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1) 역사학자 한홍구의 쓴 소리]

대중의 심금을 울리지 못하는 언론

 “소 한 마리 늙어 죽는 얘기, ‘워낭소리’에 3백만 명이 울었잖아요. 그런데 용산 참사로 생사람 다섯이 불 타 죽었을 때 3천명도 모이지 않았어요. 소 한 마리 늙어 죽는 얘기에 눈물 흘릴 수 있는 사람들을 용산으로 이끌어 내지 못한 건 글쟁이들의 잘못입니다.”

 
성공회대 한홍구(50, 한국학) 교수는 ‘승자’의 목소리로 기록된 현대사를 뒤집는 사람이다. ‘대중’이야말로 세상을 변화시킨 주체이며, 시민들이 섰던 바로 그 곳이 역사의 현장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오늘의 역사를 기록하는 언론이 그런 의미에서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고 일갈한다.

“40평짜리 복어집 사장님이 오죽했으면 망루에 올라갔겠는지 얘길 해줘야죠. 재개발 과정에서 제대로 보상 못 받고 망할 지경이 됐으니 그랬던 거 아니에요? 죽으려고 했던 게 아닐 텐데, 그렇게 돼버렸죠. 얼마나 억울했을까, 뜨거웠을까, 숨 막혔을까, 그 현장을 다뤘어야죠.”

언론은 발로 뛴 생생한 기사를 써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한 교수는 지난 2007년 홈에버 파업 당시를 회상했다.

“엄마가 월급도 못 받고 1년 반을 투쟁 현장에 나가있어요. 그럼 ‘그 집 아이는 밥이나 제대로 먹을까’를 생각해 봐야 하지 않나요? 내 동료가 한 어머니 집에 갔더니 반찬통에 든 단무지에 곰팡이가 하얗게 폈더래요.”

그는 당시 언론이 파업의 불법성, 폭력성과 기업의 손실만 강조할 뿐, 싸움에 나선 사람들의 절박한 현실을 전해주지 않더라고 말했다.

그는 언론이 사람들의 현실을, 생활을 들여다보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어려운 얘기 대신 쉬운 말과 공감 가는 글로 설득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기자가 비정규직 문제를 얘기하려면 쌍용차와 기륭전자 파업 현장 같은 곳에서 몸으로 느낀 것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한국 언론이 다 문제지만, 특히 발행부수 1, 2, 3등 하는 보수신문이 한국 사회의 격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질타했다.

 “좌파 스님, 좌파 판사, 좌파 교사요? 3대 신문 중 하나가 터무니없는 색깔론을 펴도 그 나라의 격이 의심스러운데, 우리나라의 세 신문은 모두 똑같은 것 같아요.”

보수 언론들이 ‘친북좌파 교사들의 활동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좌파 교육이 성폭행을 발생시킨다’ ‘좌파 스님을 그냥 둘 거냐’, ‘좌파 판사의 도발’과 같은 얘기를 스스럼없이 쓰는 걸 꼬집은 것이다. 서구 선진 사회는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인정하며 공존하는데, 우리 사회의 보수 언론들은 색깔 공세를 통해 진보를 말살시키려는 후진적 행태를 보인다는 비판이다.

젊은이여, 일어나 역사를 만들자
 
그는 대한민국이 희망을 갖기 위해선 언론을 개혁하는 것과 함께 20대가 각성하고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학생들은 1960년 이승만 정권을 종식시킨 4.19와 1979년 10월 부산,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박정희 유신독재에 반대했던 부마항쟁, 1980년 12.12 군사반란으로 등장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군사 정변에 항거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었다. 80년대 내내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것도 대학생들이었다. 그 역사와 전통이 지금은 아주 가늘게 이어지고 있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해 두 여중생이 숨지고, 이 사건 가해자들이 처벌받지 않은 사실에 분노한 당시의 10대들이 처음으로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왔다. ‘광우병 사태’ 때는 지금의 10대가, 8년 전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온 당시의 10대를 본받고 걸어 나온 것이다. 광우병 때 10대가 거리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미선․효순’ 사건 때 거리로 나섰던 지금의 20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20대의 영향력을 본격적으로 키워야 할 때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한 세대의 싸움이 끝났습니다. 민주화 세력은 이제 뒤에서 수레바퀴를 밀 테니, 젊은 세대가 끌고 가야해요. 20대가 새 시대의 문을 열고 나가 자기 몫을 하길 바랍니다.”
  
그는 다음 선거에서 20대들이 20대 후보를 뽑아 국회의원을 만들고 정치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요즘 20대는 능력은 뛰어난데, 패기와 저항 정신이 없는 것 같다”며 “이제는 슬슬 자기를 위한 싸움을 시작할 때”라고 말했다.

20대가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서 대학 등록금을 낮추고, 20대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 청년 실업 해소 대책을 만들고, 병역 환경을 개선하는 등 피부에 와 닿는 공약을 내 놓으면 젊은 표가 결집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20대 표가 모이면, 민주당 등 제도권 야당도 깜짝 놀랄 것이고, 야당에서 20대에게 비례대표 자리를 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그는 전망했다.

한 교수는 기성 언론 비판, 평화 박물관 건립추진, 군대 내 인권 문제, 대체 복무제, 과거사 청산 등 굵직한 사회 현안의 중심에서 연일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 내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촉발된 ‘촛불항쟁’ 때는 동료들과 거의 매일 광화문을 누볐고 ‘용산 참사’ 당일엔 만사 제치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는 사회와 호흡하는, 발로 뛰는 학자를 자임하며 우리 언론과 젊은 세대도 ‘함께 뛰어주기를’ 희망했다. 
 
“여러분, 역사는 배우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송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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