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미디어읽기] <시크릿 가든>의 아쉬움 <무한도전>이 풀었으면

‘키워드로 미디어읽기’는 구세라․홍윤정 기자가 대화 형식으로 풀어내는 미디어 이야기입니다. 이번 주 키워드는 드라마 <시크릿 가든>과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타인의 삶’ 편의 ‘체인지’입니다.

홍(홍윤정) : 꺅!!
 
쿠(구세라) : 무슨 일이야? 악몽이라도 꾼 거니?
 
: 으응. 글쎄 꿈속에서 내가 박명수랑 몸이 바뀐 거야. 기왕 바뀔 거면 하지원이랑 바뀔 것이지. 현빈이랑 거품키스도 하게 말이야. 흐흐 -_-
 
: 홍, <무한도전>이랑 <시크릿 가든>을 너무 열심히 봤네! 꿈에서까지 나올 만큼 흥미로웠던 거야? 하기야 최근 <시크릿 가든> 덕분에 '체인지'라는 소재가 다시 주목 받기 시작했지. 지난주 <무한도전> '타인의 삶' 편에서도 멤버 박명수가 일반인과 역할을 바꿔보는 시도를 했잖아. 예전에 여러 번 영화나 드라마 소재가 됐기 때문에 식상할 수 있는 '체인지' 설정이 새삼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 같아.
 
: 맞아. 아무래도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타인의 삶을 궁금해 하니까. 때론 누군가의 삶을 동경하기도 하지. <무한도전> '타인의 삶' 편에서 박명수가 신청자 437명 중에 동갑내기 의사를 택한 이유도 자신이 어렸을 때 꿈꿔온 의사의 삶을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지? 
 

▲ <무한도전> 홈페이지에 게재된 '타인의 삶' 신청 예시. ⓒ MBC

: 어쩌면 유치해 보일 수 있는 '영혼 체인지'나 '역할 바꾸기' 설정이 동경했던 타인의 삶을 잠깐이나마 체험하며 대리만족 하게 해주는 장치라는 거지? 박명수가 1일 의사가 됐을 때, 과연 어떻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지 궁금해 하며 봤거든. 나름대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살려 환자들을 대하더라고. 의학 지식은 없지만, 자기가 가진 ‘끼’를 살려 환자들에게 웃음을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어.
 
: <시크릿 가든>에서도 마찬가지였지. 직원 복지에 큰 관심 없었던 백화점 사장 ‘김주원’과는 달리 그와 몸이 바뀐 ‘길라임’은 어려운 처지에서 일하는 친구를 승진시켰지. 라임은 주원이 가진 경영 지식은 없었지만, 백화점 직원이 느끼는 고충은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야. 그것뿐이겠어. 백화점 직원을 성추행 하려는 최고귀빈(VVIP)고객에게 주먹을 날려 경찰서에 가기도 했지. 불의를 참지 못하는 라임은 영혼이 바뀌었을 때 자기 스타일의 새로운 백화점 사장이 되었던 거야.

일시적인 체인지는 아쉬워

: 그런데 말이야, '영혼 체인지'나 '역할 바꾸기'라는 설정이 다 일시적이란 점은 아쉬워.

: 맞아. 단 한 번이라도 상대방의 마음과 입장을 이해할 시간을 갖는 것은 의미 있지만 거기에만 머문다면 허무할 것 같아. 이를테면 <체험 삶의 현장>과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유명인사가 힘든 노동을 체험해보는데, 그 순간으로 끝나지 않고 돈을 모아 연말에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주잖아. 단순한 체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
 
: 그러니까 네 말은 한 번의 체험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필요한 변화를 실질적으로 이끌어내는 역할까지 미디어가 했으면 하는 거구나?
 
: 옳소, 말이 잘 통하는데! 
 
: 음, 우리가 봐온 미디어 속 ‘체인지’엔 공통점이 있어. '다시 돌아온다'는 전제가 있다는 거지. <시크릿 가든>에서도 처음에는 ‘김주원’과 ‘길라임’이 언제 몸이 돌아올지 몰라 우왕좌왕 했지. 하지만 비가 내릴 때 함께 있으면 몸이 바뀐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까 주인공들이 상대의 일상을 받아들이고 유연하게 대처하잖아. 그래서 재벌 2세인 주원이 청테이프 덕지덕지 붙은 단칸방에서 견딜 수 있었던 것이고.
 
: 나도 동감해. 주원도 처음에는 라임이의 몸으로 사는 거 몹시 싫어했잖아. 그런데 원래대로 돌아간 경험을 한 뒤엔 '당분간 이렇게 살아줄 수 있지'하는 마음을 먹었던 것 같아. 그러니까 라임의 몸속으로 들어간 주원이 처음보다 액션스쿨도 열심히 다니고, 오디션 준비도 해주고 말이야. 진짜 라임이 되어 평생을 살아가는 게 아니니까. 
 

▲ 서로 몸이 바뀐 김주원(현빈)과 길라임(하지원). ⓒ SBS

종국엔 제 몸 찾는 콘텐츠 속 ‘체인지’
 
: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체인지'를 소재로 했던 영화, 드라마는 주인공들이 '어떻게든'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서 끝났어.

: 미국 영화 <프리키 프라이데이>, <보이 걸 씽>, <핫 칙>, 일본 드라마인 <아빠와 딸의 7일간> 등 주인공들은 항상 '오래지 않아'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곤 했지. <시크릿 가든>의 주원과 라임 역시 결국 자신들의 몸으로 돌아와 해피엔딩을 맞았잖아. 
 
: 그러고 보니 체인지를 소재로 한 작품이 정말 많구나! 난 어렸을 때 읽었던 마크 트웨인의 소설 <왕자와 거지>가 떠올라. 이 작품이야 말로 '체인지'의 시초가 아닐까? <시크릿 가든>이 현대판 <왕자와 거지>라는 이야기도 있었잖아. 왕자인 에드워드가 거지 톰의 옷을 벗고 다시 궁궐로 돌아간 것처럼 <시크릿 가든> 주원도 자신의 부와 명예를 버리지 않고, 백화점 사장으로 살아가잖아. 백성들의 어려운 삶을 겪어본 왕자도 결국엔 자신의 신분을 포기하지 않았어. 왕자는 이미 많은 것들을 가졌기 때문에 자신이 갖지 못한 '자유'를 누려보려고 자청해서 거지와 역할을 바꾸었지만, 결국 ‘자유’보다 먼저 필요한 게 ‘생존’이란 사실을 깨달았던 것일까? 
 

▲ 영화 <왕자와 거지> 포스터
: 왕자도 ‘자유’보다는 그 동안 누려왔던 권력과 부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자신의 것은 지키면서 갖지 못한 것을 '맛' 보자는 취지랄까. <왕자와 거지> 속에 나오는 왕자는 왕이 된 후 백성을 위한 정치를 했다고 하지만, 왕자가 거지에게 '고아원 원장' 자리를 준 것 외에 대다수 백성들의 어려운 삶은 달라지지 않았지. 소설의 배경이 됐던 영국의 16세기도 실제로 그다지 행복하진 않았다고 해.
 
: 응, 같은 날 태어난 왕자 에드워드와 가난한 소년 톰이 만나 신분이 뒤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우연히 나온 게 아닐 거야. 작가 마크 트웨인은 <왕자와 거지>의 부제를 ‘모든 시대의 젊은이들을 위한 이야기’라고 붙였는데, 바꿔 말하면 어느 시대에나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말이지. 5세기가 지난 지금도 ‘신분 차이’로 인한 갈등이 이야기의 뼈대가 되잖아. <시크릿 가든>처럼. 상류층이 궁핍한 일반 백성의 삶을 헤아리지 못하니까 작가는 그들이 현실을 깨닫고 사회를 바꿨으면 하는 염원을 담았던 것 같아. 
 
: 그래 맞아. 난 그래서 미디어에서 '체인지'를 다룰 땐 이제 아주 과감하게 '돌아가선 안 되는 체인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 재미있는데! ‘돌.아.가.선 안.되.는 체.인.지.’라구?
 
돌아가선 안 되는 '체인지'
 
: 예전에 차명진 국회의원이 ‘최저생계비로 하루나기 체험’을 했던 것 기억나? 생활비 6,300원을 받아 쪽방에서 1박 2일간 생활해보고 쓴 체험기가 누리꾼들에게 엄청난 질타를 받았지. “600원짜리 조간신문 한 부까지 사보는 삶이니 황제가 부럽지 않다”고 썼거든. 네티즌들은 “하루가 아니라 매일 그렇게 살아야 한다면 그런 얘기가 나오겠느냐”고 비판했어. “6300원짜리 황제의 삶이 그렇게 좋으면 의정기간 내내 황제의 삶을 살라”는 비아냥도 있었지.
 
: ‘일시적인 체인지’의 문제가 드러난 셈이군.
 
: 잠깐 그렇게 살 땐 식비만 해결하면 되겠지만, 매일 살아가려면 최저생계비로는 어림도 없어. 그 국회의원도 잠깐의 체험 후 다시 원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으니 근본적인 문제까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거야. 
 
: 연말연시 기업들의 사회봉사 활동도 비슷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취지는 좋지만, 잠깐 고생하면서 생색내는 ‘보여주기 식 체인지’는 문제라고 생각해.

: 맞아. 정작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봉사활동 나온 사람들과 함께 사진 찍느라 불편한 경우도 자주 있다고 들었어. 기업이 사회를 위해서 정말 좋은 일을 하려고 한다면 일시적 ‘봉사활동’도 좋지만,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게 우선일 텐데 말이야. 체인지를 소재로 한 작품 속 주인공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행복하게 살게 되는데, 실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체인지는 현실에서 별다른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어. 
 

: 그렇지. 차명진 의원이 ‘역할 바꾸기’를 통해 현실을 제대로 깨달았다면 그렇게 쉽게 ‘황제의 삶’을 운운하진 않았겠지. 기업들도 마찬가지고. '역지사지'를 시도해본다는 자체에만 의미를 두지 말고 사회적, 제도적 부분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얘기야. <시크릿 가든>에서 라임과 주원이 ‘체인지’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고, 어머니의 반대까지 극복하며 살아간다고 해도 그것이 그들만의 특별한 이야기에 그친다면 씁쓸한 거지. 현실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 힘든 삶을 살아야 하니까.
 
: 나도 드라마의 해피엔딩을 바랐지만, 현실에서라면 과연 해피엔딩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 사람들이 현실에서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도록 사회 환경을 바꾸는 것이 중요해. 입장 바꿔 ‘생각’만 하는 체인지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불평등을 줄여나갈 수 있는 대안을 담아내는 미디어를 보고 싶어. 난 그래서 ‘돌아가지 않아도 행복한 체인지’를 꿈 꿔.
 
: 서로 바뀐 몸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도 만족할 정도의 세상을 꿈꾼다는 이야기지? 누구나 공평한 기회를 갖고, 함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말이잖아.
 
: 우와, 너 자리 깔아도 되겠다!
 
체인지, 그런 결말이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 난 <시크릿 가든>이 결말에서 ‘체인지’ 설정을 더 잘 활용할 수도 있었는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어. 주원과 라임은 마법이 풀리지 않아서 비만 오면 몸이 바뀌는 거야. 그래서 주원은 '가난한 여성'인 라임의 몸을 빌린 채 자신이 배웠던 ‘사회 지도층’의 당당함을 현실에서 발휘하는 거지. 그동안 왕자처럼 대접받고 자랐으니 라임이 받았던 부당함을 견디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회를 바꾸려고 나서는 거야. 사회적 약자가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지. 그것이야 말로 주원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사회지도층의 모범' 아닐까.
 
▲ <시크릿 가든> 속 김주원(현빈)과 길라임(하지원). ⓒ SBS

: 그럼 라임은 예전 에피소드에서 보여준 것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려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백화점 사장 역할을 소화하고? 우리 너무 나간 것 아닐까. 그런 결말이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하 하 하....... 이제 드라마는 끝났으니, <무한도전>에서 멤버들이 차례대로 보여줄 '타인의 삶' 시리즈에 우리의 기대가 반영됐으면 좋겠어.  
 
: 응. 물론 <무한도전>은 예능프로그램이니까 너무 공익적인 책임을 바라는 것은 무리겠지. 다만 사람들이 동경하는 인물과 ‘체인지’ 되는 이야기 외에 우리가 평소에 모른 척 덮어두고 외면했던 힘든 사람들과도 역할을 바꾸는 기회가 있었으면 해.   
 
: 아무튼 우린 참 오지랖이 넓은 것 같아.
 
: 그럼 우리도 이번 기회에 서로 역할을 바꿔 보면 어떨까? 쿠쿠쿠쿠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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