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TV를 보니: 11.14~21] 최후의 툰드라

▲ SBS 2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최후의 툰드라' .ⓒ SBS

우리 방송사의 자연 다큐멘터리가 ‘지구 끝’까지 취재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MBC가 2002년 <살아있는 초원 -세렝게티>를 시작으로 2008년 <북극의 눈물>, 2009년 <아마존의 눈물>을 내보낸데 이어 오는 12월3일엔 <아프리카의 눈물>을 방영할 예정이다. 내년 말에는 <남극의 눈물>도 내놓기 위해 준비 중이다. 이에 질세라 SBS가 창사 20주년 특집 다큐 <최후의 툰드라> 4부작을 들고 나왔다. ‘신선한 영상’을 찾아 제작진이 위험을 무릅쓰고 지구 구석구석을 누빈 결과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14일 방송된 1부 ‘땅의 노래’ 편은 12.3%(AGB닐슨 수도권기준), 지난 21일에 방영된  2부 ‘툰드라의 아들’ 편은 14.1%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외부인의 접근이 거의 없었던 시베리아 북서쪽 야말반도의 아름다운 자연, 순록과 함께 살아가는 유목민 ‘네네츠’족의 순수한 삶이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은 결과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감동이었다’, ‘눈물을 흘렸다’ 등의 호평이 쏟아졌다.

‘네네츠’족의 순수한 삶, 시청자 눈 사로잡다

이들 자연 다큐멘터리들이 시청자를 매혹한 요소는 무엇일까? 우선 지구적인 규모의 웅장한 스케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수식이 필요 없는 북극과 아마존, 아프리카 최대의 야생 초원 세렝게티, 그리고 북극 아래 첫 땅 7,000km의 툰드라 모두 숨 막히는 ‘장엄함’을 보여 준다. 막대한 제작비 등 물량 공세도 한 몫 했다. 창사 특집 등으로 10억 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스케일만큼 대박 흥행이 뒤 따른다’는 방송가 속설에 맞는 사례다.

▲ 순록이 이동 하는  모습 ⓒ SBS

일반인들이 밟기 힘든 미지의 세계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만큼, 영상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제작진의 노력 또한 돋보였다. 자연 다큐멘타리는 영상이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실제에 가까운 영상’을 얻기 위한 제작진의 노력이 치열했다고 한다. MBC에서 2002년에 방송한 <살아있는 초원 -세렝게티>는 최초의 고화질(HD)영상 다큐멘터리였다. 제작진은 당시 모 전자회사의 후원을 받아 전체 분량을 HD급 화질로 촬영했다고 한다. 덕택에 시청자들은 아프리카 초원의 모습을 더욱 야생에 가깝게 볼 수 있었다. 이번 SBS의 <최후의 툰드라>도 디지털 카메라의 일종인 ‘캐논 이오에스 마크2(CANON EOS MARK2)’가 한층 실감나는 화면을 잡았다고 한다. 이 카메라는 크기가 작은 편이라 이동이 많은 유목민이나 동물 촬영에 용이했고, 디지털 영상 파일은 아주 추운 조건에서 보관하는데 ENG 테이프보다 적합했을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의 동영상 모드 촬영은 드라마에서 사용한 경우는 있지만 다큐멘터리에서는 첫 시도였다고 한다. <북극의 눈물>이나 <아마존의 눈물>도 극한의 지역까지 크레인, 글라이더, 헬기 등을 동원해 촬영하는 등 뛰어난 앵글을 얻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 MBC 48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 .ⓒ MBC

이들 다큐멘터리들이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움직이며 살아가는 것들’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도 중요한 특징이다. 이전의 순수 자연 다큐멘터리들과는 달리 환경의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동물과 인간의 세계를 집중 조명한 것이다. 세렝게티의 사자들과 북극의 곰들은 그곳의 파괴된 자연 환경으로 인해 고통 받는 동물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대변했다. <아마존의 눈물>에 나온 조에 족과 아마조니 족, 와우라 족, 마티스 족, 야노마미 족 등 여러 원시 부족들 또한 문명으로 인해 급속도로 파괴되어 가는 밀림의 역사를 온 몸으로 들려주었다.

사전 답사 없이 1년 동안 제작‥안전 문제도 심각

이들 다큐멘터리의 등장으로 해외의 수준 높은 다큐멘터리에 익숙한 우리 시청자들도 더 이상 한국의 자연 다큐멘터리를 폄하하지 않게 됐다. 이제 우리 방송사의 자연 다큐멘터리가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제작 여건은 매우 열악하다는 것이 방송 종사자들의 고백이다. 사전 답사도 없이 1년여의 제작 기간에 2~4부작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사실 ‘초능력’ 을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제작 과정의 안전 문제도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아마존의 눈물> 제작진은 보트 전복으로 생명을 잃을 뻔 한일도 있다. 제작기간 1년조차 길다고 생각하는 한국적 풍토가 지속된다면 언젠가는 심각한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일선 PD들은 ‘밀어붙이면 된다’, ‘하면 된다’는 풍토가 만연한 방송계 분위기가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제작진의 치열한 노력 덕분에 시청자들은 앞으로 몇 주 동안 계속 수준 높은 다큐멘터리를 감상할 수 있게 됐다. 11월 28일 밤에는 곰을 자신의 형제라 부르는 파란 눈의 ‘한티족’을 다룬 SBS <최후의 툰드라> 3부가, 12월 3일에는 MBC ‘지구의 눈물’ 시리즈 3탄 <아프리카의 눈물> 5부작이 시작된다. <아프리카의 눈물>에는 최첨단 항공장비 시네플렉스(Cineflex)가 동원돼 살아 움직이는 아프리카의 자연을 더욱 생생하게 담았다고 한다. 신선하고 경이로운 영상을 즐기면서 그 뒤에 밴 제작진의 땀과 열정을 한번쯤 가늠해 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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