(40․안산시 일동)씨는 “그동안 아이들이 무섭고 두려워할까 봐 분향소에는 못 데려왔는데 1주기라 의견을 물었더니 아이들도 오고 싶어 했고 부모님들도 찬성해 오게 됐다”고 말했다. 안산시 일동에는 세월호 사고 희생자가 없지만, 공동육아어린이집 등이 주축이 돼 지난 1년간 아이들과 어른들이 매주 금요일마다 촛불을 들고 동네를 한 바퀴 돌거나 세월호 관련 영상을 보고 편지를 낭독하는 등의 ‘동네촛불’ 행사를 이어왔다고 한다. 

▲ 사회복지사 김혜란씨와 안산 우리동네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팽목항으로 보내는 편지를 썼다. 아이들의 편지에는 유독 '미안하다', '잊지 않겠다'는 문구가 많았다. ⓒ 이문예

‘잊지 않겠다’ 단원고 향한 추모행진 

이날 오전부터 내리던 빗줄기가 오후 3시쯤 잦아들자 유가족과 자원봉사자, 조문객 등 200여명은 노란 우비를 입고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적힌 노란 풍선을 든 채 단원고까지 4.5킬로미터(km)추모행진에 나섰다. 제종길 안산시장,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그리고 안산시와 자매결연한 제천시의 이근규 시장이 행렬의 맨 앞에 섰다. 길가에서 행렬을 바라보던 김형주(43·여)씨는 “대통령이 오늘 안산을 찾지 않고 정치하는 사람들끼리 팽목항에 갔다고 들었다”며 “그들만의 추모제는 쇼”라고 꼬집었다. 

▲ 추모객들은 '잊지않겠습니다'라고 적힌 노란 풍선을 지나가던 시민들과 나누며 단원고로 향했다. ⓒ 이성훈

행진 대열에 있던 손소이(고3)양은 “오전 수업이 끝나자마자 왔다”며 “서로의 가족을 엄마 아빠라고 부르던 친구가 희생돼, (세월호는) 나에게 남의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40년 동안 교편을 잡았다는 김금중(84·서울)씨는 “대한민국, 아니 지구를 줘도 바꿀 수 없는 아이들이 세상을 떠났다. 꼭 행진에 참여하고 싶었다”며 발걸음을 옮겼다.   

오후 4시 20분 경 단원고 옆 공터에 도착한 일행은 돌아가면서 추모발언을 했다. 조희연 교육감은 “왜 세월호라는 거대한 사건에서 국가는 작동하지 않았는가.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하도록 왜곡된 사회와 국가를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재정 교육감은 “하루빨리 세월호를 인양하고 시행령을 제대로 고쳐서 진실을 밝히길 정부에 간곡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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