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김선수 '노동을 변호하다'

지난해 8월, 대법원은 철도노조의 파업에 대해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고 판결했다. 2009년 이명박 정부는 공기업 선진화 방안이라는 이름 아래 철도구조조정을 시행했고 노조는 이에 반대하는 파업을 벌였었다. 대법원은 판단이유에서 구조조정 반대는 노동조건 개선에 대한 요구가 아니고, 회사가 국민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필수공익사업에 대해 노조가 파업을 강행하리라고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사건의 변론을 맡았던 김선수 변호사는 대법원의 판결이 “규모가 큰 필수공익사업의 파업권을 사실상 봉쇄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형법상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에 의해 막힌 기막힌 상황이 오늘 우리나라 노조와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 철도노조 파업이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 저자는 “규모가 큰 필수공익사업의 파업권을 사실상 봉쇄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 flickr

노동자의 권리 수호를 위해 싸워온 역사적 기록

지난 27년간 ‘노동변호사’의 길을 걸어온 김선수 변호사가 지난해 10월 <노동을 변호하다>를 펴냈다. 그는 1988년 인권변호사로 잘 알려진 조영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했다. 조영래 변호사가 <전태일 평전>에서 표현했듯이 전태일 분신사건 이후 겨우 “사람들은 이제껏 아무도 발음하려고 하지 않던 ‘노동자’니 ‘노동운동’이니 하는 어휘들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던 엄혹한 시절이었다. 그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창립 멤버로 참여한 이후 노동 관련 변론을 맡으며 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위해 애써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취소소송,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무효 소송, 수서발 KTX 면허발급취소 소송 등 한국사회를 뒤흔든 굵직한 노동사건 변론은 모두 그의 몫이었다. <노동을 변호하다>는 저자가 그동안 노동변호사로 살아오면서 변론했던 23건의 노동사건들을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 <노동을 변호하다>는 정부와 기업의 노동 탄압에 맞서 정당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노동자들이 싸워온 역사적 기록이자 오늘 이 땅의 노동현실을 드러내는 처절한 민낯이다.

저자는 노동이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기준이라고 인식한다. 인류의 역사가 곧 노동의 역사라는 점에서 노동의 주체인 노동자는 인류 역사의 주체이자 사회의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노동자는 노동의 가치를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또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전제하는 시민법이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반성에서 시작된 노동법의 역사를 짚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을 가진 자본가는 영향력이 점점 강해졌고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 힘이 약해졌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지위는 점점 격차가 벌어져 양극화가 초래됐고 더 이상 노동을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를 지속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노동자를 보호함으로써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등장한 노동법이 오늘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묻는다.

이익은 누리고 책임은 회피하는 사용자들

1989년 골프장 캐디들의 노동조합 설립신고 소송은 노동기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일해야 했던 캐디들은 권익 옹호를 위해 노조를 설립하고 노조 설립을 허가해달라는 행정소송을 벌였다. 변론을 맡은 저자는 채용 여부와 교육을 회사가 결정하고 시행했으며, 회사의 지휘명령에 따라 일했기 때문에 캐디와 회사 사이에 ‘사용종속관계’가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노동조합법상 이들이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전개하기 위해 그는 노동법상 근로자 개념과 그 범위를 깊이 있게 연구했다.

▲ <노동을 변호하다> 표지 ⓒ 오월의봄

마침내 그는 승소판결을 얻어내지만 대법원이 3년 3개월 만에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는 바람에 소송 당사자들은 이미 회사를 떠났고 실질적인 권리 구제가 이뤄지지 못했다. 그는 대법원이 판결을 미루는 것은 국민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고, 기본권 보장 기관인 대법원 본연의 직무를 유기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아직까지도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택배 및 퀵서비스 기사, 레미콘 자차 기사 등은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대법원이 이들을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로 떠오른 비정규직 문제도 그의 주된 관심사였다. 저자는 사용자가 노동을 상품으로 취급한 대표적인 사례로 시그네틱스 주식회사 경영해고 사건을 꼽는다. 회사는 공장을 이전하면서 직접고용으로 인한 비용 감축을 위해 노동자들을 제3의 회사로 고용승계하려 했다. 노동자들이 이를 거부하자 회사는 이들을 해고했고 저자가 해고무효소송 변론을 맡았다. 그는 기업의 노동조합에 대한 적대적인 인식과 ‘근로자 사용으로 인한 이익은 모두 누리면서 사용자로서 책임을 회피’하는 간접고용의 문제점을 지적해 재판에서 승소했고 노동자들은 회사에 복직할 수 있었다.

포기할 수 없는 노동변호사의 꿈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았지만 800만 명(노동계 추산)에 육박하는 비정규직은 여전히 노동기본권 사각지대에서 불합리한 대우로 고통받고 있다. 저자는 한국사회가 오랫동안 풀지 못한 노동문제들은 정부와 기업이 노동자를 경제성장을 위해 투입되는 생산요소 정도로 취급해온 탓이라고 지적한다. 노동의 가치가 평가되지 못하면서 노동자들은 양극화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려왔고 인권과 복지는 희생되고 있다는 것이다. OECD는 지난해 12월 “회원국들은 1985~2005년 악화된 소득불평등으로 인해 이후 1990년~2010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최대 10%포인트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소득불평등 심화가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란 증거다.

저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노동자에 대한 정부와 기업, 그리고 사회가 가진 인식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비정규직은 양산됐고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은 비정규직의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방향이 아닌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파견 허용 업종 확대 등 오히려 비정규직 수를 늘리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저자는 달라지지 않는 노동의 지위를 보며 답답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는 노동변호사가 된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그는 여전히 노동자가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세상을 꿈꾼다.

“이 땅의 노동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고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위해.”(머리말 중)

노동과 자본의 줄다리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기울어진 경기장에서 약자의 편에 서서 싸워온 저자는 다시 희망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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