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조명되는 천주교 ③] 그들은 왜, 어떻게 사제가 되나

“사실 신학교라고 하면 천사들만 사는 줄 아는데, 정작 가서 만나보면 그렇지 않아요.”

신학교 생활이 어떠냐는 질문에, 천주교 수원교구 신학생회 대표인 이승원 베드로(28)씨는 “보통 사람들이 사는 곳과 같다”며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고개를 살짝 틀어 웃었다. 그는 ‘이런 사람들이 신부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여기서 가장 문제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라는 판단에 이르게 됐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잣대로 남을 함부로 재단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연 나 같은 사람이 신부가 돼도 괜찮은가’하는 고민으로 돌아오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힘들어 하는 부분은 인성(人性)과 영성(靈性)이 모두 부족해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다. ‘외면하고 싶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바라보면 하느님이 강하게 다가온다’며 그는 정진의 각오를 다졌다. 가톨릭 사제가 되려는 젊은이들은 이처럼 자기 자신과 싸우며 결코 쉽지 않은 길을 오래오래 걸어야 한다.  

수많은 ‘이태석 신부’가 남긴 아름다운 향기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오복음 25장40절) 

영화 <울지마 톤즈>로 잘 알려진 이태석 신부는 아프리카 수단 톤즈에 병원과 학교를 세우고 원주민을 위해 헌신하다 지난 2010년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성경 말씀이 자신의 마음을 움직인 ‘아름다운 향기’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신부의 삶 역시 아름다운 향기가 되어 다른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이태석 신부님이 나온 <울지마 톤즈>를 본 적이 있는데요, 세상에 어려운 사람이 많은 걸 보고 신부가 사람들을 사랑해주고 도와주는데 강점을 가진 사람이란 걸 알게 됐어요.”

▲ 사제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조광희, 김형섭, 김산, 김용우 예비신학생(왼쪽부터). ⓒ 조수진

서울 동성고 3학년인 김산(19) 예비신학생은 이태석 신부의 삶에 이끌려 사제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함께 있던 김용우(19) 예비신학생도 “이 신부의 삶이 행복해 보였다”며 “그런 삶이라면 살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앞서 간 사제의 향기에 이끌렸든, 다른 개인적 계기가 있었든, 젊은이들은 이 남다른 길을 스스로 선택한다. 그러나 원한다고 해서 모두 사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톨릭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교구 성소국(聖召局)에서 운영하는 예비신학생 과정을 1년 이상 수료해야 한다.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남학생이 이 과정을 밟을 수 있다. 이를 수료하면 대신학교(大神學校)에 지원할 자격을 얻는다. 대신학교는 가톨릭 사제를 양성하기 위한 고등교육과정으로 한국에는 서울·광주·대구·수원·부산·대전·인천에 7개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이 있다. 지난 2013년 기준으로 전국의 신학생은 1264명이다.

대신학교 지원자격을 얻은 예비신학생은 서류평가와 면접, 교리시험을 거쳐 최종 합격여부를 통보받게 된다. 신학생 선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원자에게 성소(聖召), 즉 ‘거룩한 부르심’이 있는지 여부다. 자신에게 사제성소가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신학생들이 입학한 후에도 가장 고민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교수신부들은 매년 성소심을 열고 해당 신학생이 사제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논의한다. 성소심 결과 영성이나 인성 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휴학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게 하기도 한다. 

▲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위치한 가톨릭대학교 서울대교구 대신학교. ⓒ 구은모

대신학교는 학부 4년과 대학원 3년 등 총 7년 과정이다. 학부 2년을 마치고 동기들이 동시에 군복무를 한다. 여기에 예비신학생 과정을 더하면 통상 10년이 걸리는 과정이다. 신학교에서 1~2학년은 주로 교양과 신학·철학·성경의 입문과정을 학습하며, 3~4학년은 신학 전반을 집중적으로 공부한다. 대학원에서는 사제직무수행에 필요한 학문적·사목적 자질을 갖추게 된다.

단절과 묵상에 익숙해지는 시간 

대신학교 1학년은 많은 것에서 단절된다. 인터넷, 전화, 외출은 물론 매점이용도 불가능하다. 학부 1학년과 대학원 1학년은 각각 ‘영성의 해’와 ‘영성심화의 해’로 삼아 다른 학년보다 좀 더 차단된 채 영성생활에 집중하도록 돼 있다. 신학생들은 대부분 교내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일정한 시간표에 따라 함께 움직인다.  

일과는 오전 6시에 시작된다. 아침기도와 묵상을 마치면 7시부터 미사가 열린다. 미사가 끝나면 8시부터 아침식사를 하는데 식사시간에는 매번 식탁공동체가 운영된다. 식탁공동체는 식탁 하나에 신부와 신학생 6명이 골고루 섞어 앉아 각종 예절교육을 받고 대화하는 장을 말한다. 식탁공동체는 2주에 한 번씩 구성원이 달라진다. 

9시부터는 오전강의가 시작된다. 신학교의 성적은 절대평가라 학생들끼리 경쟁을 하지 않는다. 신학생들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꼬덱스(Codex)’라고 불리는 일종의 모범답안을 만들어 돌려보기도 한다. 성적에 따라 처우가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도록 재시험과 학생처장경고, 총장경고 등으로 엄격하게 성적관리를 한다.

오후수업을 마치면 저녁기도와 식사를 하고 7시부터는 묵주기도가 시작된다. 묵주기도는 묵주알을 굴리면서 예수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의 행적을 묵상하는 기도로 ‘로사리오(rosario)’라고 부른다. 묵주기도를 마치면 다음날 아침식사기도 전까지 ‘대침묵’이 이어진다. ‘대침묵’은 가톨릭에서 주님을 만나는 시간으로 여겨 철저히 침묵을 지키는 시간이다. 묵주기도 후에는 다 같이 끝기도와 묵상기도를 드리고 두 시간 가량 개인공부를 한 뒤 밤 11시에 잠자리에 든다.

▲ 한 사제가 서품을 받은 사제에게 안수기도를 하고 있다(좌). 최덕기 바오로 주교가 새 사제에게 축하인사를 건네고 있다(우). ⓒ 조수진

신학생들은 기숙사에서 네 명이 한 방을 쓰다 학부 4학년부터 독방을 갖는다. 좁은 방에 책상과 침대 등만 간단하게 구비되어 있다. 대학원 2학년인 이승원 신학생은 밤에 기도를 마치고 방에 혼자 들어갈 때 느껴지는 적막이 힘들다고 말했다.

“처음에 들어가서 불을 켜는 순간 ‘난 며칠만 혼자 불을 켜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평생을 이 적막을 견디며 나 혼자 들어가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죠. 그걸 깨닫는 순간, 내가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코린토1서 7장 34절은 ‘혼인한 남자는 가족과 주님으로 마음이 갈라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제는 하느님과 이웃을 온전히 섬기기 위해 평생 독신을 유지한다. 이승원 신학생은 그러나 자신이 느끼는 외로움이 신학생만의 특수한 감정은 아니라고 말했다. 누군가와 유대하고 싶고, 대화하고 싶고, 혼자 버려져 있고 싶지 않은 건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라는 얘기다. 빈방을 혼자 열고 들어가 느끼는 적막은 사제의 꿈을 좇는데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그는 덧붙였다. 

오직 말씀에 희망을 두고, 예수의 걸음을 따라 

지난해 12월 5일 오후 2시 경기도 수원시 정자동 주교좌성당에서는 수원교구 사제서품식이 열렸다. 이날 7년의 수련과정을 거친 신학생 13명이 사제서품을 받았다. 이들은 하느님과 교회에 절대순종을 맹세하는 ‘순명서약’과 성직자로서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약속하는 ‘사제서약’을 올렸다. 서품식은 보통 연말과 연초에 열리는데, 지난해에는 전국적으로 119명의 부제(사제가 되기 전 1년 정도 수행하는 직분)가 사제서품을 받았다. 

서품식 성인호칭기도 순서에는 ‘부복(俯伏)’이란 전례가 있다. 서품을 받는 사제들이 두 손등을 모아 이마에 대고 배는 땅에 붙인 채 두 다리를 뻗어 기도하는 것으로, 가장 낮은 자세로 하느님을 경배하고 세상에 봉사하겠다는 의미다. 이날 사제서품을 받은 신동호 다윗(33) 신부는 부복을 하며 ‘예수님을 섬기듯 다른 모든 이들을 섬기며 가장 낮은 곳에 엎드려 죽을 수 있기를’ 기도했다고 말했다.

▲ 부복은 땅에 완전히 엎드려 기도하는 것으로 가장 낮은 자세로 하느님을 경배하고 세상에 봉사하겠다는 의미의 동작이다. ⓒ 천주교 수원교구

“언젠가부터 사제의 존경받고 인정받는 모습만을 바라보고 왔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사제서품을 준비하면서 사제는 그런 것만 좇는 것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게 됐습니다. 앞으로 예수님처럼 희생하는 삶, 이타적인 삶을 살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제는 서품을 받으면서 평생 가슴에 품고 길라잡이로 삼을 성경구절을 ‘서품성구’로 정한다. 신동호 신부는 자신이 앞으로 바랄 것이 재물이나 인기, 영광 따위는 단연코 아닐 것이라며, 하느님의 말씀에 희망을 두고 평생 살아가기 위해 시편 130장 5절 ‘나 주님께 바라네, 내 영혼이 주님께 바라며 그 분 말씀에 희망을 두네’를 서품성구로 정했다고 말했다.  

▲ 두봉 레나도 주교는 조건 없는 순수한 사랑을 강조한다. ⓒ 구은모

“신부는 오늘을 사는 예수님입니다. 신부가 된다는 건 그의 제자가 되는 것이니 그와 같은 태도로, 그와 같은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두봉(Rene Dupont) 레나도(87) 주교는 지난해 12월 31일 경북 의성의 사제관에서 가진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사제를 꿈꾸는 이들과 젊은 신부들에게 ‘예수 같은 사람이 되라’고 강조했다. 두봉 주교는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이던 1954년,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에 와서 60년째 사목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사제의 모습에서 예수의 모습이 떠오르고 느껴져야 한다”며, 여인이 자기 아이를 대하듯 사제는 무조건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결, 순명, 청빈의 길을 믿음 안에서 함께 

“누군가에게는 도움을, 누군가에게는 질책을 받으며 결국 이 길을 선택하게 됐는데, 그것이 모두 주님께서 함께 해주셔서인 것 같습니다. 신학교에 들어와서 너무 즐거워요. 힘들기도 하지만 동기들과 함께 있어서 행복합니다. 함께하는 동기들과 선배들 모두 다 같이 사제가 됐으면 너무 좋겠습니다.”

수원 가톨릭대학교 1학년인 정풍모 마르코(23) 신학생은 “동기들과 ‘하느님이 정말 계신지’ 의문도 가져보고, 선배들에게 신앙에 대한 조언도 구하고, 신부님들과 함께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모든 과정과 시간이 기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때로 힘들고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사제가 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 여긴다.

▲ 수원 가톨릭대학교 2014학번 신학생들. ⓒ 김효영 미카엘 신부

신학생들은 자신들이 ‘다른 세상의 삶’을 좇는 게 아니며, 우리 모두가 잘 알고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들이 믿는 가치를 실천하며 살아내려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신학생들은 또 스스로 사제의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인지, 사제가 가야할 바른 길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회의하며, 모자란 부분은 기도와 행동으로 메워간다고 말했다. 정풍모 신학생은 예수가 가르친 정결·순명·청빈의 권고, 즉 ‘복음 삼덕(福音三德)’을 따르는 사제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저는 다른 것들로부터 정결을 지키고 주님께 온전히 나를 내어맡기며, 주님의 말씀을 따르며 살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청빈하고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가족, 재산, 명예 등 모든 욕망을 내려놓고 ‘조건 없는 사랑으로 다 내어준 예수의 길’을 따르겠다는 사람들. 그렇게 사제가 된 이들이 오늘도 소외당하고 고통 받는 이웃, 억압 받는 이웃, 아프고 배고픈 우리 이웃의 곁을 묵묵히 지켜주고 있다.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고통 받는 이들을 찾아가 어루만지는 그의 행보에 천주교도가 아닌 국민들도 큰 위로와 감명을 받았다. 늘 낮은 곳을 살피고 못 가진 이들과 함께 하려는 그의 모습은 세속화된 종교인과 대비되며 ‘신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을 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그늘진 곳에서 억압받는 이들과 묵묵히 함께 해 온 한국 천주교 사제들의 존재도 다시 조명되고 있다. <단비뉴스>는 천주교회가 개인과 사회의 아픔을 함께 하는 현장에 찾아가 시대가 필요로 하는 종교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기록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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