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남병준 정책실장

장애인의 날이었던 지난 4월 20일, 서울 반포동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는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 해산을 위해 경찰이 뿌린 최루액에 장애인들은 속수무책으로 고통을 당했다. 거친 몸싸움 속에서 장애인들이 다칠까봐 동분서주하는 비장애인 한 명이 유독 눈에 띄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남병준(48) 정책실장이었다. 한편으로는 시위를 이끌고 언론사와 인터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장애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진땀을 흘리는 모습이었다. 지난 6월 3일 서울 혜화역 부근의 노들장애인야간학교에서 그를 만났다.

▲ 장애인의 날 벌어진 시위 현장에서 체크 셔츠를 입은 남병준 정책실장이 경찰에 끌려가는 한 장애인을 잡아주고 있다. ⓒ 박진우

일본어가 맺어 준 장애인과의 인연

남 실장은 원래 서울의류업노동조합 소속의 노동운동가였다. 그의 ‘전문분야’가 장애인운동으로 바뀐 데는 지난 2004년 서울 광진구의 정립회관에서 일어났던 파업이 계기가 됐다. 장애인복지관에 노동조합이 생기고, ‘천사표’일 것만 같은 복지관 노동자들이 파업했다는 것은 당시로선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당시 파업에 연대하기 위해 찾아갔던 남 실장은 장애인복지관 직원들의 파업에 장애인단체가 함께 한 것에 큰 감명을 받았다. 장애인들과 친해지고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그는 자신이 장애인의 현실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휠체어를 어떻게 움직이는지, 뇌성마비 장애인의 몸짓이 무슨 뜻인지 전혀 몰랐을 때 너무 창피했다는 것이다. 그런 부끄러움이 그를 장애인운동가의 길로 이끌었다.

“장애인들을 너무 몰랐던 거죠. 이 사람들은 나를 잘 알아요. 왜냐하면 TV가 나 같은 사람 이야기를 하잖아요. 보통 사람들 말이에요. 저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산거죠. 삶의 영역은 무궁무진하고 다양한 영역이 있는 건데 말이죠. 문화적인 충격이었죠.”

그는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했다. 당시 정립회관 파업으로 인연을 맺은 장애인들이 그가 일본어를 한다는 것을 알고 그를 찾아왔다. 일본의 장애인 활동가에게 받은 책 4권의 번역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기꺼이 수락했고 그 책으로 장애인들과 함께 공부하는 세미나를 열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모였고, 세미나가 1년간 이어지면서 장애인활동지원제도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일본에서는 이미 1970년대에 장애인활동지원제도가 생겼는데 2005년 당시 한국에는 이에 대한 논의조차 없었다. 공부를 함께 하던 사람들이 2006년부터 ‘활동보조 제도화 투쟁’을 시작했고 2007년 제도화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일본어 덕분에 어느새 그는 장애인 운동의 한복판에 서게 됐다.   

“돌아보니 일본어가 장애인운동권에 진입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더군요. 그리고 스터디를 1년 하면서 저는 이 안의 사람이 된 거였고요.”

동정이나 시혜 대신 기본권을 보장해야

그가 지난 2006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본격적으로 장애인운동을 시작한지 8년이 지났다. 그동안 그는 수많은 벽에 부딪혔다고 한다. 장애인 문제를 바라보는 개인들의 의식, 사회의 시선 자체가 벽으로 느껴졌다. 동정과 시혜의 관점에 머물고 있는 장애인복지제도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장애인들에게는 단순한 도움을 넘어 한 사람의 사회구성원으로서 기본권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직도 이 사회는 장애인들이 무언가를 요구하면 ‘도와줌’에 방점을 찍죠. ‘도와줌’이라는 건 관계를 ‘내가 위에 있고 이 사람들은 아래에 있어서 시혜를 베풀어줄게’로 만들어요. 장애인들의 요구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가 아니라 그야말로 현재의 마이너스 삶을 제로 상태로 만들자는 거거든요. 통계를 보면 여전히 1년에 10번도 외출을 못하는 장애인이 전국에 13만 명이 넘어요. 이 사람들의 삶이 기본권을 누리고 있다고 볼 수 없는 거죠.”

▲ 남병준 정책실장은 "도움보다 기본권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박진우

남 실장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이 장애인에게는 제대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참정권을 행사하는 일조차 장애인에겐 쉬운 문제가 아니다. 투표하기 위해서는 교육도 받아야 하고, 정보도 얻어야 하고 이동도 해야 한다. 그러나 이 사회는 ‘투표권 줬잖아’라고 이야기 하면서 장애인들이 투표할 수 있는 현실적 여건을 만드는 데는 무관심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장애인등급제와 부양의무제는 폐지 필요

지난 4월 17일 장애인 송국현씨가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등급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화재로 숨졌다. 6월 1일에는 활동보조인이 퇴근한 후 호흡기 오작동으로 오지석씨가 목숨을 잃었다. 잇따른 장애인의 죽음은 국내 장애인복지제도의 맹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장애인의 실질적인 필요가 아니라 신체기능의 손상정도를 따지는 장애등급제에 따라 지원이 이뤄지기 때문에 불합리하게 소외되는 장애인이 많다. 남 실장은 행정편의를 위해 만든 장애인등급제가 제대로 된 복지 혜택을 가로막고 장애인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에도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동사무소에 장애인이 처음 오면 ‘장애등급제 몇 급이세요?’라고 물어봐요. ‘수급자세요? 가족이 어떻게 되세요? 누구랑 살아요?’, ‘1급이면 이거 쓸 수 있어요. 수급자면 이거 가능해요’로 끝이에요.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지 않아요. 서비스 필요도와 장애등급제는 일치하지 않는데 말이죠.”

부양의무제는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해도, 일정기준 이상의 소득과 재산을 가진 부양의무자가 있다면 수급액을 낮추거나 주지 않는 제도다. 부양의무제는 장애인에게 더욱 혹독하게 작용한다. 부양의무제 때문에 장애인은 ‘가족이 끝까지 껴안고 돌봐줘야 하는 대상’이 된다. 실제로 가족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거나 인연을 끊고 사는데도 호적상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수급조차 못 받는 장애인들이 있다. 남 실장은 부양의무제가 많은 장애인을 복지 사각지대로 몰아넣고 있으며,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삶을 살 수 없게 만든다고 성토했다.

“부양의무제는 뭐냐면 장애란 네 몸의 문제다, 그리고 가족이 돌봐야 한다, 국가와 사회는 책임이 없다, 그건 네 불행이니까 하늘을 원망하고 가족을 원망해라 하는 것이죠. 이게 우리나라의 철학이에요.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는 그 철학을 아예 시스템으로 만들어 놓은 거고요.”

▲ 남병준 정책실장은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박진우

남 실장은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서비스 필요도’에 따라 복지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활동지원서비스의 경우 1~2급 장애인 50만 명 정도가 서비스 자격요건을 갖추고 있는데, 그 중 실제 서비스를 받는 장애인은 6만 명 정도다. 필요도 조사에 따라 지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1급 장애인에게 활동지원보조가 필요 없지만 3급 장애인에게는 필요한 경우도 있다. 등급제를 없애고 필요도에 따라 활동지원서비스가 제공되면 기존 1~2급에 속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활동지원서비스가 절실히 필요했던 장애인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서비스 필요도에 따라 복지 혜택을 주면 장애 3급이었던 송국현씨가 허망하게 죽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죠. 북유럽에선 장애인 등록조차 필요 없어요. 등급이라는 개념자체가 존재하지 않죠. 그러니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신청하면 될 일이죠.”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부양의무자 기준을 대폭 완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후에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는 대신 완화하겠다고 밝히는 등 태도가 바뀌었다. 남 실장은 이런 변화에 대해 ‘원래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를 폐지할 경우 복지예산이 늘어야 하기 때문에 이를 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행정편의를 위해, 예산을 쓰지 않기 위해 장애인복지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장애인 사망 등의 비극은 계속될 것이라고 그는 경고했다. 남 실장은 우리 사회의 장애인 문제가 세월호 참사와도 비슷한 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장애인들이 연이어서 죽고 있어요. 한 달에 한 명씩. 언론에 나온 분들만요. 그런데 이 사회는 바뀌지 않아요. 송경동 시인이 그랬어요. 세월호는 한 번에 일시에 침몰했지만, 장애인은 한 명씩 한 명씩 침몰하고 있다고. 그래서 장애인들에게는 이 세상이 전부 바다고, 그들이 살고 있는 환경이 세월호라는 거죠.”


* 댓글 달고 책 받자!
단비뉴스가 댓글 이벤트를 엽니다. 1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기사를 읽고 댓글을 달아주시는 독자 중 매주 두 분에게 경품을 드립니다. 1등에게는 화제의 책 <벼랑에 선 사람들>, <황혼길 서러워라>, <동네북 경제를 넘어> 중 1권을, 2등에게는 커피 기프티콘을 드립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