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불패] 올해 농업보도 무엇을 남겼나

올해도 농업과 농촌 관련 이슈들이 많이 터져 나왔다. 구제역, 결혼 이주여성 학대, 쌀 재고와 대북지원, 배추파동과 농협개혁 문제는 그 일부이다. 이렇게 불거진 농업과 농촌 문제는 그 자체로 주요 이슈인 동시에 다른 영역과 연결된 한국사회의 주요 현안들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우리 언론 대부분은 문제가 터졌을 때 잠시 실태를 보도하고 대증요법을 제시했을 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도 매우 소홀했다. 그나마 다행스런 점은 몇몇 언론이 우리 농업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외면 받아온 ‘오래된 현안’이 다시 공론장으로 들어온 걸까? 타 언론사의 농업과 농촌 관련 기사 프레임과 정부정책을 비판하면서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이 그리는 바람직한 농촌사회와 농업의 형태는 너무나 판이했다. 농업보도를 둘러싼 보혁논쟁을 정리하면서 시사점을 모색해 보았다. <편집자>

<매경> ‘아그리젠토 코리아’로 농업에도 시장논리를...

<매일경제>는 지난 3월, ‘돈 버는 농업’을 만들기 위한 로드맵을 발표했다. 5개월간 10여 명 기자가 투입돼 농촌과 농업의 문제와 대안을 찾아가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그렇게 나온 것이 <매일경제>의 보고서 ‘아그리젠토 코리아, 첨단 농업 부국의 길’이었다. 우리 농업을 살리려면 시장논리를 도입하여 농기업을 육성하고 농업 수출국가로 발돋움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중앙 언론사에서 나온 대형 농업 어젠다는 곧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올해 몇 차례 열린 농업관련 간담회나 토론회에서는 ‘아그리젠토 코리아’에 대한 전문가들의 코멘트가 이어지기도 했다. 최근에는 새만금에 농산업특구를 조성하자는 방안을 정부가 추진 중이라는 뉴스도 나왔다. 새만금의 농산업특구 육성은 <매경>이 ‘아그리젠토 코리아’에서 제시한 방안이기도 하다. 

 ▲  <매일경제>의 ‘아그리젠토 코리아’ 관련 ‘첨단 농업 부국의 길’ 시리즈 (3.26).

<매경>은 보고서에서 ① 쌀 맹신주의 ② 나눠먹기식 보조금 ③ 유명무실한 경자유전 ④ 반개혁적 농업관계 기관 ⑤ 의존적 농민의식을 우리 농업이 퇴보한 원인으로 꼽았다. 이후 <매경>은 사설에서도 이런 문제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지난 8월, 쌀 재고량이 적정 수준인 70만톤의 두 배를 넘게 되면서 쌀값 폭락문제가 불거졌을 때 <매경>은  농정당국에 다음과 같이 주문했다.

"정부는 논을 다른 고부가가치 용도로 전환하도록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쌀 직불제를 축소ㆍ폐지하고 농지를 다른 용도로 전환하는 농가에 대해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헌법에 규정된, (농사를 짓는 사람만이 농지를 소유하는) 경자유전 원칙을 고치고 농지임대차를 합법화해 전문적인 기업농이 많이 생기도록 해야 한다." (8.31)

쌀 재고해결책에 대한 <매경>의 주장은 간단했다. ‘벼농사 지으면 보조금 주는 쌀 직불제 때문에 농민들이 너도나도 벼농사에만 몰리게 된다. 따라서 보조금을 폐지하고 경쟁력 없는 농부들은 퇴출시켜 쌀 생산을 줄인 뒤, 경쟁력 있는 기업농을 육성하자’는 말이다. 올 초 ‘아그리젠토 코리아’에서 언급했던 주장들이 쌀 재고 문제의 해법으로 제시된 것이다.

‘돈버는 농업’을 위한 <매경>의 주장은 총론만 뭉뚱그려 제시하는 수준이 아니라 각론에 더 강하다. '종자 메이저를 만들자' '수출 1조원 농기업 10곳을 육성하자' '해외농업개발공사를 만들자' '한식 세계화 전략을 디테일하게 짜자' '주류산업의 규제를 줄이고 국세청 소관에서 농식품부로 이관하자' 등 세부적이고 다양한 주장을 제시했다.

각 세운 <한겨레>, 가족농 살려야...

▲ <매경>‘아그리젠토 코리아’를 비판한 <한겨레> 김현대 기자의 칼럼(7.26).

날카롭게 각을 세운 곳은 <한겨레>였다. <한겨레>에서 농업과 농촌 문제를 담당하는 김현대 기자는 7월 26일치와 10월 18일치 칼럼에서 농업을 바라보는 보수매체의 시각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들이 수행하는 ‘이데올로기 전쟁’의 목표는 헌법상의 경자유전 폐지와 농업보조금 삭감, 그리고 가족농의 조기 퇴출이다. 그렇게 해서, 값싼 농지를 손쉽게 공장 터로 바꾸자는 것이다. 기업농의 규모화 경작으로 수출 경쟁력을 높이자는 것이다. 농촌의 다수를 차지하는 소농과 고령농은 이들에겐 ‘산업 구조조정’의 대상일 뿐이다." (10.18)

소농을 살리는 방안에 대한 기사들도 눈에 띄었다. 유기농업으로 고소득을 올린 소규모 농가를 취재(6.29)하기도 했고, 유기농업 선진국인 캐나다를 방문해 기획기사(9.1)를 쓰기도 했다. 10월 22일치에 실린 '농가소득 올리고, 우리농산물 지키고' 기사처럼 여러 가족농들이 뭉쳐 영농조합법인을 만들고 상당한 정도의 농가소득을 유지하는 데 성공한 사례를 다루기도 했다.

가족농과 협동조합, 영농조합에 주목하는 <한겨레>의 농촌 기사들은 김대중 정부 시절 소농정책을 펴온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의 견해와 비슷하다. 김 전 장관은 김현대 기자와 캐나다 유기농업 현장을 돌아다니며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가족농이 농정의 기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가족농을 전문화하고 협동화하면 대농의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대규모 경영의 이점을 확보해줘야 합니다. 기업농을 도입하는 것은 대안이 아닐뿐더러, 기존의 가족농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캐나다 유기농 현장을 가다’ 9.1) 

<한겨레>는 '농업계의 삼성'이라 할 수 있는 농기업인 ‘하림’의 김홍국 회장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하림은 20여개 계열사 총매출이 3조원을 넘어서는 한국의 ‘농업재벌’이다. <한겨레>는 김 회장에 대해 “한 눈 팔지 않고 농기업의 새로운 성공모델을 이룬 ‘스타’로 10대부터 최고경영자로 나선 사업가답게 나름의 소신과 일관성이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농기업이 아니라) 협동조합이 중심이 돼야 그 성과가 농가 소득증대로 착실하게 연결될 수 있지 않냐"면서 비판적인 시각도 드러냈다.

사실 그동안 <한겨레>에서도 농업․농촌기사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다. 농업개방 문제에 대한 전문가 대담(선진대안포럼 ‘농업, 벼랑에 몰린 오래된 미래’ 2006.4.10)이나 기자들이 농활을 가서 농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기사(한겨레21 '여름농촌 절망 보고서' 2008. 8)들이 이따금 눈에 띌 정도였다. <한겨레> 경제부기자가 한살림, 생협 같은 도농직거래 단체에 관심을 보이며 기사화하곤 했지만 농촌과 농부들의 목소리를 담기 시작한 것은 김현대 기자가 지역 선임기자로 뛰어들면서부터였다.

보수/진보 농업담론 틀에서 벗어난 <연합>

농업 문제를 둘러싸고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이 날카롭게 대립하는 가운데, <연합뉴스>가 올해 농업 관련 대형 기획 연재물들을 4건이나 내보내 눈길을 끌었다. ‘新농업’시리즈가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연재됐고, 곧바로 ‘농업현장’ 시리즈가 30여 건의 기사로 실렸다. 또 ‘농업진단’ 시리즈와 ‘농업, 해외서 길을 묻다’ 시리즈가 뒤를 이었다. '신농업' 시리즈가 농업경영에 성공해 고소득을 얻는 농가와 지역농협의 역할에 주목했다면, ‘농업현장’과 ‘농업진단’은 현재 우리 농촌이 맞닥뜨린 문제점들을 다양하게 복기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 <연합뉴스> 농업 기획 시리즈 ‘농업진단’.

가장 최근에 보도된 '해외서 길을 묻다'는 농업 선진국들의 성공사례를 보여주며 우리 농업이 배울 점에 대해 고민한다. 떠먹는 요구르트인 요플레를 탄생시킨 프랑스 지역농협을 소개하면서 "프랑스 농협이 한국 농협과는 달리 신용사업은 전혀 하지 않고 100% 경제사업만을 수행하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있다고 지적했다. 주요 현안이 발생하면 농민과 정부가 완충장치 없이 정면충돌하는 우리 현실에 비춰볼 때 프랑스의 농업회의소도 눈여겨볼만한 조직이라고 이 기사는 소개했다. 

<연합뉴스> 기획기사들은 보수/진보 담론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는 해외 농업강국들이 자국의 농업문제를 보수/진보 담론에 한정하지 않는 까닭이기도 하다. 보수언론들이 농업보조금 폐지의 성공사례로 드는 뉴질랜드 농업을 소개하면서도 보조금 폐지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뉴질랜드가 보조금 폐지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실시한 프로그램에도 초점을 맞춘다. "농정개혁 과정에서의 정부와 생산자단체의 대화와 타협, 부작용을 예상한 프로그램 실시, 지역 활성화를 위한 지역의 자발적 노력에 정부가 적극 협력한 점은 우리가 배워야 할 좋은 사례"라는 전문가 분석도 덧붙였다.

네덜란드는 시장경쟁 시스템을 중시하며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했지만, 그럼에도 농업 경영체의 95%는 가족농이며 협동조합이 유통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농업선진국의 현실은 농업·농촌 담론이 보수 또는 진보라는 한쪽 틀에만 머물 수 없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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