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토크] 인디다큐페스티발2015 상영작 '바다에서 온 편지'

다큐멘터리는 현상이나 이슈의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고민한다. ‘무엇’이 주제의 문제라면 ‘어떻게’는 그 주제를 풀어내는 양식이다. 잘 만들어진 다큐는 사실 속에 담긴 본질과 진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여기 세월호 참사의 ‘무엇’을 ‘어떻게’ 주목한 시선이 있다. 27일 인디다큐페스티발2015에서 상영된 다큐멘터리영화 <바다에서 온 편지>다.

▲ 일러스트레이터 이진아가 기획하고 제작한 '인디다큐페스티발2015' 공식 포스터. 포스터의 왼쪽 상단에는 잠수복을 입은 두 사람이 조명과 카메라를 들고 물속 세상을 기록한다. 이들의 카메라가 향하는 곳은 생기를 잃어버린 도시다. ⓒ 인디다큐페스티발2015

월호 1년, 우리는 어디 있는가

다큐 <바다에서 온 편지>는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미디어팀이 만들었다. 주류 미디어에서 보기 어려웠던 세월호 유가족들의 고통스런 삶과 이들과 연대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영화는 6월 7일 촛불집회에서 사용된 영상 ‘진실의 문을 열겠습니다’, 416특별법 제정촉구 범국민대회에서 상영한 ‘살고 싶었어요, 안전한 사회에서’, 참사 이후 팽목항에서 청와대로 향하는 유가족들의 모습을 기록한 ‘당신의 바다, 우리의 바다’를 비롯해 ‘엄마의 200일’, ‘희망으로 맞잡은 손’이라는 다섯 개의 시선으로 구성됐다.

다큐는 ‘진실의 문을 열겠습니다’로 시작한다. 세월호 이전의 서해 훼리호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 씨랜드 화재, 대구지하철 참사 등의 영상을 보여주며 그동안 이 땅에서 벌어진 모든 참사들의 진상 규명이 제대로 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밝힌다. 이어서 ‘당신의 바다, 우리의 바다’를 통해 그 모든 고통의 순간에도 참사의 진실을 밝히겠다고 나섰던 사람들의 의지에 주목하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한다.

▲ 영화는 꽃같은 자식을 잃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슬픔을 고스란히 기록한다. '살고싶었어요, 안전한 사회에서'의 한 장면. ⓒ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미디어팀

416특별법 제정촉구 범국민대회, 6월 7일 촛불집회, 연말집회 등 세월호 참사 이후에 일어난 현장을 기록한 다큐영화를 보는 일은 많은 인내를 요구한다. 특히, 사고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하는 단원고 희생학생들이 직접 찍은 미공개 영상(‘살고싶었어요, 안전한 사회에서’)은 분노와 안타까움을 동시에 던진다. 영상 속에서 아이들은 20년 된 낡은 구명조끼에 목숨을 맡기며 ‘죽고 싶지 않다, 살아서 하고 싶은 게 많다’고 절규한다.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에 차마 스크린을 마주하기 어렵다. 

‘엄마의 200일’은 세월호 참사이후 200일동안 변해가는 유가족들의 모습을 담았다. 문제해결을 요구하며 낯설었던 투쟁이 익숙해지고, 분노와 좌절로 어느 순간 못하던 욕까지 하게 된 엄마들. 영화 속 ‘슬픔은 누른다고 해서 눌러지는 게 아니’라는 말이 먹먹하게 다가온다. ‘참사 이후 남겨진 사람들에게 심리치료가 진행되지만, 병원에 다녀오고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다. 참사의 원인을 진상을 밝히는 것만이 그 해결책이다.’ 춘천 산사태 참사 유가족의 증언이다. 힘들고 괴로운 기억을 잊어버리고, 털어버리면 속이 편해질까. 그 참혹한 기억을 억지로 잊으려한다고 잊혀 지기는 할까. 정리되지 않은 기억은 언제고 울컥 떠오르기 마련이다. 억울함을 풀기 전에는, 진실을 납득하기 전에는 결코 흘러가는 시간을 멈출 수 없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외치는 이 영화가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 이유다.

기억에서 연대로 살아가기

영화 후반부의 ‘희망으로 맞잡은 손’은 이전의 참사로 고통당한 이들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함께하는 뭉클한 모습을 담았다. ‘우리의 고통보다 당신의 고통이 더 크고 무거워도 함께 발걸음을 움직이겠다’ 밀양 송전탑 반대주민, 춘천산사태 참사 유가족, 쌍용차해고자 가족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게 전하는 메시지와 이들의 연대는 암울한 현실을 타개할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참사를 겪은 이들이 더 이상 평범한 일상의 풍경 속에서 이전처럼 살 수는 없다. 오히려 참사를 오롯이 기억한 채, 그 기억과 마주하며 현실을 살아내야만 한다. <바다에서 온 편지>는 기록을 통해 기억하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아픔을 가진 이들이 연대하며 살아갈 것을 촉구한다.

▲ 아픔을 가진 이들은 연대함으로써 희망을 꿈꿀 수 있다. 이는 영화가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희망으로 맞잡은 손'의 한 장면. ⓒ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미디어팀

<바다에서 온 편지>는 치밀한 카메라 앵글과 정교한 편집으로 완성된 영화는 아니다. 다섯 개의 다큐를 잇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몇몇의 투박한 지점들도 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의 호소력으로 관객에게 말한다. 잊지 말자고, 기억하자고, 그리고 행동하자고. 60여분이 조금 넘는 러닝타임 동안 관객은 스크린을 통해 세월호 참사라는 공동의 경험을 되새기고, 세월호 참사가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할 우리의 문제임을 체감케 한다. 공동의 경험이 공동의 기억으로 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큐는 공동의 경험을 기록하고 함께 기억하기를 요청한다. 

26일 시작한 인디다큐페스티발2015는 총 35편의 국내신작전 상영작을 비롯해 국내 다큐멘터리의 흐름을 보는 ‘올해의 초점’,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현재를 만나는 ‘아시아의 초점’부문으로 구성된 다큐영화가 상영될 예정이다. <바다에서 온 편지>는 인디다큐페스티발2015의 ‘다큐멘터리 발언대’부문에 속한 세 편의 영화 중 한 편이다. 다큐멘터리 발언대는 현시대의 사회 이슈인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오체투지, 밀양 송전탑 반대 등 주류 미디어에서 배제되는 우리 시대의 중요한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는 자리다.

▲ 26일 시작한 인디다큐페스티발2015는 총 35편의 국내신작전 상영작을 비롯해 국내 다큐멘터리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 정교진

인디다큐페스티발2015는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오는 4월 1일까지 열린다. 다큐멘터리의 사회적 발언에 주목해 우리의 현실과 문제의식을 나누는 자리인 ‘다큐멘터리 발언대’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바다에서 온 편지>는 3월 31일 저녁 8시, 인디스페이스에서 영화 상영과 함께 GV(Guest Visit·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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