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수 보상비 100만원 받아도 오른 보증금 다 못내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 2부] ④ 지하셋방

 
지난 10월 15일 서울 양천구 신월 4동 한 허름한 아파트 단지. 15층 규모 아파트의 지하층 입구에서 몇 사람이 물에 젖은 이불과 가재도구를 밖으로 꺼내고 있었다. 지난 9월 기습폭우로 침수피해를 입은 이 지역 지하셋방에 복구를 도와주러 온 사회복지사와 공익요원들이었다. 복지사를 따라 지하계단으로 내려가 보았다. 몇 걸음 가지도 않았는데 ‘훅’ 밀려오는 악취에 숨이 막혔다. 곰팡이, 썩은 옷가지, 정화조 오물 등이 뒤범벅된 지독한 냄새에 정신이 혼미해져 서너 번이나 입구로 뛰쳐나와 심호흡을 한 후에야 겨우 집안에 들어설 수 있었다. 마스크와 장갑 등으로 중무장한 작업자들도 잔뜩 찌푸린 얼굴로 일을 하고 있었다.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문 앞에는 곰팡이 핀 이불과 옷들이 높이 쌓여 있고, 변기 바로 옆에 밥그릇과 수저, 전기콘센트 따위가 널브러져 있었다. 물에 잠겼던 가전제품들은 창자를 드러낸 물고기처럼 방치됐고, 장판이며 벽지는 얼룩덜룩 썩어 있었다. 작업자들이 벽지와 장판을 뜯어내고 새로 입히는 공사를 했다. 20~30년 전에 지었다는 아파트의 지하 방은 오후 네 시인데도 컴컴했다. 길 쪽으로 난, 초코파이 상자 두 개 크기의 창에서 가늘고 침침한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지하셋방은 '창살 없는 감옥'

폐지수집을 하는 이금복(59․가명)씨는 5년 째 이곳에서 살 고 있다. 아주 좁긴 하지만 방 두 칸에 화장실과 부엌이 따로 있어 혼자 살기에 그리 옹색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보증금 4백만 원에 월세 10만 원을 낸다. 하지만 지난 4월부터 보일러가 고장 나 쌀쌀한 날씨에도 난방을 할 수 없다.

“아무리 추워도 찬물로 씻어야 하니까 그럴 때 마다 절단된 손가락이 너무 시려요.”

이 씨는 이전에 살던 지하셋방에서 지난 2003년 화상을 입어 왼쪽 손가락 4개를 절단했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려 물을 끓이다 문지방에 걸려 넘어지면서 그만 펄펄 끓는 냄비에 손을 담갔기 때문이다. 장애도 있고 나이도 많아 이제 제대로 된 일자리는 찾을 수 없고, 정부의 기초수급지원을 받으며 폐지 수집으로 살아간다. 한 때는 알루미늄 틀을 만드는 금형사업으로 살 만 했던 적도 있었지만, 지난 92년 사업에 실패하고 가족과도 헤어지면서 혼자 지하셋방을 전전하고 있다고 한다.

▲  서울 양천구 신월 4동의 수해를 입은 지하셋방 ⓒ 한빛종합사회복지관 제공

서울 양천구 신월동의 오래된 아파트 지하셋방에서 역시 침수피해를 입은 김종섭(50대 초반·가명·무직)씨도 보일러 고장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보일러가 고장 난 지는 벌써 3년째. 그러나 아무리 집 주인에게 얘길 해도 ‘나 몰라라’ 였다. 2년은 잘 버텼는데 지난 1월 혹독한 추위속에서 왼발에 동상이 걸리고 말았다. 

“엄지발가락 양쪽 피부가 떨어져 나가 걸을 때마다 욱신거려요. 절뚝절뚝 다니죠. 보일러를 고치려고 알아보니 70만원은 줘야 한다는데, 그만한 돈이 없으니 그냥 지냅니다.”  

오랫동안 건설 현장의 일용직으로 일해 온 김 씨는 지난 2004년 무릎 인대와 발목을 다쳐 5급 장애판정을 받았다. 5차례나 수술을 하면서 모아 놓은 돈을 다 털어 썼다. 1년 동안 목발을 짚고 다니다 보니 엄지발가락에 특히 무리가 갔다. 그래서 무릎부터 발가락까지 성한 곳이 하나도 없고, 일을 할 수도 없다.

김씨는 1종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받아 정부에서 월 41만원씩 생활비를 받는다. 이 중 물리치료비로 20만원이 나가고, 월세 6만원과 전기료 등을 내면 월 10만원에서 15만 원정도 손에 쥐게 된다. 아침, 점심, 저녁을 인근 복지관에서 마련해 준 도시락으로 해결하기에 그나마 먹고 산다. 그는 물리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거나 일주일에 한 번씩 주민센터에서 나눠주는 쓰레기봉투를 받으러 가는 일 외에는 이 지하방을 잘 나가지 않는다.

▲ 김종섭(가명)씨가 살고 있는 지하셋방의 유일한 창문.  ⓒ 전은선

“창살 없는 감옥살이, 딱 그거예요.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더니, 이렇게 외롭고 쓸쓸할 수가 없어요.” 

김 씨도 한 때는 연립주택을 가진 가장이었다. 불행히도 아내가 사업을 벌였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집도 날리고, 아내와도 헤어졌다. 그는 이혼 후인 1996년부터 지하셋방 생활을 시작해 15년 째 ‘지하 살이’를 한다고 말했다. 지금 사는 곳은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6만원을 내는 방 하나, 화장실 하나짜리 집이다. 20년 된 낡은 아파트의 맨 아래인데, 부엌이 따로 없어 화장실의 세면대 물로 밥도 짓고 설거지도 한다. 세숫대야와 찜통그릇 등이 복잡하게 들어서 있는 김 씨 집 화장실엔 햇볕 한 조각 들어올 창도 없지만 빨아서 널어놓은 옷가지들로 벽면이 주렁주렁했다. 

공공임대주택은 '그림의 떡'

김 씨는 장성한 아들과 딸이 서울에 있지만,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라고 한다. 외롭게 사는 그의 소원은 지하셋방을 벗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주변 주택의 전세가 오르면서 이 방의 월세보증금도 덩달아 올랐다. 집주인이 보증금으로 200만 원을 더 달라고 했다. 정부에서 나온 수해지원비 100만 원을 집주인에게 고스란히 줬다. 그래도 나머지 100만원은 마련할 길이 없어 월 6만원씩 내던 방세를 9만원으로 올려 주어야 한다. ‘지하를 벗어나고 싶다’는 그의 꿈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 김종섭(가명)씨 집 입구에 쌓여 있는 젖은 옷과 이불들(좌), 이금복(가명)씨 집의 부엌(우)          ⓒ 전은선

이 씨와 김 씨처럼 반 지하, 혹은 지하층에서 살아가는 가구가 서울만 해도 전체 331만여 가구 중  10.7%인 36만 여 가구에 이른다. 통계청의 2005년 기준 조사결과다. 물론 이 중에는 위치만 지하일 뿐 주거 공간으로 크게 부족하지 않은 집도 있다. 그러나 보다 많은 지하층 거주자는 햇빛이 들지 않아 음습하고, 공기는 탁하고, 물난리라도 생기면 고스란히 피해를 당해야 하는 공간에서 심리적으로 위축된 채 살아가고 있다.

지난 9월 서울에 홍수가 난 뒤, 서울시는 반지하주택을 폐쇄하고 거주민을 위해 2018년까지 34만여 가구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하지만 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있는 1순위가 기초생활수급자와 한부모 가족으로 제한돼 있고 그 마저도 당장 공급가능한 물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대다수 지하층 주거자들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다.

“옆집 형님이 반 지하에 있다가 올해 초 임대주택에 들어갔는데 아주 깨끗하고 좋더라고. 그래서 나도 복지관에 물어봤는데 아직 조건이 안 된대요.”

일자리 의료 등 사회복지서비스 연계 필요

기초수급자인 이금복 씨도 주민센터에 알아봤지만 ‘더 고령자들이 많으니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만 들었다고 한다.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정희수 의원(한나라당)이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영구임대주택에 입주하기 위해 대기 중인 사람이 이미 전국적으로 6만 3천 341명, 대기기간은 평균 27개월이라고 한다. 1순위에서도 이렇게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면 대다수 지하 거주자들이 ‘햇빛’을 보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공공임대주택을 신속하게, 파격적으로 늘리는 정책 전환이 없다면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 될 것이다.
 
심신에 질병이 있는 지하층 거주자들은 일단 임대주택에 들어가더라도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한국도시연구소 홍인옥 연구원은 “지하셋방의 경우 독거노인이 많은데 소득이 없기 때문에 공공임대아파트의 임대료조차 부담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런 빈곤층에게는 단지 주거공간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와 의료 등 복지 서비스를 연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세명대 사회복지학과 박광덕 교수는 "주거와 함께 재활서비스, 직업훈련, 일자리 알선 등 종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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