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농업이슈] 우리 꽃 산업의 길을 묻는다

지난달 10일 경남 김해 영남화훼원예농협공판장은 아침부터 시끌벅적한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다. 오전 8시에 경매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한 남자가 꽃다발이 여러 개 놓인 책상 위에 올라가 꽃을 소개한다.

“이파리가 다른 것보다 좀 더 넓고예, 보시다시피 꽃몽오리가 억수로 예쁘게 폈습니더.”

벽에 달린 스피커를 통해 남자의 목소리가 공판장에 울려 퍼지자 상인들은 숨죽인 채 경매사가 쥐고 있는 꽃다발을 응시한다. 이내 숫자가 적힌 종이를 잡은 손들이 일제히 올라간다. 남자는 올라와 있는 손들을 향해 꼼꼼하게 눈도장을 찍는다.

“자, 39호 2만6,000원. 74호 6,000원. 됐네예. 요거 8,200원에 가입시더.”

▲ 김해 한 공판장에서 국화 경매가 시작되자 도매상들이 입찰가가 적힌 종이를 들어 경매사에게 보이고 있다. ⓒ 김다솜

화려함에 가려진 화훼농민들의 시름

꽃 상태를 보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상인들은 값을 결정한다. 이날 90송이를 묶은 국화 한 다발의 최고가는 1만3,500원. 평소보다 높은 가격에 꽃을 사지 못한 상인들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온다. 높은 가격에 혀를 내두르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팔짱을 낀 채 또 다시 다음 꽃을 낙찰받기 위해 기다린다. 반면 좋은 값에 꽃을 산 이들은 말 없이 자리를 옮긴다. 낙찰받지 못한 상인들이 마음에 걸려서다.

경매에 참여한 김정희(54·부산 강서구 가락동)씨는 “경매도 아다리(‘적중’을 뜻하는 일본말)가 맞아야 가져 갈 수 있는 거”라면서 “대체로 꽃 모양이 예쁜 게 인기가 많고 그 외엔 꽃꽂이를 하거나 화분에 옮겨 심을 수 있는 꽃들이 금방 낙찰된다”고 말했다.

상인들에게 낙찰되어 가격이 형성되면 꽃은 반출될 준비에 들어간다. 줄기끝을 가위로 잘라 다듬은 뒤 끓는 물에 담근다. 그래야 줄기에 수분이 채워져 꽃이 보다 오랜 시간 신선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옆에서는 낙찰된 꽃을 포장하는 손길이 분주하다. 종이에 싼 뒤 경매번호를 붙이면 포장은 끝난다. 단장을 마친 꽃은 입구에 준비되어 있던 차에 몸을 싣는다. 트럭에 몸을 누인 꽃들은 이제 새 주인을 찾아 떠난다.

‘꽃으로 돈 번다’는 건 옛말

그 많고 아름다운 꽃들은 어디서 온 걸까? 이틀 뒤 기대감 속에 찾아간 김해 대동 화훼마을은 차라리 ‘황량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법했다. 화훼단지에는 비닐하우스가 줄을 맞춰 빼곡히 들어차 있었지만 대부분 비어 있었고, 꽃 대신 쪽파나 토마토 등 일반 채소를 심은 곳도 많았다.

▲ 태국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 부부가 비닐하우스 안에서 장미를 다듬고 있다. ⓒ 이문예

심윤화(47)씨의 장미농장은 그런 어수선한 비닐하우스촌에 활기를 불어넣는 몇 안 되는 화훼농가 중 하나다. 심씨의 온실에 들어서자 분홍색, 노란색, 흰색 등 형형색색의 장미 밭이 펼쳐져 온실 밖 스산한 풍경과는 대조됐다. 농장에는 외국인 노동자 둘이 장미를 수확하고 있었다. 솜륵(39)씨와 번이(30)씨는 부부로, 3년 전 태국에서 왔다. 농장의 일손은 이 둘과 농장주 내외가 전부다. 대부분 화훼농장이 심씨 농장처럼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 운영한다.

6600㎡(2천평) 농장에 장미를 재배하는 심씨는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와 장미 농사를 시작했다. 장미 농사를 짓던 형이 “땅은 거짓말 안 한다”고 권유하기도 했다. 실제로 10년 전만 해도 ‘장미를 서울에 보내면 돈이 한 트럭 내려온다’고 할 정도로 수익이 많았다. 김해 화훼의 전성기였다.

김해 대동 화훼마을은 198만㎡(60만평) 규모로 한때는 전국 화훼의 70%가 이곳에서 생산됐다. 농수산물유통공사(aT)를 비롯한 전국 5개 공판장 중 3개가 부산화훼공판장, 부경화훼공판장, 영남화훼공판장으로 인근에 몰려 있다. 그만큼 경남의 화훼 생산 비중이 컸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비중이 40% 정도로 줄어들었다.

심씨 농장에서는 한창 때 연간 장미 생산량이 100만 송이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70~80만 송이로 줄었다. 화훼시장이 파주 등 경기도 지역까지 넓어진 탓이다. 김해의 성공으로 화훼시장이 주목 받고부터다. 경쟁은 치열해지고 난방비와 비료값은 오르는데 꽃값은 제자리걸음이었다. 10~15년 전 1속(10송이)에 3천원 하던 꽃값이 지금도 3천원 대를 유지하고 있다. 김해 화훼마을의 경쟁력은 점점 떨어졌다.

“왜 꽃 박람회가 그 추운 고양에서 열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김해도 10년 전에는 화훼 축제가 있었는데 중단됐습니다. 처음에 좀 서툴러도 지자체가 일관성을 갖고 추진했다면 고양만큼 규모가 커졌을 거예요.”

▲ 백장미가 탐스럽게 피었지만 가격이 높지 않아 농민들의 시름을 달래주지는 못한다. ⓒ 황윤정

농산물 개방에 따른 수입 증가도 김해 화훼산업 위축의 한 요인이다. 관세청이 지난 4월 발표한 ‘주요 절화 교역동향’을 보면 최근 3년간 백합, 장미, 국화, 심비디움 등 4개 품목의 수입액은 398.5%, 곧 4배가 늘었다. 장미 수입액은 254.6% 증가했다. 반면, 수출은 점차 줄어 4개 품목의 지난 3년간 수출액은 40.4% 감소했다. 우리나라 절화 제품의 최대 수입대상 국가는 중국으로, 그 비중이 78.9%에 이른다.

심씨는 국내 꽃값이 조금만 오르면 곧바로 저렴한 수입산 꽃으로 대체된다고 말했다. 꽃 소비가 많은 12월, 2월, 5월에는 가격이 크게 뛰는데, 이 때 수입도 같이 늘어난다. 예를 들어, 어버이날, 스승의날 등 행사가 많은 시기, 꽃 한 단에 만원이 넘어가면 중국 상인들이 6천원 대를 제시하는 식이다. 중국산은 국내산의 60% 수준 가격으로 공급된다.

아시아 국가 중 꽃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는 일본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경매를 할 때 자국 꽃 경매를 먼저 진행한다. 경매사나 상인들도 자국 꽃을 우선 구매하고, 부족분을 수입산으로 사들인다. 우리나라는 가격을 최우선 고려하다 보니, 농민들은 가격 경쟁에서 전혀 보호받지 못한다. 이는 화훼 농가가 소외된 농업정책과 꽃 소비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 탓이 크다.

꽃은 사치품 아닌 농산물로 인식해야

우리 국민은 꽃을 ‘특별한 날에만 소비하는 사치품’ 정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유럽에는 길거리 곳곳에 꽃집이 들어서고, 슈퍼마켓이나 전통시장에서도 손쉽게 꽃을 구매할 수 있어 일상적으로 소비가 이뤄진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큰 행사나 기념일 등 특별한 날에만 꽃을 소비한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13 화훼 재배현황>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연간 꽃 소비금액은 1만 4452원에 불과했고 85%가 경조사용으로 사용됐다. 경조사용 꽃을 빼면 1인당 2168원에 불과하다. 장미꽃 한 송이가 3000원 정도이니 한 사람이 1년에 소비하는 꽃은 고작 한 송이도 안 되는 것이다.

꽃을 사치품으로 인식하게 된 데는 정부 정책도 한몫했다. 우선 대통령령의 ‘공무원 행동강령’에는 ‘공무원은 직무관련자로부터 금전 또는 선물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돼있는데 2003년 국민권익위원회는 ‘3만원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구체적으로 정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통상 3만원 이상인 화훼 선물은 ‘뇌물’로 낙인찍히게 된 것이다. 선물용 화환이나 화분은 싼 것도 대개 4만원을 넘는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최근 10여년간 지속된 화훼산업의 점진적 위축에 ‘3만원 이상 뇌물’ 기준의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심씨는 우리나라에도 화훼산업에 대한 좀 더 바른 시각이 자리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 전국에 체인점을 두고 있는 한 꽃 배달업체의 인터넷 홈페이지. 선물용 화분은 5만원대가 가장 저렴하다.

“연말 시상식이나 연예인 결혼식에서 꽃 장식을 화려하게 하면 바로 ‘과소비가 심하다’는 식 기사들이 나옵니다. 꽃이 사치품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거죠. 하지만 먹거리만 농업이 아닙니다. 화훼도 농업입니다. 양돈농가가 위태로울 땐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서 무료시식회도 열고 ‘우리 양돈농가 살리자’고 부르짖으면서 왜 화훼는 오히려 죽이려 듭니까?”

화훼 농가는 여름 같은 비수기엔 경매장에 꽃을 내놔도 소비가 안 돼 폐기하는 사례가 많다. 그는 12월, 2월 같은 성수기에 꽃이 많이 팔려 여름에 보는 손해를 메워줘야 하는데 사치품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써 그조차도 힘들게 됐다고 한탄했다.

소비자를 농락하는 화환재사용 막을 수 없나

“결혼식을 할 때 주례자가 화환에 꽂힌 꽃을 한 송이씩만 빼가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그런 식으로라도 꽃을 소비하게 해야 합니다. 그럼 화환이 다시 재사용되는 걸 막을 수 있고, 꽃을 가져가는 사람도 며칠간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으니 좋고요.”

심씨는 ‘우리의 꽃 소비문화를 어떻게 바꿔나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도 즉답을 했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리라. 그는 며칠간 이어지는 장례식보다 한 시간 남짓한 결혼식 때 사용되는 화환이 재사용되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식전 준비시간까지 포함해도 길어야 2~3시간이라 아직 꽃들이 싱싱하기 때문이다.

업자들은 그런 화환들을 가져다 10만원 정도를 또 받는다. 리본을 바꿔 다는 수고만으로 그 자리에서 10만원을 버는 것이다. 결국 제값을 치르고 꽃을 산 소비자는 물론이고 화훼농민과 소매상이 모두 피해를 보게 된다.

화환 재사용은 안 그래도 위축된 화훼산업을 더 쪼그라들게 만든다. 2011년 4월 농림식품부가 이애경 단국대 환경원예학과 교수에게 의뢰한 연구용역에 따르면 전체 화환 유통량의 20~30% 정도가 재사용되며 이에 따른 피해액은 550억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화환 재사용은 어제 오늘 문제가 아니다. 오랫동안 화훼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관련 규제법을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으나 여전히 관철되지 않고 있다. 2010년 8월부터 농수산물유통공사가 화환에 제작자의 실명을 표기하는 ‘화환 제작실명제’ 시범사업을 시작해 2011년 3월에는 양재동 화훼공판장 내 모든 점포의 화환으로까지 사업을 확대 실시했다. 그러나 법으로 강제하지 못하다 보니 아직도 화환 재사용이 판을 치고 있다.

화훼농민의 마지막 자존심

1시간 넘게 화훼산업의 어려움과 고단함을 토로하는 심씨가 아직도 화훼 농사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문득 궁금해졌다. 그는 5년 전 딸 심아영(21)씨에게 원예학과가 있는 대구의 한 고등학교에 진학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원서를 작성하기 전까지만 해도 식물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던 딸은 선생님들의 설득에 인문학과로 진학했다.

대학에 진학할 때도 화훼 관련 학과를 권유했지만 이미 본인이 다른 데로 진로를 정해놓고 있었다. 자녀들이 본인처럼 농사를 짓길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농업 계통의 다른 직업에 종사하길 바랐다. ‘한 나라의 농업이 무너지면 국가가 유지될 수 없다’는 오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토록 깊게 뿌리 박힌 신념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화훼농업을 계속 이어나가게 하는 원동력은 아니었을까? 그의 목소리가 확신에 차 있었다.

“사람이 밥만 먹고 삽니까? 앞으로 꽃 산업도 점점 커나갈 거라 생각해요. 제가 화훼, 특히 장미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지역∙농업이슈]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기자•PD 지망생들에게 지역∙농업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개설한 [농업농촌문제세미나]와 [지역농업이슈보도실습] 강좌의 산물입니다. 대산농촌문화재단과 연계된 이 강좌는 농업경제학•농촌사회학 분야 학자, 농사꾼, 지역사회활동가 등이 참여해서 강의와 농촌현장실습 또는 탐사여행을 하고 이를 취재보도로 연결하는 신개념의 저널리즘스쿨 강좌입니다. 동행하는 지도교수는 기사의 틀을 함께 짜고 취재기법을 가르치고 데스크 역할을 합니다. <단비뉴스>는 이 기사들을 실어 지역∙농업문제에 대한 인식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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