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 나] 지켜지기 어려운 게임 규제 또 만드는 어른들

▲ 정혜승(다음 대외협력실장)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A씨는 아이들과 온라인에서 소통하는 재미에 빠졌다. A씨 페이스북에 “용돈이 적다”고 올려 아빠 친구들로부터 폭풍 지지를 얻어낸 딸은 이제 만 11살. 미국의 친구들과도 페이스북에서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물론 영어로! 은근 흐뭇하던 A씨, 어느 날 놓친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얘가 어떻게 페이스북 계정을 갖고 있지?”

페이스북은 만 13살 이하 어린이의 계정 등록을 금지하고 있다. A씨 딸은 계정을 만들면서 나이를 28살이라고 한 것으로 밝혀졌다. 다 그런 식으로 나이를 바꿨다는 미국 친구들이 알려준 방법이란다. 어차피 주민등록번호는 필요 없으니, ‘자발적으로’ 나이를 입력하면 그만이다. 인터넷 정보보호 전문가인 A씨는 딸의 페이스북 계정을 스스로 삭제하도록 했다. 날벼락을 맞은 딸의 눈물에 A씨라고 유쾌했을까.

법과 규제는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대한 이해 부족 탓인지, 오프라인적 사고방식의 한계 때문인지, 과도한 규제가 ‘별 생각 없는’ 이들을 범법자로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페이스북은 법으로 규율한 사례가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르다. 다수가 불법행위를 저지르도록 몰아가는 결과를 낳는다면,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성인 사이트에 들어갈 때 다른 사람의 주민번호를 이용했다는 B씨, 주민등록법 제37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놀리자 풀이 죽었다. 그저 조금 찜찜해서 그랬을 뿐이라고 항변했지만, 친구들은 나중에 청문회라도 나가면 문제가 될 것이라고 계속 놀렸다. B씨야 ‘순진한 소심함’에 주민번호를 도용했다 하더라도 실제 주민번호 도용은 악의적 목적으로도 곳곳에서 벌어진다.

타블로 사건에서 ‘타진요’ 카페는 운영자인 ‘왓비컴즈’가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로 카페를 개설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폐쇄됐다. ‘익명’의 폐해를 줄이고자 도입된 것이 제한적 본인확인제이지만, 실제 ‘고의성’ 있는 인터넷 공격자들은 유유히 ‘도용’을 택한다. 중국에서 주민등록번호가 건당 20~30원에 거래된다는 보도가 나오는 상황에서 주민번호 인증 방식의 제한적 본인 확인제는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해외 서비스인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대중들이 쓰기 시작하면서 새삼스럽게 깨달은 사실 하나. 글로벌 서비스들은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으로 약간 ‘성인스러운’ 어플리케이션을 내려 받으면 한번 묻는다. “당신 17세 이상 맞냐”고. 간단하게 ‘예(yes)’라고 클릭하면 끝이다. 주민등록번호든 아이핀이든, 무슨 번호를 넣어 인증받는 과정이 없다. 페이스북 계정 만들 때, 13세 이하 어린이라 하더라도 나이만 바꿔 입력하면 된다. 가정에서 A씨처럼 ‘집안 교육’을 통해 규제하는 것을 제외하면 모든 건 자율적이다. 양심에 거리낄 수는 있지만, 범법자가 되는 상황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세계에서 드물게 ‘주민등록번호’라는 인증 수단이 있는 대한민국을 다른 나라에서 부러워한다고 하는데, 맞는 얘기긴 하지만 행정 편의에 도움이 될 뿐이다. 자율적 시민의식을 기대하는 대신 개인을 통제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닌지 바꿔 생각해보면, 우리가 뿌듯하게 여길 일은 아니다.

청소년들의 심야 게임을 금지하는 ‘셧다운제’는 사회 문제를 현실성 떨어지는 정책으로 해결하려는 또 다른 시도다. 그동안 이견을 보이던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가 지난 3일 셧다운제 대상 연령을 만 16세 미만으로 합의하고, 이를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에 반영하기로 했다. 이번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중학생까지는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심의등급과 상관없이 온라인 게임을 이용할 수 없다.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인터넷 가입 때 부모 동의가 필요한 만 14세를 기준으로 내세운 문화체육관광부와 만 19세 미만 청소년을 기준으로 제시한 여성가족부의 힘겨루기 끝에 어정쩡한 나이 기준이 나왔다는 얘기는 논외로 하자. 고등학생은 심야 게임을 해도 되는 거냐는 반발이 있을 수도 있고, 게임 중독과 무관한 플래시게임까지 유해 매체물로 취급하는 과잉규제라는 반발도 있을 수 있다.

아무리 따져 봐도 우리 아이들이 저런 법을 만드는 어른들보다 더 영리하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 아닐까. 주민번호는 귀하지 않게 나돌고, 하다못해 부모 주민번호만 빌려도 누구든 ‘성인’이 될 수 있다. 게임을 하고자 하는 아이들로 하여금 주민번호 도용의 유혹을 더 키울 뿐이다. 어떻게 금지할 것인지 구체적 방식도 자못 기대된다. 국내산 게임에만 자동으로 셧다운 되는 프로그램을 설치한다면, 외국산 게임의 심야 인기가 높아지는 걸까. 글로벌 SNS 서비스의 소셜 게임에 제한 장치가 있을 리 없다. 하다못해 나이도 형식적으로 묻는 스마트폰의 게임은 심야에도 얼마든 이용할 수 있다. ‘금지된 놀이’가 될 테니 더 하고 싶을 가능성은 없을까.

게임 중독의 폐해가 있다면, 더 긍정적 ‘놀이’를 제시하거나, 교육을 통해 문제점을 알리면서 적당히 하라고 가르칠 일이다. 공부에서 소외되면 학생 대접 못 받는 아이들에게, 반항 외에는 길도 보이지 않는 아이들에게 대안을 제시하는 정책이 먼저다. 아이들에게 주민번호 도용부터 익숙해지도록 규제 환경을 만드는 것은 똑똑한 어른들이 할 일이 못된다. ‘나쁜 사람’은 빠져나가는데 선량한 시민에게만 인터넷에서 실명 확인하라고 시키는 것도, 밤에 게임 하고 싶으면 ‘남의 주민번호로 실명 확인’ 하는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것도 현명하지 않은 처사다. 아마 이 제도 만든 분들이 누구보다 이런 문제를 훤히 아실 텐데, 괜히 웃음거리나 되지 않을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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