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션]미디어 속 '하녀' 엿보기

 

 
 
썬 : 쿠! 어제 내가 부탁한 건 다 해놓았니? 내가 굉장히 예의바르게 부탁한 것 같은데. “이것 좀 해주세요~” 하고.

쿠 : 남에게 예의바르게 대하면, 겉으로는 남을 높여주는 것 같지만 사실 내가 더 높아질 수 있는 거랬어. 영화 <하녀>에서 봤어. 하녀 은이(전도연)가 주인집 딸 나미(안서현)에게 “너는 친절해서 참 좋아”라고 말하니까 나미가 그렇게 답하잖아. 왠지 썬도 날 하녀 대하듯 그런 생각으로 말한 거 아니야?
 
썬 : 네가 그 말 할 줄 알았다. 그런 건 아니고, ‘하녀’이야기 꺼내려고 너한테 영화 대사 한번 써 본거야. 쿠도 <하녀>를 봤다고 하니 더 잘됐네. 그렇다면 우리 오늘은 ‘하녀’라는 키워드로 이야기해보자. 하긴 이정재와 전도연의 베드신이 야하다느니, 대사가 선정적이라느니 하면서 개봉 전부터 이슈가 됐던 작품이었으니까, 트렌드에 민감한 쿠가 안 봤을 리 없지.
 
쿠 : 얼마 전 임상수 감독이 칸에서 빈손으로 쓸쓸히 돌아오긴 했지만,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개봉 6일 만에 국내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하더군. 앞으로도 계속 이슈가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 영화 <하녀>
썬 : 영화 <하녀> 때문에 이 캐릭터가 이슈가 됐지만, 잘 찾아보면 영화 뿐 아니라 TV에도 ‘하녀’로 볼 수 있는 캐릭터가 많은 것 같아. 종영한 <지붕 뚫고 하이킥>의 신세경도 그렇고, <오 마이 레이디>의 채림, <자이언트>의 황정음까지 은근히 ‘하녀’가 많이 등장하잖아? 가사도우미라든가 식모도 하녀와 같은 개념이라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쿠 : 그러게 말이야. ‘하녀’라고 명명하지는 않지만, 과거 하녀들이 했던 역할을 그대로 하고 있으니까. 이렇게 하녀 캐릭터가 많이 보이는 이유는 뭐지?
 
썬 : 아무래도 극적 필연성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렇잖아, 돈 많은 남자주인공과 가난한 여주인공이 만나기 위해서는 분명 어떤 장치는 필요하니까.
 
예전 수많은 드라마들이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우연히 만났다면, 최근에는 하녀나 식모로 들어간 여성이 남자주인공과 만난다는 설정을 장치해 놓는 것 같아. 하녀로 들어간다는 설정을 해 두는 것이, 우연히 만나 한눈에 뿅 하고 반한다는 것보다는 현실적인 것 같은걸. 특히 로맨스를 이어가는 드라마라면 두 주인공의 만남은 필수적이잖아. 얼굴을 봐야 사랑도 싹트고, 이야기도 이어 갈 거고. 그런 면에서 하녀는 남자주인공과 한 집에서 실든 좋든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캐릭터로 봐야 하는 거잖아.
 
쿠 : 현실성 있는 스토리 전개를 위해서 하녀 캐릭터를 썼다는 거구나? 그러고 보니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신세경도 주인집의 지훈, 준혁과 로맨스가 있었고,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꽃보다 남자>에서 금잔디도 구준표 집에서 가정부 일을 했더랬지. <파리의 연인>도 그랬고.
 
썬 : 응. 김기영 감독의 <하녀>에서도 “집안에서 부인보다 하녀의 역할이 더 크다”고 말하거든. 매끼 밥을 챙겨주는 사람도, 자신의 옷을 빨래해주는 사람도, 집에 들어와 맞아주는 사람도 하녀라는 거야. 이만큼 자신에게 관여하고 있는 이성을 매일 본다면, 자연스럽게 연애감정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쿠 : 그렇지만 단순히 그것만의 이유는 아닐 거 같아. 오히려 난 ‘빈익빈 부익부’가 첨예하게 드러나는 오늘날, 빈부에 따른 신분의 고착화를 고발하는 것 아닐까 싶어.
 
썬 : 미디어에서 하녀가 현대사회에서 ‘신분’을 상징한다고 보는 거구나?
 
쿠 : 그렇지. 영화 <하녀>에서 ‘아더매치’라는 말이 나오잖아. 아니꼽고, 더럽고, 매스껍고, 치사하다라면서. 영화 속 하녀 병식(윤여정)의 입으로 ‘하녀’의 성격을 가장 함축적으로 전달했지.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더매치한 상황은 꼭 하녀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냐. 직장이든 어디든 현대인들 역시 언제나 아더매치하다고 느끼니까. 그 아더매치하다고 느끼는 사람과 느끼게 하는 사람의 관계, 미디어에서는 그 계급성을 ‘하녀’로 표현한 것 같아.
 
썬 : 나도 비슷한 생각이야. 하녀만큼 부리고, 부림당하는 것이 확실하게 나눠져 있는 캐릭터도 없으니까. 하녀를 부리는 주인들은 하나같이 경제력이 빵빵한 엘리트들이잖아, 이런 것들이,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사회에 고착화 되어있는 신분의 단면을 나타낸 것 아닌가 싶어.
 
쿠 : 소득의 양극화로 역할이나 지위의 차이가 더 강화되고 있다는 거야?
 
썬 : 이를테면 이런 거지. 최근 사법고시 합격자 중에 외고 출신이 많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 굳이 외고가 아니더라도, 명문고 출신들 중 다수가 흔히 말하는 스카이 대학에 입학하잖아, 이들은 졸업 후 사회에서 요직을 차지할 가능성도 클 거고. 요직에 앉아있을수록 벌어들이는 수입도 많고, 그 수입으로 자녀들에게 더 많은 교육도 시킬 수 있지. 그 자녀들이 또 외고, 스카이를 가고, 요직에 가고. 뭐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고착화 된 것 같아. 이런 게 귀족이 아니고 뭐겠어? 결국은 이 귀족집단이 하녀를 부리게 되는 거고. 만인은 평등하고,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가진다고 헌법에 명시해놨지만 사실 자본과 권력 앞에서 아더매치하지 않고 자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될까?
 
▲ 드라마 속 하녀캐릭터. 왼쪽이 <자이언트>의 황정음, 오른쪽이 <오!마이 레이디>의 채림.
쿠 : 그런데 말이야. 미디어 속 인간관계가 현실에 없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엔 조금 과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영화 속에서는 ‘하녀’를 부리는 이들이 ‘하녀’를 그들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잖아. 요즘 세상에 그게 가능한 일일까. ‘하녀’가 돈과 권력 앞에 좌지우지 될 수 있다는 발상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진 않니. 고용하는 것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고용했기 때문에 하녀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는 생각이 위험한 것 같아.
 
썬 : 그러고 보면 드라마에 그런 모습이 많이 나타나는 것 같아. 얼마 전 드라마 <자이언트>에서도 집 주인이 가사도우미인 이미주(황정음)에게 얼굴에 물을 끼얹으며 모멸감을 주더라고. 그런데도 이미주는 아무 말도 못하고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쿠, 네 말처럼 과하다곤 하지만, 그래도 사회에 존재하는 모습이니까 자꾸 TV에 보이는 것 아닐까?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패륜녀 사건처럼. 학교에서 고용된 청소부 아주머니에게 심한 말을 하면서 청소하라고 닦달했던 그 여학생 말이야, 쿠도 알고 있지?
 
쿠 : “우리가 돈 주는 건데 왜 안 치우냐”고 패륜녀가 말한 거 말이지? 그 여학생은 돈으로 이뤄진 고용관계를 신분관계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 돈 때문에 그들은 피고용인이 된 것뿐인데, 고용하는 사람은 ‘그들을 고용했으니 마음껏 부려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 고용관계로 묶인 관계에서 고용된 사람은 철저히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건가?
 
썬 : 굳이 신분상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고용하는 사람들이 고용된 사람들에게 ‘부리거나 사용한다’는 마음을 갖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걸지도 몰라. 지금 우리사회에선 정확히 명시된 하녀는 없을지언정 고용관계에서 을의 입장인 사람에게 이런 마음을 갖게 되는 거라고. 그렇게 본다면 <하이킥>의 신세경이 “죽자고 ‘신분의 사다리’를 올라가면 그 밑에 다른 누군가가 있을 거 같아 슬프다”고 말한 것도 이런 부분과 연결해 생각해볼 수 있겠어. 신분의 사다리를 올라간다고 해도 자신을 대신해 ‘부림당하고 사용되는’ 또 다른 하녀가 생길 테니까. 

쿠 : 그래도 자신같은 사람을 만들기 싫다며 신분상승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포기해버리는 세경의 입장은 모순이 있다고 봐. 세경의 입장에선 자신 신분에 순응하는 것도, 신분 상승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것도 마음이 아픈 걸 거야. 그래서 지금 신분으로 사는 것은 괴롭지만, 신분상승을 포기하겠다고 생각한 걸 테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체제에 적응하려고 할 텐데 말이야.

▲ 삶의 방식이 다른 '병식'과 '은이'
썬 : 임상수의 <하녀>에서 또 다른 하녀 병식이 그랬던 것처럼? 하긴, 병식은 그 집안에서 일해주고 받은 돈으로 아들을 검사 자리에 앉히잖아. 영화에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병식 역시 누군가 ‘찍’소리를 내주길 바라지만 정작 본인은 그럴 자신이 없어 보여. 은이를 응원하고 도와주는 듯하다가도 자신의 몫을 챙겨야 하는 자리에서는 은이를 배반하거든. 그 체제에 순응하는 선에서 돌파구를 만드는 거야. 아들을 검사 자리에 앉힘으로써 ‘신분의 사다리’를 올라가려는 생각 같은 것 말이야. 세경처럼 포기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적응하는 사람들을 현실에서 훨씬 더 많이 볼 수 있으니까.
 
쿠 : 같은 하녀이면서도 캐릭터들은 다 다르구나. 예를 들어 영화<하녀>의 은이가 불이라면 <하이킥>의 세경은 물 같은 이미지랄까. 애석하게도 둘 다 작품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죽는 방식에서 그들의 성격이 잘 나타나있는 것 같아. 은이는 불에 타 죽고, 세경이는 빗길에 차사고로 죽고. 어쩌면 은이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지만, 돈으로도 움직여지지 않는 ‘불’같은 캐릭터이기도 해. 불은 가까이 다가갈 수 없으니까.
 
▲ '신분의 사다리'를 올라가지 못했던 <지붕 뚫고 하이킥>의 신세경. 그녀는 '물'같은 존재였다.
썬 : 그렇다면 세경이는 ‘물’이겠구나? 이순재 가족들과 섞여서 살아가려면 물처럼 유연해질 수밖에 없었을 거야. 하녀로써 ‘주인집 가족’이란 그릇에 담겨 그 모양에 맞춰진 물처럼.
 
쿠 : 응. 둘은 물과 불처럼 극단의 입장에 서 있으니까, 아마도 그 중간쯤이 대부분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일 것 같다. 병식처럼 말이야.
 
썬 : 어떤 모습을 했든지 말이야, 미디어는 이런 계급의 욕망을 건드리며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 같아. 표현한 내용이 불합리한 모습을 나타내든, 신분을 뛰어넘는 로맨스를 보여주든 간에 말이지. 분명 이런 계급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오늘날 사회이고, 창작자들은 그것을 예민하게 잡아내서 미디어에 나타낸 거고.
 
쿠 : 흥미로운 생각이네. 미디어에서 다루는 ‘하녀’를 우리 나름대로 살펴봤는데, 소감이 어때?
 
썬 : 음, 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봤었는데, 이렇게 쿠와 이야기를 하고 보니 미디어에서 무언가를 표현할 때는 그만한 배경이나 이유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쿠 : 그렇지? 어느 시점에서 특정한 캐릭터가 만들어진 것은 따져볼 만한 일이라니까.
 
썬 : 그나저나 쿠! 자꾸 다른 이야기 하지 말고, 내가 해 놓으라는 거 다해놔! 이제 예의바르고 뭐고 없어!

선희연/구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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