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뉴스] 을미년 설날 아침, 카메라에 잡힌 세태 변화

을미년(乙未年) 설날인 19일 아침, 각 가정마다 정성스레 장만한 차례상에서 ‘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만났다. 가진 것을 협력해 나눠 쓰는 ‘공유경제’의 정신에 따라 이웃끼리 차례 음식을 함께 장만한 경우도 있고, 가족들의 합의에 따라 차례를 없앤 대신 간소한 만둣국 아침상에 도란도란 둘러앉은 집도 있었다. 바나나나 한라봉 같은 외국산, 혹은 개량종과일이 당당히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통닭이나 사탕처럼 전통 차례상에 잘 오르지 않던 음식도 자유롭게 활용되는 모습이었다. 격식을 갖춘 제기 대신 일상적으로 쓰는 접시 등에 차례음식을 올린 가정도 많았다.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것은 세배를 하고 덕담을 나누는 가족의 정. <단비뉴스> 취재진이 전국 곳곳의 설날 아침 모습을 담았다.

▲ 주부 권정숙(54. 충북 청주)씨는 두 친구와 차례음식을 함께 장만했다. 요리솜씨가 좋은 권씨가 조리를 주도하고, 발이 넓은 두 친구는 품질 좋은 과일을 구해오는 등 조수 역할을 한 뒤 음식을 나누어 가져갔다. 권씨는 "서로가 넉넉한 부분을 공유했다" 며 "이웃을 '이웃사촌'을 넘어 '공유가족'이라 부를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 이성훈
▲ 종교적인 이유로, 혹은 가족 간의 합의에 따라 차례 및 제사를 지내지 않는 가정이 늘고 있다. 그래도 명절에 명절 음식이 빠지면 아쉬운 법. 경기도 부천의 구숙자(56)씨 집 역시 지난해부터 차례를 지내지 않지만 명절 음식은 만들어 먹는다. 설 떡국에 넣을 만두를 빚는 구숙자 씨와 조카딸. ⓒ 황종원
▲ 구숙자씨 가족이 한 상에 둘러 앉아 만두를 넣은 떡국을 먹고 있다. 차례를 지낼 때는 상 위에 각종 고기, 전, 나물 등이 놓였지만 지금은 떡국과 김치만 단출하게 올라와 있다. ⓒ 황종원
▲ 부산 남구 김용구(85)씨 집의 차례상. 바다를 낀 부산답게 대구로 만든 어전과 도미,민어 등 3가지 이상 생선이 상에 오른다. 전통적인 차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통닭, 사탕, 바나나 등도 놓였다. 편의상 제기를 사용하지 않고 일반 그릇에 차례음식을 담기도 했다. ⓒ 김선기
▲ 김용구씨의 손주들이 세뱃돈을 받고 즐거워 하는 모습.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은 덕담을 나누며 좀 더 웃을 일이 많은 새해가 되기를 기원했다. ⓒ 김선기
▲ 인천시 남구 관교동 박문규(59)씨 집의 차례상. 사업을 하는 박씨는 생활이 바빠지면서 차례상의 규모를 줄였다. 만두국, 잡채, 육전 등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을 뺐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가족들이 설에 잘 모이지 않아 많은 음식이 필요 없게 됐기 때문이다. 박씨는 “부모님 살아계실 때야 억지로라도 모였지만 먹고 살기 바쁘지 않냐"며 "다들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박진우
▲ 박문규씨의 부모는 한국전쟁 중 1.4 후퇴 때 아들과 딸을 북에 두고 온 한이 있는 분들이었다. 생전에는 차례상에 북한 음식을 많이 올렸다. 하지만 부모가 돌아가신 후 박씨네 차례상에서 북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건 이 녹두전 밖에 남지 않았다. ⓒ 박진우
▲ 차례상과 성주상(집을 지키는 신에게 올리는 상)을 함께 차린 서울 은평구 김상수(56)씨 집. 김씨는 차례상에 술 대신 콜라를 올린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전에 콜라를 좋아하셨기 때문이다. 제기를 쓰지 않았고 차례상의 음식 수가 줄었어도 성주상을 차리는 것만은 변하지 않았다. ⓒ 김재희
▲ 김상수씨와 아들 성현(23)씨가 차례를 모시고 있다. 성현씨가 성인이 되면서 할아버지 김근성(88)씨가 제주 자리를 아들, 손자에게 물려주었다. 김상수씨는 "올 한해도 잘 지낼 수 있게 조상님께 돌봐달라고 한다"며 "올해 큰 딸이 좋은 곳에 취직하고, 둘째 딸의 결혼이 무사히 진행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 김재희
▲ 대구시 달서구 용산동 김욱현(59)씨 집 차례상. 전통을 지키려는 성향이 강한 지역답게 대구·경북지역 제사상의 필수품목인 돔배기(상어고기)와 문어가 빠지지 않았다. 먹물을 품었다고 해서 글월 문(文)자를 쓰는 문어는 안동지역 제사와 잔칫상에 항상 올라간다. ⓒ 김봉기
▲ 김욱현씨 집 차례상에 육적과 어적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맨 아래 놓인 돔배기는 토막고기를 뜻하는 사투리에서 나온 이름으로, 토막낸 상어고기를 염장 숙성한 뒤 익혀 먹는다. 담백하면서 짭짤한 돔배기의 맛에 따라 각 집안의 요리 솜씨를 가늠하기도 한다. ⓒ 김봉기

 


* 이 기사의 취재에는 김선기, 이성훈, 황종원, 박진우, 김재희, 김봉기 기자가 함께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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