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이상이 ‘복지국가가 내게 좋은 19가지’

지난 연말과 연초에 걸쳐 ‘증세’와 ‘복지’가 국가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담뱃값 인상은 ‘꼼수증세’란 비판을 받았고, 연말정산방식 변경으로 봉급생활자의 세 부담이 늘어난 게 ‘사실상 서민증세’라는 불평이 쏟아졌다. 지난 1월 인천 송도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은 무상보육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교사의 자질검증에 소홀했던 탓이 크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해 국세가 정부 계획보다 11조 원 가까이 덜 걷히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재정부담이 큰 무상복지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는 기조를 재확인했다.

왜 한국 여성들은 ‘출산파업’을 벌이나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인 이상이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012년도에 낸 <복지국가가 내게 좋은 19가지>는 이런 혼란이 빚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복지 현주소를 냉정하게 짚어준다. 우리나라에서 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아이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은 2011년 기준 1.24로 세계 최저수준이다. 아이 키우기가 힘들어 여성들이 출산을 기피하는 탓이다.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국공립어린이집 비율이 우리나라는 전체 어린이집의 5.2%밖에 안 되고 민간보육시설은 비싸거나 이런저런 사고로 불안한 경우가 많다.

▲ 스웨덴에서 전체 보육시설의 80%는 경험 많고 안정적 대우를 받는 보육교사가 있는 공공시설이다.ⓒflickr

반면 스웨덴의 여성들은 회사 눈치 안 보고 1년 6개월의 육아휴직을 쓸 수 있으며, 직장으로 복귀할 때 아이들을 최고의 보육서비스를 보장하는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다. 스웨덴에서 전체 보육시설의 80%는 경험 많고 안정적 대우를 받는 보육교사가 있는 공공시설이며, 나머지 20%의 민간보육시설도 지방정부의 철저한 관리를 받는다. 보편적 무상보육을 국민의 권리로 보기 때문에 시설 이용에 경제적 장벽은 없다.

스웨덴은 노동생산성을 높여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국민 경제 전체의 역동적 성장을 도모하는 정책을 추구해왔다. 완전고용 정책, 연대임금 정책, 보편적인 사회보장 정책으로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도 이뤘다. 완전고용 정책은 누구에게나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도록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며, 연대임금 정책은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사람들도 평균적 생활수준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임금 격차를 줄여주는 것이다. 보편적 사회보장은 재해와 질병, 실직 등 인생의 위기 상황에서도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정책이다. 그래서 스웨덴 국민들은 대부분 불안에 떨지 않고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다.

구멍 숭숭 뚫린 사회안전망, ‘국민행복도’ OECD 꼴찌

반면 우리나라 복지 체제는 미국식의 잔여주의 선별적 복지 시스템이다. 노동 능력이 없는 극빈 계층을 소득 및 자산조사를 통해 선별한 뒤 이들에게만 최저 생계를 보장해 주는 것이 뼈대를 이룬다. 지난 1989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돼 초등학교 의무교육과 함께 보편적 복지의 외형을 일부 갖췄지만 실질적인 보장률 등을 따지면 매우 미흡한 수준에 그쳤다. 1997년 경제위기를 계기로 김대중 정부가 복지 제도를 확충하면서 통합의료보험제도인 현행 국민건강보험과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업재해보상보험 등 이른바 4대 보험 체계가 틀을 갖췄다. 그러나 건강보험을 제외한 3개 보험의 경우 비정규직 근로자 등 전체 가입 대상자의 1/3이상이 제외되는 등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저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행복시대’를 내걸고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한 2013년 이후의 자료들도 전반적인 복지수준이 개선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지난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 비율은 10.4%로 조사대상 OECD 28개국 중 꼴찌였다. 회원국 평균은 21.6%였다. 2013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복지종합지수의 국제비교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OECD 34개 회원국 중 ‘국민의 복지충족도’는 우리나라가 31위, ‘국민행복도’는 33위를 기록했다. 경제는 심하게 양극화돼 있는데 국가의 복지지출이 빈약하니 국민의 복지충족도가 낮고 따라서 국민행복도 역시 낮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 막 걸음을 뗀 무상보육 등을 되돌리자는 주장이나 증세 없이 복지 확대가 가능하다는 말은 모두 현실을 외면한 억지라고 할 수 있다.

시장임금 보완할 사회임금 높여야

▲ 이상이의 <복지국가가 내게 좋은 19가지> 표지. ⓒ메디치미디어

‘복지전도사’를 자처하며 시민단체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와 복지국가국민운동을 이끌어온 이 교수는 스웨덴 등 유럽 복지국가들처럼 우리도 ‘사회임금’의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자가 노동력을 판매한 대가로 받는 ‘시장임금’과 달리 사회임금은 의료, 보육, 교육, 주거 등 생활 필수영역에서 현금이나 사회서비스 등으로 보편적 국가지원을 받는 것을 말한다. 복지제도가 발달한 선진국일수록 사회임금이 가계소득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면서 시장임금 차이로 인한 소득양극화를 완충해주고 있다. 저자는 이처럼 공공성에 기반을 둔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들이 세금과 사회보장 기여금 등을 더 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복지 후진국으로서 ‘저부담-저급여’ 체제에 머물러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경제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의 주장대로 우리가 적게 내고 적게 보장받는 복지후진국을 벗어나 유럽형 보편 복지국가로 나아가려면 이제 제대로 된 증세논쟁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복지는 국가의 시혜가 아니라 국민의 권리로서 보장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룬 뒤, 누구부터 어떻게 세 부담을 늘려갈 것인지 솔직하고 진지한 토론을 벌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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